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客(논객)의 시대  _  2009.6.27
지금 우리나라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다만 군사적(military) 전쟁이 아니라 사회적(social) 전쟁이다. 군사전쟁이 아니라 다행이지만, 사회적 전쟁 역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케 한다.  

전쟁인 이상 일단 이기는 것이 급선무가 된다. 승리하려면 단결과 결집이 중요하기에 단결과 결집을 방해하는 어떤 말과 행동도 이적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사실 자체가 벌써 사회적 비용에 속한다.

사회적 전쟁은 특성상 말과 글이 무기이고 火力(화력)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 언론 미디어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글과 말은 지난 날 의미에서의 評論(평론)이 아니라 전투무기인 셈이다.

고전적 의미에서의 평론은 오늘날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전쟁 상황에서의 말과 글은 바로 무기인 이상 효과는 상대에 대한 타격력과 우리 편의 단결력을 고취시킬 수 있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말과 글로 그런 효과를 내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煽動(선동), 즉 부추김이다.

오늘날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른바 論客(논객)이라 이름 지워진 사람들이다. 인터넷 공간은 논객들이 등장하고 자라고 세력을 얻는 주 무대이고, 여기서 인정을 받으면 종이 매체로 진출하고 더 나아가 지상파 방송에 등장한다.

종이 매체는 본선이고 지상파 방송에 등장함은 그 논객이 적어도 8 강전까지 진출했다는 것과 거의 같다.

하지만 강렬함은 인터넷 공간이 훨씬 더하다. 거침이 없고 또 거침이 없어야 클 수 있기 때문이다. 헝그리 복서 정신은 인터넷 공간에서 작열하고 있다. 본선 무대로 오를수록 재미는 급격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 상대 또한 막강하기 때문이다.  

절정 고수간의 겨루기는 언제나 그렇듯 눈에 확연히 들어오지 않는다. 스포츠라면 억지로 승부를 가리도록 규정이 있지만, 사회적 전쟁에서 절정고수들의 승부는 사실 누가 이기고 졌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내 눈에 논객은 로마시대의 검투사, 글래디에이터로 비친다. 검투사의 번득이는 갑옷과 무기는 논객들의 화려하고 눈부신 언변과 동일하다는 생각이다.  

이 방면에 과문한 터라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논객이란 스타일을 확립시킨 사람은  ‘유시민’씨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 원형은 1990 년 5공 청문회 당시 눈부시게 등장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인이었지 논객은 아니었다.

그리고 많은 논객들이 등장했다. 특히 2002 년 대통령 선거 무렵 등장한 ‘서프라이즈’가 기폭제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자 연이어 새로운 스타 논객들이 진보 진영에서 등장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보수 측 평론가들도 서서히 논객 스타일로 변모해갔다.

예전 평론가들은 보수와 진보 모두 이성에 호소하는 품위와 체면을 갖춘 점쟎은 스타일이었기에 논객들의 맵고 날카롭게 찌르는 스타일을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그러자 어느 사이 양쪽 모두 논객 스타일만이 통하는 시대가 되었다.

논객 시대가 열리면서 우리 사회는 드디어 사회적 전쟁의 시대로 돌입했다고 나는 본다.  

논객들이 사회적 전쟁을 촉발한 것인지 사회가 전쟁 상태에 들어서면서 논객의 시대가 된 것인지 그 점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회적 전쟁이라 했지만 적어도 안심인 것은 비방과 협박을 통한 정신적 폭력은 있어도 물리적 폭력만큼은 최대한 자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전쟁에서 물리력에 호소하는 것은 패배를 자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을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니, 그만큼 우리 사회가 성숙했다는 생각이다.

그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보수 진영에도 젊은 논객이 등장했다. 변희재라는 젊은이, 기존에 막강한 논객들이 지니지 못한 신랄함과 전투력을 지닌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논객들도 ‘버전 업’을 하고 진화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우파 진영의 거함 조선일보도 드디어 변희재를 크게 보도했다. 키워주겠다는 것이고 조선일보에 집중 보도되었다는 것은 지상파 방송의 조명을 받았다는 것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대담 내용을 읽어보고 크게 깨닫게 만드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기자가 “왜 사용하는 용어는 그리 험악합니까?” 하고 묻자,
그가 답하길, “인터넷 글쓰기는 선동형이니까요.”

환하게 웃었다. 젊음이 다운 솔직발랄함이 나를 웃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논객의 시대가 끝날 때까지 지금의 사회적 전쟁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말아야겠다고. 논객의 자질도 성격도 아닌 나는 사회적 전쟁이 남기는 傷痕(상흔)을 치유하는 글을 쓰고자 할 뿐이기에.

싸우는 것도 이유가 있는 것이고, 또 싸우고 나면 치료도 해야 할 것이니 역할은 따로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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