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늘 잊지 않고 들르는 사이트 중에 ‘포린 어페어즈’가 있다. 잡지는 유료이지만 사이트 기사는 대부분 개방하고 있다.
공짜로 보여주는 이유가 있다. 대외 문제에 관해 미국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이트이자 동시에 그들의 생각을 외부에 알리는 역할, 즉 외교의 첨병노릇을 하는 사이트이기 때문이다.
작년 3월, 금융위기가 한창일 때 이 사이트의 임시 선임연구원이자 전임 IMF 아시아/태평양지역 경제 보좌관을 지낸 바 있으며 중국 경제통인 ‘스티븐 더너웨이’(Steven Dunaway)란 양반이 상당히 의미심장한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제목은 “글로벌 불균형과 금융위기”였다.
영문 제목은 ‘Global Imbalances and the Financial Crisis’이다.
論旨(논지)인 즉은 미국에 금융위기가 닥쳐온 것은 본질적으로 중국의 수출과 미국의 수입에 따른 무역 불균형이 원인이며 따라서 이를 시정하지 않고 단기적인 대책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불균형을 어떻게 교정할 수 있느냐 하는 방법론까지 제법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이 나오면서 ‘글로벌 불균형’이란 말은 삽시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런저런 경제칼럼이나 관련 연설에서 작년 한 해 동안 귀가 따갑도록 보고 또 들어야 했던 유행어가 되었던 것이다.
반드시 그것이 원인이라는 점에 대해 동의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상당히 설득력이 강한 주장이었고 잘못되면 늘 그렇듯이 내 탓이 아니라 남의 탓으로 돌리기 좋아하는 사람의 습성으로 인하여 이 사람의 주장은 많은 미국인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그래, 맞아, 이 모든 어려움은 모두 저 싸구려 생필품을 수출하는 중국 놈들 때문이야!’, 얼마나 편한 설명이고 해명인가 말이다.
현재 이 양반은 위엔화를 절상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있는 오바마 행정부의 對中(대중)정책에 대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는 핵심 인물로 부상하고 있다. 포린 어페어 지에 수시로 위엔화 절상의 필요성과 전략 등에 관한 기고를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사람의 글을 주의 깊게 읽노라면 장차 미국이 어떤 전략과 대책을 세울 것인지를 엿볼 수 있다고 여긴다.
최근 미국과 중국 관계는 제법 불편한 외양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대만에게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판매하고, 특히 오마바 대통령이 달라이 라마를 만나려고 하자 중국은 국영 ‘인민일보’를 통해 공개적 경고를 날리기도 했다.
그 이면에는 위엔화를 절상하라는 미국의 압력과 그것이 외부 압력으로 비쳐지는 상황에서 결코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는 중국 당국 간의 힘겨루기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유럽 발 국가재정 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유로에 대해 더 이상의 달러 약세를 막아내는 데 성공한 미국의 칼끝이 중국을 본격 겨냥하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있다. 더 크게는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고.
작년 초만 해도 중국의 2조 3천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고 중에 그 70 % 는 미국 국채였고 이에 만일 중국이 국채를 시장에 내다 투매해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 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그 대체 수단인 유로화가 저리 빌빌 거리는 이 마당에 와서 미국은 마음 놓고 배짱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디 한 번 물량을 쏟아내 보시지 그래, 너희들만 잔뜩 손해 볼 걸 하고 말이다.
유로 사용국들이 그리스를 구제해주고 싶어도 특히 독일 납세자들은 우리는 엄청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내핍 생활을 하고 있는데 저 ‘날라리’ 그리스를 구제해준다니 그게 말이 되느냐?
그리고 또 그리스를 구제해주고 나면 포르투갈이나 스페인, 이탈리아 등 줄줄이 사탕인 데 언제까지 다 돈으로 때울 수도 없지 않느냐? 그럴 바엔 차라리 유로를 포기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리스만이라도 유로 존에서 축출하는 것이 좋지 않으냐 하는 논의가 분분한 독일인지라 구제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니 사실 달러는 묘한 균형 상태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달러로 보유한 자산, 외환보유고를 다른 통화나 자산으로 마땅히 바꿀 방법이 없다는 점, 엔화로 바꿀 수도 없고 유로로 바꿀 수도 없는 마당이라 달러의 위상이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슬슬 미국이 금리 인상을 준비한다고 하니 더더욱 그렇다.
그러면 더너웨이가 ‘포린 어페어’에 올린 그간의 기고를 잠깐 살펴본다.
작년 10월 13일자 “장차 중국이 버벅거릴 이유”에서는 중국 경제의 성장이 무척 인상적으로 보이겠지만 사실 별 것이 아니며 장차 소비에 기반을 둔 모델로 바꾸지 않으면 결국 어렵게 될 것이라는 논지의 글이었다.
그리고 11월 19일자 “미중 경제관계에 있어 신화와 사실을 구분해야 한다”는 제목의 글에서는 미국의 중국 의존도보다는 중국이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더 크다는 주장을 펼쳤다. 중국, 아직은 미국이 무서워할 필요가 없으니 과감하게 밀어붙이면 된다는 내용이다.
이어 오늘 그러니까 미국 시간 2월 18일자로 “중국 위엔화 인상, 압력의 강도를 높여야”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도 이 기사 때문이다.)
내용은 중국에 대한 국제적 압력이 지속되어야만 위엔화 절상이 이루어질 것이며 그렇게 되어야만 글로벌 경제의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을 주장하고 있다.
재미난 점은 ‘미국의 압력’이 아니라 ‘국제적 압력’이란 말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이 말은 미국이 나섰으니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 한국, 그리고 너희들 유로 존, 잘 하면 봐 줄 수도 있으니 대중국 압력에 동참하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금년 2월 10일자로 포린 어페어 지에 아주 이례적인 논문이 하나 올라왔다.
중국의 영향력 있는 베이징 대학의 경제학자 요양, 영문명으로 Yang Yao 교수가 베이징 컨센서스의 종말, The End of the Beijing Concensus 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올린 것이다.
베이징 컨센서스란 1978 년 등소평에 의하여 채택되고 중국 공산당 핵심이 동의한 개혁 개방 정책을 말한다.
내용을 읽어보니 개혁 개방이 경제적 성장과 발전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케 하고 그 성장의 과실을 전 인민이 나누기 위해서는 민주화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중국에 거주하면서 중국 당국에 대한 비판이 될 수 있는 글을 올렸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서 중국 인터넷 사이트들을 뒤져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미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인터넷 상에 영문 내용을 중국어로 번역해 올린 사이트도 나타나고 있다고 하니 상당한 파문이 예상된다.
이는 요양 교수 본인의 의도를 떠나 포린 어페어즈에 중국 당국의 정책을 비판한 글이 올라왔다는 것은 어찌 되었든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공산이 크다.
그리고 벌써 이용당하기 시작했다. 이번 중국 위엔화 인상의 근거로서 미국 학자들만의 주장이 아니라 중국 내부의 영향력 있는 학자가 부분적이긴 하지만 미국의 주장에 동조하는 글을 올린 결과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포린 어페어즈’ 지로서는 큰 거 한 건 올린 셈이고.
현재 전선은 유로화에 대한 달러의 공세 국면이지만, 서서히 그 다음 막이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다.
글로벌 파워 간의 싸움이 간단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오랜 만에 저녁 시간을 내어 깊이가 있는 글을 올린다. 마음 같아서야 원문을 모두 번역하고 싶지만 어디 그게 만만한 일이어야지, 하지만 가끔씩은 이런 글을 올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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