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비가 외상 달아 놓았으니 자식인 네가 갚아라?  _  2010.2.21
서울 지하철 9호선, 작년에 개통된 이 노선, 작년 여름 처음 타봤을 때의 인상이 기억난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간 순간, 갑자기 몸이 굳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발을 들어 신발 밑창을 쳐다보았다, 혹시 흙이 많이 붙어있지나 않은가 해서.

지하철이라 하면 내 머리 속에는 서민의 발이 떠오르는데, 이건 최고급 일류 호텔 로비로 들어선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앗, 황송 또는 황감, 여기가 감히 저 같은 사람이 마구잡이 흙발로 들어와도 되는 곳인가요 싶었다.

넓은 로비와 은은한 조명, 비싼 타일로 우아하게 장식된 지하철 9호선, 살아온 가락을 살려 내심 당혹감을 감추고 타긴 했다. 그리고 기분이 불쾌해졌다. 이거 뭐냐, 서울의 서민들이 언제 이처럼 업그레이드가 되었지?

그리고 작년 연말에 강남 메리어트 호텔 뷔페에 식사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었다. 호텔 로비의 부산한 분위기를 무척이나 싫어하지만, 대접을 하겠다니 갔다. 그런데 문득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아니 지하철 9호선이 이 호텔 로비보다 더 좋네, 이건 또 뭐냐?"

그리고 달포 전에 일로 해서 여의도를 갈 때 지하철 9호선을 또 이용했다. 여의도역에 내려 지상으로 올라가면서 역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 “이거 마치 외국 영화 장면이네, 이건 또 뭐냐? 우리가 언제 공공시설에 돈을 잔뜩 바르기 시작했지?”였다.  

지금 나는 지하철 9호선에 대한 내 느낌을 얘기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不吉(불길)하다. 뭔가 이건 아니다 하는 찜찜한 느낌, 무언가 캥기는 것이 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술자리에서 확연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선생님, 그거요 민자예요 민자!
앗 그래!  민자‘씨’라고 어쩐지 그렇더라고, 쯧쯧쯧, 난 민자씨 싫어.

공공부문에 민간자본이 들어가는 거, 마땅히 의심의 눈초리가 필요하다.

모든 민자 사업이 나쁘다고 주장하지는 않겠지만, 민자는 私益(사익)을 위주로 하는 것이기에 公益(공익)을 위한 분야에 들어오는 것은 당연히 의심해봐야 한다.

대중교통인 9호선이 호텔 로비를 능가하는 짙은 色調化粧(색조화장)을 하고 있다는 것부터가 벌써 수상하지 않은가 말이다.

민자사업은 이상한 사업이다. 손해가 나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메워주도록 되어있다. 사업이란 원래 적자가 나면 사업주의 책임이고 이익이 나도 사업주가 가져가는 것인데, 민자사업이란 것은 어떤 과정을 거친다 해도 일정 금리 이상의 안정적 수익률이 보장되는 것이니 이상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감추느라 수요예측이다 뭐다 하면서 부산을 떨지만 결론은 땅짚고 헤엄치기가 민자사업이다.

그리고 적자가 나면 국가나 자치단체가 메워주니 그 또한 국가나 자치단체에게는 偶發債務(우발채무), 즉 빚이 늘어날 요인이 된다.  

최근 전 세계가 재정적자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우리는 형편이 좀 나은 편이라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재정 적자 요인들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면 나중  결과는 뻔한 노릇이다.

재정적자가 무엇인지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정리해두자.

미래 세대가 장차 벌어들일 소득으로부터 미리 세금을 걷어서 현재 지출하는 것이다.

지금 한창 취업을 하거나 취업을 앞둔 세대들은 안 그래도 취업난으로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거기에 더하여 그들의 미래 소득까지 담보로 하여 그 稅金(세금)을 앞당겨 쓰는 것이 바로 국가의 재정적자인 것이니 이것이 어디 할 짓인가 말이다. 실로 못된 짓이 재정적자임을 알아야 하겠다.

학자들은 선순환 구조가 되면 재정적자도 좋다고 한다.

참 말은 그렇듯 하다. 선순환?, 그러니까 지금 앞당겨 써도 잘 굴러갈 수 있다는 말이다.

세입보다 더 많은 세출을 하는 것이 표면상의 적자재정이다.

나라에서 당장 돈 보따리를 선심 쓰듯이 풀고 있으니 기성세대들은 당근 좋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까지 15 년간 투표권을 지닌 유권자들은 그들이 내는 세금보다 더 많은 세출로 혜택을 보고 있으니 뭐라 욕할 사람들도 없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결국 미리 당겨다 쓴 돈은 미래 세대가 갚아야 하는 돈임을 잊지 말아야 겠다. 미래 세대가 누구인가? 바로 기성세대의 자녀들이 아닌가? 자식 주머니를 털어 부모 세대가 쓰고 있는 것이 무에 그리 좋다는 것인가!

선순환이란 지금 기성세대가 앞당겨 쓰지만 나중에 미래 세대가 더 많이 벌어들일 것이니 지금의 빚이 큰 부담은 되지 않을 거라는 논리이다.

쉽게 말해 우리는 2만불 소득이지만 너희들은 4만불이 될 것이니 세금 좀 미리 당겨 쓴다고 인상 쓰지 말라는 것이 재정적자의 선순환 논리이다. 야, 너희들은 창창한 미래가 있지 않냐, 뭘 그걸 가지고 그러냐 식이 선순환 논리이다.

하지만 미래는 모르는 것, 그런 꿈같은 선순환이 될지 아니면 악순환이 될지 누가 감히 장담할 수 있는가 말이다.

그토록 욕하는 군사정권 시절 국가의 재정은 한 번도 균형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고 그럼에도 오늘의 번영을 위한 투자까지 했었는데, 민주정권이 들어선 이래 미래 세대에게 보태주지는 못할망정 너무도 안이하게 미래 세대의 소득을 담보로 가불하고 있으니 뭐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군사정권 시절 우리는 근검절약을 통해 저축을 하고 그 저축은 투자가 되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는 것이고, 민주화 이래 우리는 고소득 국가가 되어 성장의 과실을 즐기는 것은 물론 그것도 모자라 미래 세대의 소득까지 가불해 쓰면서 국가도 적자국가, 가계도 적자가계가 되어있다.

지금 내가 군사정권 시절이 좋았다는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 시절 정말이지 지긋지긋했고, 지금 시절이 당연히 좋다.

다만 문제는 우리가 즐길 몫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가 즐길 몫까지 그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빼앗아 쓰고 있다는 점이다. 그 앗아다 쓴 수치가 바로 재정적자이고. 세상에 이런 집안치고 잘 되는 집안 어디 본 적 있는가 말이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재정적자란 투표권 가진 기성세대가 투표권 없고 물정 모르는 미래세대를 등쳐먹는 것이고, 미래세대란 바로 우리의 사랑스런 자식들이다.

미국의 어느 유명한 경제학자는 자신의 책에서 말하고 있다. 재정적자가 커진다고 해서 국가가 부도나는 법은 없다고.

미국은 달러의 나라이니 부도가 나지 않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재정적자가 커지면 커질수록 후손 나아가서 그 손주와 증손, 고손까지 등쳐먹는 결과가 된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명분? 얼핏 들으면 그럴 법 하다. 재정적자를 통해 그냥 지출하거나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 있는 분야에 우리 어른들이 다 잘 알아서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재정적자를 통한 투자라는 판단이 설 지라도 어디까지나 세금을 내게 될 다음 세대가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 맞는 것이지 부담을 지지 않는 지금 어른들이 판단할 일은 아니지 않는가.

국가 재정적자는 액수가 얼마냐에 상관없이 앞 세대의 越權(월권) 행위이다.

민주화 이래 세금 올린다 하면 다 싫어하고 표 떨어지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앞당겨 가불받아 쓴다. 그것도 모라자서 민자사업이라는 이상한 방식으로 미래의 국가 빚을 더 늘리고 있다.

제발이지, 지하철, 좀 서민적이어도 좋다. 으리으리한 인테리어로 도배된 지하철 같은 거 안 타도 좋으니 그런 거 좀 하지 말았으면 한다. 체질상 그런 색조화장 이젠 노 땡큐다.

신축 중인 용산 구청 옆을 지나다 깜짝 놀랐다. 10 만톤 짜리 미국 항공모함을 드라이 독에서 건조하고 있는 줄로 착각했다. 철골과 유리 건물이니 나중에 엄청난 냉난방비는 뭘로 감당하지? 물론 앞당겨 쓰겠지, 뻔하지 않은가.

디자인 서울은 디자인‘틱’ 서울이다. 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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