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얼음, 욕망과 파멸의 방정식!  _  2009.6.11
먼저 시 한편을 감상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제목은 ‘불과 얼음’이다.

이 세상이 불로 끝날 것이라 말하는 이도 있고,
얼음이라 말하는 이도 있다.
지금껏 내가 맛본 욕망을 두고 말하자면
나는 불을 택한 사람들의 편을 들겠다.
하지만 세상이 두 번 망해야 한다면,
증오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고 있다 여기기에
얼음으로 파멸한다고 말해도
역시 그럴 듯하고
충분하리라.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노랗게 물든 숲속에 난 두 갈래 길로 시작하는 ‘가지 않은 길’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시인이 쓴 불과 얼음이란 시. 시인은 욕망을 불에 증오를 얼음에 비유하고 있다.

평소 나는 걸어가는 사람을 뛰어가게 만드는 두 가지는 慾望(욕망)과 恐怖(공포)라고 알고 있다. 욕망은 당신 길 앞에 놓여 당신을 그 쪽으로 뛰어가게 만들고 공포는 당신 뒤에서 따라오는 칼날과 같아 당신을 그 반대편으로 달려가게 만든다. 둘 다 걷게 하지 않고 뛰어가게 만든다는 점에서 같다.  

그런데 1923 년에 발표된 이 시는 아마도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이라 여겨지는데, 이 시에서는 ‘욕망과 공포’ 대신에 ‘욕망과 증오’라고 말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증오란 것 역시 공포, 두려움에서 오는 것이다. 두려움에 대한 공격적 반응이 증오이기 때문이다. ‘네가 무서워, 싫어’에서 ‘너를 증오해’로 바뀌는 것이 인간의 심리.

그 증오가 조직화되면 세상에는 무서운 일이 일어나는 것 같다. 대표적인 예로 히틀러를 들 수 있다. 그는 유태인에 대한 공포를 증오로 바꾸고 그 감정을 대중들 사이에서 조직화했다. 결과 유태인의 학살이었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보면 증오의 바탕인 두려움 역시 욕망에서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저것을 가지려고 하면 그것은 욕망이다. 그런데 다른 자가 그것을 차지할까봐 걱정이 되면 그것이 걱정이고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이 심해지고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누적되면 증오를 낳는다.

욕망-공포-증오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이 생활 속에서 쌓이면 갈등과 불화를 낳고, 대중 사이에서 조직적으로 형성되면 싸움이 되고 나라들 사이에서 형성되면 전쟁이 된다.

프로스트는 욕망의 제약 없음을 자신 또한 맛보았다고 말하면서 욕망이 세상을 파멸시키는데 있어 먼저라고 말하지만, 문명국 사이에서 벌어진 제1차 대전이라고 하는 참담한 대재앙을 겪었기에 증오 또한 만만치 않다고 털어 놓는다.

그런데 앞서의 논리를 따르면 욕망과 증오는 하나인 것이니 어차피 세상이 망한다면 그것은 두 번이 아니라 한 번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누구는 전쟁을 미친 짓이라 하며 반전 운동을 펼치고, 누구는 전쟁을 일으키는 놈들이 따로 있다고 하면서 음모론을 책으로 쓴다. 이 점에 대해 내가 걱정하는 것이 있다.

반전 운동을 펼치다가 세상이 알아주지 않고 사람들이 따르지 않으면 그 마음은 서서히 증오로 변해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그 운동의 주체가 혈기왕성한 젊은이라면 더욱 그렇다.

전쟁을 만드는 놈들은 정치와 짜고 돈을 버는 놈들이고 군산복합체며 금융가들이라는 주장을 음모론 비슷하게 주장하다가 나중에는 그들을 공공의 적으로 몰아가고 증오심을 유발하고자 애를 쓰게 된다.  

좋은 뜻으로 시작한 것이 나중에는 증오만이 증폭될 수도 있으니 그 점을 걱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심각하게 여겨야 할 사실은 내가 그 점을 염려하다보면 나 역시도 처음의 염려가 두려움이 되고 나중에는 증오심으로 변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반전 운동하는 젊은이를 내가 미워하게 되고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을 내가 미워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이 대단히 중요한 대목이다. 무슨 말인지 언뜻 파악이 되지 않으면 다시 한 번 읽어보시길 권고한다.)

오늘날의 세상 역시 프로스트가 시로서 얘기했던 그 때와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사회에 두려움과 증오가 가득한 지도 벌써 꽤나 오래 된 것 같다. 그간 나는 이쪽저쪽의 많은 활동적인 사람들을 만나 보았다. 대개의 경우 선량하고 고운 사람들이었다.

아, 세상은 어렵기만 하다!

인간인 이상 욕망이 없을 수 없는 법이고, 누군가의 욕망은 또 다른 누군가의 걱정을 낳고 걱정은 두려움을 낳는다. 저쪽의 두려운 표정이 이쪽에서는 다시 두려움을 낳고 나중에는 서로의 적개심과 증오를 낳는다.

그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뜻을 같이 하다보면 조직이 되고 그 결과 두려움도 조직화된다. 그러다보면 그 조직을 끌고 가는 것은 당초의 사람들이 아니라 두려움 자체가 된다. 두려움이 주체가 되고 처음에 뜻을 모은 사람들은 객체가 되는 셈이다.

처음에 어떤 주장을 낭만적 열기로 시작했다가도 어느 시점에 가면 낭만과 선의는 사라지고 증오가 지배하게 된다.

증오에 놀란 또 다른 사람들이 조직을 하고 그 결과 또 다른 증오를 만든다. 증오를 만들면 또 다른 사람들이 그에 대한 증오를 조직하니 一波萬波(일파만파)라 당장 어떻게 할 수도 없다.

이는 해법이 아님이 분명하지 않은가!

요즘 우리 사회가 疏通(소통)을 떠들어대지만, 이는 그만큼 소통이 어렵다는 것을 反證(반증)하고 있다는 생각만 든다. 소통을 외치는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내 이야기가 옳으니 너는 들어라 그냥 받아야 한다’는 식이니 그것이 어찌 소통이겠는가.

그저 모두들 소통을 외치고만 있을 뿐이고 그런 사이에 참으로 소통을 주장하는 이의 목소리도 있지만 너무나도 작고 미미하여 들리지 않는다.

갈등의 확산일 뿐, 화해의 길은 현 시점에서 너무나도 요원하다. 화해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가 아니다. 억지로 하나임을 강조하고 강제해도 엉터리이지만, 하나가 될 수 없을 때 대한민국의 번영을 기약할 수 있겠는가. 나아가서 우리 민족의 소원인 남북한 겨레의 하나 됨은 또 어떻게 바라볼 수 있겠는가.

가정불화와 이혼을 주제로 다루는 드라마에서 우리가 보았듯이 우리에게  일정 시간 동안 조정기간을 줄 수 있는 법정은 없을까 생각해본다.

상대가 나를 미워하고 증오한다 해도 너무 놀라지 말아야 하리라. 미움이나 증오는 사실이 아니라 나와 당신의 착각인지도 모른다고 일단은 스스로의 속을 회의적으로 쳐다보는 자세가 더 필요한 것 같다.

대화가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잔뜩 의심하고 불신하는 상태에서의 대화는 자칫 좋지 않은 감정만 폭발적으로 증폭시킬 수도 있다. 갈등의 부부가 잘 해보자고 출발한 여행길에서 완전 갈라서고 돌아오듯이, 섣부른 대화나 소통보다 우선은 내 마음을 갈아 앉히는 것이 더 필요하리라.

당분간 대화를 하지 않고 눈앞의 일만 몰두한다. 그리고 마음이 다소 가라앉으면 대화를 시작한다. 다만 비난의 말은 하지 않기로 약속한다. 어기면 무조건 상대에게 사과한다는 약속도 필요하리라. 그래도 대화가 잘 안 된다 싶으면 다시 냉각기를 갖는 이런 방법이 필요할 것 같다.  

그 방법만이 서로 간에 누적된 증오의 고리를 하나씩 풀어갈 수 있는 출발점이 되리라 여겨진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런 중재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른바 元老(원로)라 칭해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렇게 얘기하고 나니 다시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꼴이 되었다. 다시 원점이다.

우리는 그간 원로가 될 수 있는 훌륭한 자질의 분들을 모두 부정해버렸다. 경제도 발전했고 민주화도 이루었지만 원로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만들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답은 이제부터라도 어렵지만 원로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니 역시 많은 세월, 어쩌면 십 수 년에 걸친 세월을 다시 기다려야 하리라. 아울러 이제부터라도 낮지만 온화한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겠다.  

창밖을 보니 비온 후라 하늘이 더 없이 맑고 청명하다. 아! 나는 지금껏 무슨 생각에 이토록 파묻혀 있었는가 싶다. 그저 한낮의 꿈자리 같다. 여기 로버트 프로스트의 ‘불과 얼음’ 원문을 옮긴다. 영어 공부도 할 겸 천천히 낭독해보시길.

Fire and Ice

Some say the world will end in fire.
Some say in ice.
From what I've tasted of desire
I hold with those who favor fire.
But if it had to perish twice,
I think I know enough of hate
To say that for destruction ice
Is also great
And would suff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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