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Maya)에 대해 얘기하고 나니 구원에 대한 기독교적 가르침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문득 어릴 적의 생각이 기억났다. 좋은 출발점이 될 것 같아 그 지점에서 얘기를 시작하기로 하자.
하느님이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진심으로 오래도록 잘 살게 하려는 마음이었다면, 아예 善惡果(선악과)라는 위험한 물건을 멀리 치워놓든가 아니면 처음부터 없애버릴 일이지 왜 거기에 두고는 아담과 하와더러 너희들 저 거 먹으면 큰 일 난다고 경고만 했을까 하는 이유 있는 항변.
좋게 해석하면 하느님의 원초적 실수라 하겠고, 좀 악의적으로 해석한다면 혼내주려고 미리 짜놓은 각본이 분명하다는 것이 어린 시절의 내 생각이었다.
엄마가 외출하면서 식탁에 맛있는 달콤새콤한 사과를 보기 좋게 놓아두고는 아이에게 너 저거 손대면 혼난다고 말하는 것과 진배없지 않은가!
그러니 그것은 실로 '치명적인 유혹'(fatal seduction)이었다.
선악과의 문제는 나이가 들어 30 대가 되자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해졌다.
애당초 선악과를 치우지 않고 거기에 둔 것은 하느님의 각본이 분명하다. 사람들을 에덴동산에 마냥 두기 보다는 결국 선악과를 먹게 함으로써 군대 말로 ‘한 따까리’ 고생을 시킬 생각이 처음부터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느님은 아담 부부가 原罪(원죄)를 짓도록 사전에 치밀히 유도한 것이라는 해석이었다. 이른바 ‘원죄유도설’이 30 대의 내 해석이었다.
음모론에 혹하기 쉬운 30 대 청년다운 해석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각본을 하느님은 만들어야 했던 것일까 하는 점에 생각이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음모론은 배후에 그것으로 인해 이득을 보는 세력이 있는 것이 定石(정석)이니 말이다.
무엇을 얻고자 함일까? 이 대목이 실로 중요하다.
만약 이 대목에서 원죄를 저지르게 하는 각본의 의도가 악의적인 것이었다면 그로부터 靈知主義(영지주의)적 교리로 빠지게 된다.
영지주의란 천지 창조부터가 근본적으로 惡意(악의)였음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니 善意(선의)로 해석한다면, 원죄를 유도한 것은 모두 깊은 뜻이 있었다는 식으로 가야한다.
궁극적으로 인간들을 한바탕 열나게 뺑뺑이 돌린 다음 낙원으로 다시 돌아오도록 해야만 에덴동산의 진정한 행복을 알 수 있으리라는 심오한 뜻이 있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방법이다.
이건 충분히 말이 된다.
귀한 자식일수록 고생시켜야 한다는 옛말과도 통하고, 苦盡(고진)이 되어야 甘來(감래)가 되는 수순이니 말이다.
사실 이런 해석은 수많은 유대의 선지자들이 제시한 논리이기도 했다.
유대인의 나라가 망하고 온 민족이 타 민족에게 복속당하고 고생하게 된 것을 두고 하느님의 뜻으로 해석했던 것이니.
그렇기에 선지자들은 언젠가 갖은 고생이 끝나고 영원한 천국이 도래할 것임을 약속해야만 했다. 드라마는 완결이 되어야 하는 것이니. 종말론이란 따라서 무서운 얘기가 아니라 드라마에 끝이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끝이 난다는 고생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나 보다.
하느님의 시간표와 인간의 시간표는 스케일에 있어 너무 큰 차이가 있었는지 모른다. 하느님은 좀 더 느긋했고, 인간은 좀 더 조급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느님은 그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게 함으로서 원죄를 代贖(대속)토록 했으니 예수님과 그 말을 믿는 자는 대속의 효과를 얻도록 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 해석은 예수의 강림으로 ‘지상천국의 도래’라는 약속이 실현되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욕망과 고통으로 가득한 눈앞의 현실 세상은 예수를 믿는 자라면 이미 천국인 것이고, 믿지 않는 자 여전히 뺑뺑이 돌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란 구호는 길거리에서 워낙 시끄럽게 떠들어대니 좀 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야말로 福音(복음)인 것이다.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하느님, 어인 연유로 이처럼 조건부 천국만을 만들어놓으셨나요? 믿어야만 천국이고 믿지 않는 자 지옥인 이 불완전한 천국을 말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모두가 강제적으로 믿게 하는 권능은 하느님에게도 없으신가요? 아니면 혹 여전히 다른 의도를 가지고 계신 건가요?
나는 아직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그래서 답을 얻기 위한 기도는 계속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미 확고하게 알고 있는 것도 있다. 하느님의 신비는 인간의 생각 저 편 너머에 있다는 점만은 알고 있다. 그런 나는 여전히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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