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오늘이 시월의 마지막 날이다. 그런 날에 비가 내리고 있다. 가로에 뒹굴고 있는 낙엽이 스산한 늦가을 정취를 한껏 자아낸다. 아마도 오동은 그 잎사귀를 거의 다 떨구었을 것 같다.
오동은 가을이 오면 가장 먼저 낙엽 지는 나무, 바람이 없어도 불현 듯 툭 하고 떨어지는 모습은 꼭 찾는 이 없는 가을부채 같다.
아파트 입구에서 고양이와 마주쳤다.
늙고 힘이 없는 고양이, 며칠 눈에 보이지 않아 걱정했는데 구석에 쪼그리고 있다가 나를 만나자 야옹-하는 모습이 반가운 기색이었다. 밤마다 먹을 것을 집으로 오르는 길목에 놓아주건만 보이질 않았다. 필시 다른 고양이들에게 밀린 것이 분명하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허둥지둥, 그 사이 자리를 뜰까 싶어 먹을 것을 챙겨서 나왔다. 고양이는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수일간 굶었을 것 같아 소고기 삶은 것을 제법 양이 되게 썰어서 주었다. 입부터 대지 않고 먼저 고마움부터 표시하는 고양이, 내 손에 몸을 한참 부비고 나서야 소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그래, 착한 놈이지. 인사성도 밝고 말이야 하며 등을 쓸어주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삶아진 고깃점으로 변해버린 소도 비록 非命(비명)에 갔지만 이렇게 누군가의 생명을 이어주는 소중한 먹이가 되었으니 필시 좋은 곳에 갔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걱정되던 고양이를 만나 먹이까지 주었으니 한결 편한 마음으로 차안에서 혼자 조용히 콧노래를 불러가면서 사무실로 나왔다.
준다는 것, 줄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서 보상을 받는 것이니 흥에 겨울 수밖에. 몸속에서 행복 호르몬이 마구 분비되었다. 허밍으로 이용의 노래를 하다가 어느 사이 최성수의 ‘동행’으로 변해갔고 다시 변진섭의 ‘인생의 무게로 넘어질 때’라는 가사가 든 제목 모를 노래로 변해갔다.
짙은 구름이 낮게 드리우고 추적비가 내리고 있다. 추적추적 내린다 해서 추적비. 가을 秋(추)에 방울질 滴(적), 없는 말이지만 만들어보기도 한다.
건너편 건물 담벽, 붉게 물든 담쟁이 넝쿨 잎이 비에 젖어 번들거리는 모습이 비에 옷 다 젖은 채 웃고 있는 개구쟁이 같다.
소소한 일들을 소소한 글로 만들었다. 그리고 행복하다. 내가 행복하니 2009 년 시월의 마지막 날도 행복해하는 것 같다. 여러분도 행복하시길. 행복하지 않다면 행복하게 만들어줄 누군가에게 전화라도 걸어보시기를.
늦가을답게 나지막한 소리로 비음을 섞어서 ‘시월의 마지막 날인데, 혹시 오해할 것 없다’고 약간은 딴전을 피우면서 말이다. 유혹이란 본시 딴전을 적당히 곁들여야 제 맛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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