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무거운 글 (1)  _  2009.7.21
이 글은 무거운 글이다. 인간 속에 깃든 魔性(마성)과 그것이 연출해내는 地獄(지옥)에 대한 글이다. 아울러 희망의 글이다. 최대한 간략명료하게 쓰겠지만 무거움을 피할 길은 없다. 그러나 읽어주시면 고맙겠다.

1914 년 유럽에서 발발한 제1차 대전이 그토록 길고 지루하고 처참한 전쟁이 되리라는 것을 예상한 이는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양측 진영 모두 이번 전쟁은 모든 전쟁을 종식시키게 될 ‘끝장 전쟁’일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19 세기 후반에서 20 세기 초, 영국과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러시아 등 유럽 열강들은 전 세계를 ‘땅따먹기’ 하는 과정에서 마지막에 만나게 된 장애물 또는 태클이 그들 스스로임을 알게 되었다.

나름대로 세력균형을 맞추기 위해 동맹도 맺고 상대 진영을 이간질하는 외교전을 펼쳤지만 외교는 외교일 뿐 속 시원한 결말을 안겨주진 않았다.

그러다보니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나라마다 호전적 기류가 득세했다. 한판 화끈한 전쟁으로 모든 것을 결정짓자는 주장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화투를 칠 때, 초저녁의 고스톱이 새벽에 빠른 승부를 위해 섰다판으로 변해가듯 유럽 열강들도 그랬다. 그 결과 독일과 오스트리아, 터키가 한 편을 먹고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와 나중에는 이탈리아가 또 한 편을 먹고 벌린 전쟁이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모두들 이빨을 갈고 있었기에 전쟁 개시와 함께 서로의 정예 병력과 장비를 몽땅 투입하면 두 달 정도면 끝날 것으로 판단되었다. 서로 유감없이 ‘원터치’ 뛰는 전쟁이라 여겼다.

호전적 부추김과 선동질에 들뜬 각 나라의 젊은이들은 기꺼이 조국의 부름에 응했다. 젊은이들은 또 일상의 무미건조함과 직장의 권태를 벗어날 수 있는 위험하지만 신나는 전쟁놀이로 받아들였다.

결과는 처참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과 거의 학살에 버금가는 엄청난 희생, 각 나라의 인적 자원과 산업력, 물자가 동이 날 때까지 전쟁은 이어졌다. 화끈한 한판 승부가 아니라, 더 이상 싸울 수 없을 때까지 이어져가는 장기 총력전이었다.

20 세기 초 지구상에서 문명과 개화의 대표 주자임을 자처했던 유럽 사람들은 마침내 지옥을 눈앞에서 보았다. 그들 스스로가 연출한 지옥이었기에 더더욱 아무 할 말이 없었다.

두 달 걸린다는 전쟁은 무려 5 년을 끌었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전쟁을 끝내고 싶은 생각만 간절했다. 하지만 눈앞의 전쟁에서 패배하면 모든 것을 잃고 만다는 생각 때문에 참아야 했고 인내해야 했으며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전쟁은 상황을 지켜보던 미국이 참전하면서 겨우 끝이 났다.

승리한 측은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기에 패배한 측으로부터 혹독한 배상을 받아내고자 했다. 패배한 측 역시 모든 것을 잃은 마당에 다시 일어설 여지도 없을 정도로 엄청난 배상 요구를 받아들여야 했다.

프랑스는 독일이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끔 영구히 나락으로 밀어버리고자 했다. 이에 다시 미국의 중재로 어느 정도 타협이 되었지만, 여전히 배상의 부담은 엄청 났다.

알거지가 된 사람에게 매달 10 만원씩 갚을 것을 요구하면 그 부담이 엄청나듯 말이다. 국제간에는 법정 파산을 통한 구제 절차가 없으니 더욱 그랬다.

그리하여 감정의 앙금은 더욱 짙어졌다.

또 다시 미국의 도움으로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의 실마리를 보았다. 미국이 독일에게 돈을 꾸어주면 독일은 그 돈으로 영국과 프랑스에게 갚았고, 그러면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 기간 중에 미국으로부터 꾼 돈을 갚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엄청난 부담을 지고 있던 독일 국민들은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고생을 해야 했으니, 그 와중에서 히틀러가 등장했다. 히틀러는 불과 얼마의 시일 안에 산업을 재건하고 군대를 다시 일으키면서 국민들의 생활을 안정시켰다. 한 마디로 인기 짱이었다. ‘하일 히틀러’가 정답이었다.

반면 피폐할 때로 피폐해진 러시아는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이런 과정에서 여전히 분노와 억울함이 가시지 않았으니 또 한 번의 종말 전쟁을 촉발시켰다. 바로 제2차 대전이었다. 여기에 기회를 틈탄 아시아의 일본이 끼어들어 명실 공히 전 지구가 전쟁터로 변했다.

이처럼 두 번의 세계 전쟁은 인류에게 참혹한 재앙을 안겨주었다. 그러니  새겨야 할 교훈도 엄청나게 많다.

세 가지 대목만 얘기하고자 한다.

첫째, 인간 속에는 惡魔(악마)가 깃들어 있으며, 또 그 점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20 세기 초 유럽 사람들은 분명히 문명 시민들이었다. 음악과 예술을 사랑했으며 선량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과학과 기술을 통해 인류의 생산력을 한 차원 높이는 대단한 진보를 달성했다. 유럽 사람들은 선량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문명 세계와 문화권을 은연중에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경멸하고 있었다.

사람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자부심을 지니고 사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더하여 노력과 근면을 통해 경제적 윤택함마저 지니게 되면 더욱 훌륭하다.

그러나 그 자부심과 경제적 윤택함은 역설적으로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 세상에는 상처받은 자아와 경제적 빈곤 속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냥 보면 아무런 흠도 문제도 없지만, 사회적으로는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어간에 악마가 끼어들 틈이 생긴다. 악마는 다양한 목소리와 다양한 타당성으로 다가온다.

‘나는 자부심을 가졌어, 내 신념은 누가 뭐래도 옳아!’
‘나는 상처 받았어, 그러니 이제 되돌려 줄 때가 되었어!’
‘내 노력으로 잘 사는데 무슨 문제가 있어?’
‘왜 나는 노력해도 남들만큼 잘 살지 못하는 거지?’
‘오늘날 성공을 일구기까지 누가 10원 한 장 도와준 적 있어?’
‘나는 양심껏 살았어, 그러나 돌아오는 것이 겨우 이것이란 말인가!’
‘네가 못 사는 것은 결국 너의 문제야!’
‘세상은 없는 놈에게 더욱 가혹해!’
‘하나님은 스스로 돌보는 자를 돌보셔!’
‘예수님은 버려진 양 한 마리를 돌보셔야 해, 내가 바로 그 양이야!’
‘너희들은 인내할 줄 몰라, 그러니 성공할 수 없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그러니 한꺼번에 끝장을 보아야 해!’

이처럼 악마의 목소리는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타당하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은 우리 주변에 너무도 흔하다.

이런 생각들이 혼자만의 것일 때 세상은 평온하다. 아니 평온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모이기 시작하면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서 강해진다. 나중에는 꼭 그렇게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고 반성도 해보지만 이미 흐름을 거역하긴 어렵다.

우리는 사실 그렇게 모질지도 못하고 악하지도 않지만, 한편으로 우리 속에 이런 魔性(마성)이 잠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것이 아니라 直視(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마성을 다스리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마성은 사실 별 것이 아니다. 연쇄살인범이 있는 세상이지만, 그들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조직을 구성하는데 있어 지구상 최고의 존재. 조직화는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의 경쟁에 있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근본 배경이다. 그러나 조직화는 동시에 마성도 조직화시킨다.

그 결과 조직화된 인간의 마성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이상의 地獄圖(지옥도)를 그려낼 수 있다.

더욱이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우리 머리 위에서 또는 우리 밖에서 우리를 다스리고 규율하는 그 무엇인가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우리 스스로가 합리적으로 이치를 따지는 능력, 理性(이성)이 우리에게 충분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서양은 神(신)을 죽였고 동양에서는 道(도)를 날려버렸다.

다시 죽은 신을 살리고 도를 찾는 것은 至難(지난)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야 할 것이다.

인간은 知性(지성)과 感性(감성)만이 아니라 결국 神性(신성)도 함께 가야할 것이다.

역시 이 글은 무겁다,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지만 해법의 방향은 명백하다 본다.

다음 글에서 앞서 말한 세 가지 대목 중 나머지 두 가지에 대해 또 무거운 글을 이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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