오늘은 한 때 전 세계를 아우르던 대제국을 건설했던 영국에 대해 얘기할까 한다. 영국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가난뱅이가 어떤 식으로 부자가 되어가는 지에 대한 얘기이다.
어제 상갓집을 가느라 버스를 탔는데, 창너머 '톤(ton)'이란 이름의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이 뭘 알고 이름을 정한 것 같기도 해서 흥미로웠다.
톤은 1000 kg을 나타내는 무게단위이다. 하지만 이것은 미터법을 쓰면서 그렇게 된 것이고, 영국이 사용하던 오리지널 톤은 1016 kg 이다. 그리고 톤이란 말은 옛 영어 단어 툰(tun)에서 왔다.
그렇다면 툰은 무슨 말? 그 답은 포도주를 담아 나르던 커다란 술통이다.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포도주 술통을 뜻하는 ‘툰’이란 말 속에 거지나라 영국이 부자나라로 올라선 계기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유럽, 특히 서유럽, 오늘날 우리가 西歐(서구)라고 부르는 이 지역은 로마 제국이 사라진 이래 야만과 미개의 세상이었다. 반면 로마 그리스 문명의 진수를 이어받은 이슬람 세계가 문명개화의 세계였다.
서유럽에서 굳이 따지자면 이슬람 왕국이 들어선 스페인 일대가 문명 세계였고 오늘날의 프랑스나 독일 심지어는 이탈리아까지도 미개한 지역으로 전락해 있었다. 그나마 로마 교황청이 서유럽 문명을 지키는 희미한 등불이었다.
그러니 영국은 유럽 대륙도 아닌 섬나라, 한마디로 전설과 신화의 세계, 정확히 말하면 가장 후미진 땅이었다.
유럽이 부흥하기 시작한 계기는 다름 아닌 십자군 전쟁이었다. 전쟁에서 승리해서가 아니라 군대와 물자를 실어 나르는 과정에서 이슬람 상인들로부터 해운과 무역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특히 북 이탈리아 도시국가들, 주로 베네치아와 피렌체, 제노아가 주역이 되었다.
이로 인해 지중해 무역과 상권이 넘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은 싸움이었고 투쟁, 그리고 약탈이었다.
돈이 생기고 부가 형성되자 사람들은 서서히 학문과 예술이란 돈 안되는 분야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특히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은 이 분야의 가장 큰 손이었다. 이리하여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서유럽이 돈을 번 것은 결국 십자군 전쟁의 부산물인 지중해 무역이었다. 그런데 영국의 잉글랜드 왕국도 이 전쟁에 참가했었다. 당시 왕은 사자왕으로 알려진 리차드 1세였다.
이 왕은 잉글랜드의 왕이면서도 사실 영국에 머문 것은 평생 6 개월에 불과했고 주로 유럽 대륙에서 살았다.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왕의 신분이니 섬나라 시골 땅에 살기 싫었던 까닭이리라. 그러니 당시 잉글랜드 왕국은 말이 왕국이지 야만국이었음을 능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양반 역시 문명의 혜택을 입다 보니 어떻게 하면 돈이 되고 부가 되는 지에 대해 좀 알게 되었던 모양이다. 무역과 해운이야말로 돈이 된다는 사실에 대해 말이다.
그래서 곰곰히 살펴보니 섬나라 영국은 나는 것이 없었다. 쉽게 말해 수출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머리를 굴려보니 간신히 떠오른 아이디어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포도주였다.
우리는 포도주, 영어로 와인하면 흔히 프랑스를 연상한다. 보르도하면 와인이고 와인하면 보르도가 떠오를 정도이다. 내가 수채화에서 잘 쓰는 붉은 수채색도 보르도이다.
그런데 재미난 사실은 15 세기 중엽까지 보르도 항구를 포함하여 ‘가스코뉴’나 ‘기앙느’의 포도밭은 프랑스 영토 내에 있는 잉글랜드 왕국의 영토, 즉 리차드 왕의 개인 부동산이었다는 점이다.
이에 리차드 1세는 이 지역의 포도주 제조업자들, 길드에게 독점인가를 내어주고 이익을 보장해준 다음, 그 포도주를 무역 아이템으로 삼았다. 당시 왕이 인가한 보르도 포도주 조합은 지금까지도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으며 세계 제일의 포도주로 명성을 얻었다.
프랑스 포도주는 사실 잉글랜드 왕국의 사자왕 리차드 1세가 키운 브랜드였던 것이다.
왕은 이 포도주를 나무 술통에 담아 다른 나라로 수출했는데, 여기서 무게단위 톤이 생겨났다. 흔히 우리는 배의 크기와 무게를 말할 때 톤 단위로 재는데, 이 말은 어떤 배가 술통 몇 개를 실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100 톤의 배란 말은 술통 백 개를 적재할 수 있는 배라는 뜻인 것이다. 이것이 톤의 출발이다.
지금은 배의 크기를 排水量(배수량), 배가 물에 떴을 때 배가 밀어내는 물의 양으로 정하고 있지만, 이런 엄청스런(?) 과학지식은 한참 나중의 일이니 사실 중학교 때 공부 안한 여러분들도 뭔 말인지 잘 모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알 것 없다는 말씀.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영국이 무역에 손을 댈 수 있었던 계기는 보르도산 포도주였고 그것을 담던 술통이 당시에는 툰, 지금은 톤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영국이 부자로 발돋움해 간 과정에 대해 좀 더 말해보자.
당시 富(부)는 지중해 연안의 북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누리고 있었다. 지중해는 당시 유럽의 중앙 무대였던 것이다. 그래봐야 이슬람 세계에 비하면 시골이었지만, 지금 말로 이머징(emerging) 마켓이었다 하겠다.
세상은 누가 돈을 벌면 시새우는 무리들이 있기 마련이고, 이런 시샘은 모방을 통한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젊은 당신은 시샘이 많은가? 발전의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나이가 많은 데도 시샘이 많다? 곱게 살긴 어렵겠다. 시샘은 이런 것이다.)
지중해 무역만이 아니라 이를 모방해서 새로운 부의 원천을 창출한 이들이 있었으니 오늘날 벨기에 일대인 플랑드르 지방에 있던 브루게(프랑스 말로는 브뤼주) 상인들과 북독일 도시상인들의 연합인 ‘한자동맹’이었다.
한자동맹은 마치 漢子(한자)를 쓰기로 한 同盟(동맹)처럼 들리겠지만, 독일말로 'hansa'란 단체란 뜻이다.
나중에 한자 동맹에 대해 기분 내키면 다시 자세하게 얘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거지나라 영국이 부자가 되어간 과정에 관한 것이니 생략한다. (덜커덩! 이 소리는 내 머릿속 한자동맹 디렉토리가 잠시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이다.)
이 두 그룹은 북해 무역권을 장악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렸다.
北海(북해)! 벌써 소박한 느낌이 든다. 특별한 고유 명사도 아닌 북쪽 바다라는 말이다. 뭔 바다? 나도 잘 몰라, 그냥 북쪽에 바다가 있으니 그냥 북해라 하지 뭐, 이래서 북해가 된 것이니 얼마나 관심 밖이었는가를 말해준다.
그러니 북해 저편에 유럽 대륙과 격리된 섬나라인 영국이야 말할 나위도 없었다. 기후도 썰렁하고 나는 것도 없는 멀고도 후미진 변방이었다. 오죽하면 왕마저도 통치는 신경 안 쓰고 유럽 대륙에서 살았으랴.
포도주 무역은 얼마 안 되는 왕실의 수입이었지만 그 역시도 상권을 장악하지 않으면 돈이 잘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이치, 甲(갑)이 되어야지 乙(을)은 늘 피곤한 법이다.
그런데 영국에서 나는 물건 중에 딱 하나 수출할 물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양털, 羊毛(양모)였다.
그러나 그 양모마저 영국 상인들이 장사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 건너 벨기에 쪽의 플랑드르-플란다스의 개로 유명한 동네-상인들이 영국으로 건너가 저렴한 가격에 구매한 뒤 그들의 배에 실어 플랑드르로 가져온 다음 가공해서 모직물로 다시 수출하여 많은 돈을 벌고 있었다.
영국은 배도 변변한 것이 없었고, 더더욱 모직물 가공기술은 절대 알려주지 않는 첨단 기술이었기에 영국 목장주들은 원재료 값만 좀 받으면서 참아야 했다.
배앓이를 하던 영국 목장주인들-주로 귀족과 성직자 그리고 왕-은 그러나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앞서 얘기했듯이 시샘은 발전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 이어가기로 한다. (사실 처음에 톤의 유래에서 시작된 이 글이 몇 번을 더 써야 끝날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어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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