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바로 지켜본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마다 먹기 위해 살기 위해 싸우고 또 더 잘 먹고 더 잘 살기 위해 간단없이 싸우고 있는 세상이다. 때로는 눈뜨고 볼 수 없으리만큼 처절하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가 힘든 까닭이다.
그러나 세상의 본 모습이 이런 투쟁만이라면 차라리 만성이 되고 심장이 강해져서 쳐다보는 것이 나중에는 어렵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투쟁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고 아껴주는 장면도 흔히 목격되고 때로는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도 존재한다. 그런 까닭에 세상을 있는 그대로 지켜본다는 것이 더 어렵게 되는 것이다.
나쁜 놈만 있는 세상이라면 원래 그런가 보다 하면서 내가 더 나쁜 놈이 되면 그럭저럭 편하게 살아갈 수 있기도 하겠다.
여기까지라면 차라리 편하다. 그런데 세상에는 앞서 얘기했듯이 정반대의 모습도 존재하고 또 자주 있다는 점 때문에 세상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이해하기도 힘들고 받아들이기도 힘들다.
어떤 경우 동일한 한 사람 속에서 극단의 善(선)과 극단의 惡(악)을 목격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좀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살아있던 가축을 죽이는 일을 전문적으로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을 사회는 비난하지 않는다. 또 비난해서도 아니 된다.
우리 모두 고기를 먹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共犯(공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일의 참혹성과 끔찍함은 불변의 사실이다.
최근 우리 소, 韓牛(한우)를 지키자는 구호가 제법 무성하다. 물론 한우를 키우는 축산농가의 권익을 보호하자는 말인 줄은 알고 있지만, 감성에 호소하기 위해 ‘한우를 지키자’는 표현이 과연 쓸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나는 모르겠다.
그런가 하면 인권과 생명을 존중하라고 외치는 사회운동가들이 시위를 마친 뒤 수고했다며 소주에 삼겹살을 먹는다고 생각해보라.
그들이 존중하라는 외치는 생명이 과연 어떤 생명인지도 도저히 알기가 어렵다.
지금 여기서 나는 누군가를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라, 세상은 이처럼 냉정한 눈으로 바라볼 때 엄청난 모순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알 수 없는 세상인 것이고, 그렇기에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 된다.
그 결과 사람들은 물론 나 역시도 세상을 선택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어느 날, 무척이나 경사스러운 날, 세상의 끔찍한 일을 직시하라고 한다면 과연 당신은 그러고 싶겠느냐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느 면에선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지 말라는 말과 같은 의미일 때도 있다.
세상을 直視(직시)한다는 것은 따라서 상당한 위험한 일이다. 흔한 말대로 잘못하면 다치는 것이 세상을 직시하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말의 의미 속에는 세상을 직시하기 보다는 대충 흘려볼 수 있는 어떤 균형을 지니게 된다는 뜻도 들어있다 하겠다.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쓴 이 글을 따라오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겠다. 아직 하고자 하는 말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면 그만 당신을 괴롭히고 본론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내 나이 쉰 하고도 다섯이다. 물론 세상을 대충 흘려가면서 선택적으로 볼 수 있는 균형이 내 속에 있지만, 그래도 힘겹기는 마찬가지이다.
이 글은 당신 역시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찾아낸 나름의 방법에 대해 얘기함으로써 다소나마의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아니 이 양반 무슨 마음 약한 개소리하고 있어! 하는 분이라면 물론 읽지 않아도 좋다. 그러니 혹시 그런 분이라면 이 글이 위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야’라는 것이 있다.
영문으론 Maya, 길게 소리 내는 장모음이라 ‘마아야아’라고 발음하는 것이 정확하지만 편의상 마야라고 하자.
마야는 힌두철학의 핵심적 용어이다. 산스크리트어로 ma 가 not, ya 는 this 로서 not this, 즉 이것이 아니다 하는 의미이다.
불교에서는 마야를 핵심 개념인 無明(무명)의 동의어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힌두 베다 철학의 핵심인 ‘우파니샤드’에서 ‘마야’는 ‘우주적 환영’이란 의미를 지닌다.
宇宙(우주)적 幻影(환영)!
우주의 창조주가 만들어낸 거대한 환영 또는 환상이 바로 마야이고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이라는 것이 우파니샤드의 가르침이다. (참고로 유명한 영화 ‘매트릭스’는 이런 관념을 빌려온 것임을 밝혀둔다.)
모든 것이 우주적 환영이고 환상이라는 우파니샤드의 이 가르침은 내가 살아오면서 발견했던 하나의 커다란 위안이다.
나는 하나의 ‘위안’이란 말을 했다. 즉 실체적 진리와는 관계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주와 세상의 실체적 진리에 대한 파악은 어차피 우리의 능력 밖에 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나 역시 종교적인 사람임을 고백한다. 그러니 위안이 되었다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마야, 이 세상이 커다란 우주적 환상이라는 사실을 당신이 받아들일 것 같으면 세상의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을 이해하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편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마야, 즉 모든 것이 하나의 幻(환)놀음이니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삶 역시 환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렇기에 어떻게 살든 잘 살든 못 살든 모두가 환영인 탓에 거기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태도는 오늘날의 인도 사람들 사이에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또 마야, 모든 것이 환상이고 환영인 탓에 그 어떤 모순과 삶의 잔혹성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 때로는 엄청난 포용성으로도 우리에게 비쳐진다.
나아가서 힌두 철학과 불교 철학에서 엿볼 수 있는 커다란 포용성 역시 이 마야에서 온다.
마야를 긍정하는 오늘날 인도사람들의 행동, 특히 카스트 제도와 같은 것은 우리 눈에 대단한 무기력함과 비겁함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모순을 적극적으로 시정하고 타파하려 들지 않는 그들의 자세는 충분히 우리들로 하여금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글로벌 세상에서 그들의 태도와 행동이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능히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동시에 마야를 긍정함으로써 그들이 경쟁적이고 적극적인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나름의 편안함도 지닌다는 점이다.
내 글을 읽는 분들은 가끔씩 나의 글쓰기에서 주장이나 생각, 논리를 강력하게 주장하지 않는 것 같은 분위기를 감지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나는 세상을 음양으로 보는 사람이고 더 크게는 이 세상을 하나의 환영, 즉 마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이 세상을 합리적으로 틀에 맞게 설명할 수 있는 논리와 철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내 생각인 것이다.
古今(고금)에 걸친 동서양의 다양한 철학과 사상의 스승들을 책을 통해 만나오면서 느낀 점 역시 모순을 해결할 길이 없다는 점이다.
하나의 모순을 해결하고 나면 또 다른 모순이 생겨나는 세상, 마치 질량 에너지 불변의 법칙과도 같이 여기서의 모순을 저기로 옮겨놓고 있을 뿐인 것 같은 이 세상이다.
그저 모순과 모순으로 인한 사랑과 슬픔의 수레바퀴가 영원히 굴러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현실의 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동서양의 역사에 대한 넓은 독서를 통해 더욱 굳어졌다.
나는 그 결과 정확한 ‘지식’보다는 ‘위안’을 택하게 되었다.
세상이 그리고 우주가 설명할 수 없는 모순 덩어리라고 해서 세상과 우주와 내 앞의 삶을 냉소적으로 대하고 살아가자는 말은 물론 아니다.
눈앞의 일을 능력 닿는 범위까지는 최대한 이해하고 설명하려고 노력하되, 그럼에도 그것을 넘어서는 저 엄청난 우주적 모순은 그저 하나의 환영이고 환상으로 치부하기로 했다는 것이 나의 자세이다.
그리곤 남은 일은 내 앞에 주어진 시간과 삶과 세상을 한껏 따뜻한 마음으로 후회하지 않도록 사랑하기로 했을 뿐이다.
사랑할 수 있음에도 아낀다면 많은 후회를 남길 것 같아서.
세상은 마야, 우주적 환영이고 환상, 그러니 세상은 언제나 矛盾(모순)이었고 영원히 모순일 것이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슬픔은 세상이 존재하는 한 끝나지 않을 것이고 사랑 또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불교에선 사랑을 慈(자)라 하고 슬픔을 悲(비)라 해서, 줄이면 慈悲(자비)가 된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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