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가장 행복한 일주일  _  2009.5.27
아내가 태워다주는 차 안에서 라디오 채널을 돌리다보니,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일주일’을 만들거나 또 어떤 일들이 있으면 그럴 수 있겠냐는 주제로 방송을 하고 있었다.

나도 생각했다. 생각은 자유니까.

우선 로또가 일등하는 것으로 첫날을 시작하지, 그것이 무난해, 다음 날은 증시에서 옵션을 샀는데 이게 이런 식의 행운이 되어야 해, 장이 내릴 것 같아서 풋 옵션을 10 개만 샀는데 실수로 1000 개를 샀어, 물론 나는 그 사실을 몰랐어, 그런데 그게 북핵 실험으로 상한가를 간다, 얼른 팔려고 보니 아니 10 개 아니라 1000 개나 있는거야, 무조건 다 팔아치우고 떼돈을 번다.

그래, 둘째 날은 이 정도 하지 뭐. 그러면 셋째 날은 어떤 행운을 만들까?

(차안에서 이유 없이 히죽거리는 나에게 아내가 묘한 눈길을 던진다. 하지만 상관없이 공상은 이어진다.)

셋째 날은 그동안 팔리지 않던 내 책 “차라리 재테크에서 손을 떼라”가 갑자기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고 출판사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온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뉴스를 보는데 예쁜 아나운서 아가씨가 또랑진 목소리로 ‘한 가지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김태규 씨의 책을 찾는 인파로 인해 강남 교보문고가 미어터지고 있다고 합니다.’

순간 놀랐지만, 곧 이어 표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약간 엄숙한 표정으로 ‘짜아식들, 진작 알아볼 일이지’, 한 마디 내뱉는다. 폐부 깊숙이 담배 한 모금을 들이킨 다음 머리 위로 세게 뿜어낸다. 후우-하고.

넷째 날은 연이어 행운을 만나기보다는 하루 정도 숨고르기가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니 이 지독한 행운이 나를 그만 두지 않는다. 산 지 30 년도 더 넘은 땅, 그 땅을 팔면 어떻겠냐고 임자를 찾느라 그간 엄청 수소문하다가 이제 찾았으니 바로 계약하면 어떻겠냐는 전화를 받게 된다.

물론 산 가격보다 800 배 정도 고가로 사주겠다는 제의, 나는 잠시 행복에 겨운 고민에 빠져든다. 오늘은 날도 늦었으니 내일 만나시죠 뭐 하고 약간 거드름을 피며 전화를 끊는다.

다섯 째 날, 무슨 행운을 만들까 아니 만날까? 공상은 자유니까. (아내가 핸들을 돌리면서 뭘 그리 히죽거리냐고 당신 뭐 좋은 일 있냐고 물었다. 난, 그저 아니, 응, 뭐 좀 생각하느라 하고 딴전을 피웠다.)

그래, 행운을 이토록 만났으면 이제 베풀 생각도 해야지, 남을 돕거나 남이 즐거워하는 것 역시 좋은 일 아니겠어?

먼저 정부의 복지시스템의 경계나 테두리 밖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재단을 설립하는 공상에 빠진다. 잘 되기 위해선 돈을 아주 의미 있게 잘 쓸 수 있는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급선무야, 양심적으로 내가 내놓은 돈을 잘 집행할 사람 말이야.

연이어 전국의 버려진 강아지들을 돌 볼 시설을 만들어야지. 밥만 준다고 강아지들의 다친 상처가 아물 턱이 있나? 그러니 생활에 허덕이지만 강아지를 예쁘게 돌봐줄 사람들, 특히 아주머니들이나 노인 분들을 모셔야 해. 강아지 열 마리당 한 사람 꼴로 배정한다면 유기된 강아지 10 만 마리, 그러면 사람은 1 만명, 아니 너무 스케일이 크쟎아. 괜챦아, 어차피 돈은 쓰라고 있는 거야, 그들을 위한 주택도 만들고 상하수와 전기가 들어와야 하니 일단 서울에서 좀 떨어진 땅을 알아보아야 하겠군.

상상, 공상, 망상은 끝이 없다. 나는 이미 즐겁고 기쁘다.

엿새째 날의 공상에 들어가려는데 아내가 이제 내려, 다 왔어, 당신 어디에 신경을 팔고 있는거야 하고 약간 나무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활짝 웃으면서 사실 좀 즐거운 공상을 했어, 아까 라디오에서 가장 행복한 일주일이란 얘기를 했었쟎아, 그래서 나도 해봤어, 저녁에 봐 하고 차에서 내렸다. 아내도 웃어주었다.

그리고 사무실에 와서 잠시 생각에 들었다.

아니 스스로 ‘욕망과의 이별 연습’을 한다고 글로도 썼는데 이거 지나친 거 아니야? 하지만 공상은 공상이니까 하고 안정시켰다. 그리고 글로 옮기고 있다.

그러다가 진지하게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일주일을 만들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해 궁리했다. 답이 나왔다. 실은 그 답을 얻기 위해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생각도 든다.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일주일을 만들 권한이 내게 주어진다면 나는 그 옵션을 죽는 날까지 사용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답이었다. 그러면 계속 행복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조제는 물고기 모텔에서 애인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섹스를 주겠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시간이 좀 흘러 두 사람은 헤어진다.

영화는 끝이 나니까 그런 아름다운 옵션을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의 내 삶은 이어져야 하고 아직 끝을 낼 마음 전혀 없다. 그러니 옵션도 사용되지 말아야 한다.  

사용되지 않는 옵션이 최고 옵션이라는 생각. 나름 철학 같기도 하고 통찰 같기도 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잠시 공상에 빠져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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