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뭔 얘기? 그냥 속는 셈치고 따라와 보시길.
추석 한가위가 눈앞에 있다. 그런데 마음은 무덤덤하기만 하다. 그저 며칠 쉬는 날이구나 싶을 뿐.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우리는 이제 이 말을 이해하지도 납득하지도 못한다.
우리 선조들은 화창한 봄날도 좋아했지만 가을을 더 좋아했고 특히 한가위를 즐겼고 또 기다렸다. 이유는 수확철이었기 때문이다.
햅쌀로 떡을 쪄내고 고기전을 부치고 술을 빚어서 추석 날 아침 뒷산 산소에 올라 경건히 제를 지낸 뒤 하루 종일 배불리 먹고 이웃과도 나누던 명절이었기에 즐거웠던 것이다.
햅쌀로만 된 밥, 한 해 동안 마음껏 먹은 적이 없었으니 그 냄새가 얼마나 구수했을 것이며, 그 귀한 쌀로 쪄낸 떡을 꿀엿에 찍어 먹으니 그 또한 얼마나 甘味(감미)였을 것인가. 게다가 가을 휘영청 밝은 달 아래 고기전을 안주삼아 향기로운 술까지 주거니 받거니 취하도록 마시니 얼마나 豪奢(호사)였겠는가!
그야말로 ‘럭셔리 또 럭셔리’였던 것이니 딱 이 정도로만 늘 자낼 수 있다면 달리 무슨 바람이 있겠느냐 하는 것이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였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에 이르러 어떤가?
쌀밥? 잘 먹지도 않는다. 한 공기 먹으면 끽이다. 떡? 추석되면 몇 개 집어먹기는 먹지. 고기전? 돼지고기 냄새가 싫어 잘 입에 대지도 않는다. 술? 어디 술 못 먹어 죽은 귀신 있나? 동네 수퍼에 좍 깔린 것이 다 술이고 오죽하면 그 비싸고 텁텁한 외국산 와인을 먹어야 술 한 잔 한 셈이니.
그러니 추석은 비좁은 도로를 비집고 고향 집을 한 번 때리고(?) 돌아오는 북새통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나 받지 않으면 다행인 명절이 되었다.
지난 1960 년대부터 시작된 산업발전은 우리 조상들과 선조들이 그토록 바라던 꿈, 일년 내내 한가위와 같은 생활은 물론 그 이상의 ‘드림 라이프’를 이미 구현했고 일상화했다.
그러면 묻겠다. 행복하시냐고?
나는 이미 앞에서 실토했듯, 무덤덤하고 별 흥취도 없다. 다만 성묘하러 먼 길 갈 일 없으니 남보다 편할 뿐이다.
행복하지 않은 이유?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배때기’가 부른 탓이다.
다음으로 그간 좋다는 거 많이 먹은 탓에 뭘 먹어도 감동이 없기 때문이다.
궁극적인 원인은 우리나라가 먹고 살만한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잘 사는 나라가 된 것은 우리의 앞사람들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고자 무진 애를 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만족하지 못하는 불행한 뒷사람이 되었다.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그 간절한 염원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배때기가 불렀고 불만 가득한 우리가 되었다.
안 되면 조상 탓이라더니, 이것 역시 조상 탓을 해야 하나? 이토록 배부르게 만든 것을 두고 앞사람 탓을 해야 할까?
아니, 이 무슨 지랄이고 육갑인가?
나부터도 당장 그 벌을 무겁게 받아야 하리라.
그래서 내가 나를 심문하는 법정을 연다.
피고인인 나: 그건 내 죄가 아니쥐! 감각적 만족이란 그 한계 효용이 엄청스리 빨리 떨어진다는 사실이고 나 역시 그런 정상적 감각을 지닌 사람일 뿐인데 뭔 죄고 뭔 벌?
재판관인 나: 좋아, 그건 인정할 수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좋다. 그러면 앞으로 한 십년간 쌀밥과 떡, 고기전과 술이 엄청 먹고플 정도로 궁기 가득한 삶을 언도하는 것은 어떨까? 받겠느냐?
피고인인 나: 그건 또 그렇지유, 제가 주장하는 것은 타고난 인간의 감각이 그렇다는 것이지 제가 무슨 죄가 있겠시유.
재판관인 나: 그래 너는 네 자신과 너의 감각을 분리하고 감각에 모든 죄를 덮어씌우겠다는 수작인데, 좋아. 그렇다면 너의 오감 중에서 대표적인 혀를 끄집어내어 한 십년간 아무런 맛도 보지 못하게 마비시켜주는 형벌은 어떠냐?
피고인인 나: 대한민국 헌법에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라고 되어있는 걸로 아는데유, 그런 비인도적인 잔혹한 처벌은 위헌 소지가 다분합니다유. 그러니 받아들일 수 없구만유.
재판관인 나: 좋다, 그것이 위헌 소지가 있다니 좀 뒤로 미루기로 하고, 너는 이런 만족을 가져다 준 조상과 앞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들지 않느냐?
피고인인 나: 아이구, 미안하긴 허구먼유. 하지만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리라곤 예측치 못한 그 분들의 잘못도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네유.
재판관인 나: 인간의 잔머리와 자기 합리화는 정말이지 끝이 없구나! 아이큐가 100 만 되어도 순간적으로 100 가지 변명을 늘어놓을 수 있다더니 전혀 빈말이 아니구나. 정말이지 인간의 욕망은 조물주라 할지라도 끝내 채워줄 수가 없으니 쯧쯧쯧. 크구나, 한 인간의 욕망만 해도 우주보다 광대하고 무변하구나!
내가 나를 심문하는 법정은 이로서 끝을 내고 결심 공판은 다음으로 넘긴다.
논리로서는 내가 나를 단죄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한 생각만은 분명하다.
우리의 욕망이란 채울수록 커지고 불행하다는 사실, 그러니 비움으로서 작게 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추석을 앞두고 한 이틀 정도 단식은 못할망정 절식이라도 해야겠다. 그래야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고 추석 음식을 맛나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여러분에게도 절식을 권하고픈 마음이다. 귀경길에서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부부간에 툭탁거리는 일 없도록 서로 조금씩 양보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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