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과 군더더기  _  2009.6.24
살아감에 있어 우리는 핵심과 군더더기를 구별해야 할 때가 있다. 또 구별할 줄도 알아야 한다. 더하여 구별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이사해서 2-3 년이 지나면 그 사이에 집안에는 실로 다양한 물건들이 들어서있음을 알 수 있다. 살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들여놓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그처럼 한 없이 무언가를 주변에 붙이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멋쟁이 여성이 있다. 철따라 유행 따라 멋을 내기 위해 실로 다양한 물건들을 사들인다. 그러면서 외출 시에 옷장을 열면 입을 옷이 보이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코디의 명인인 본인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또 무언가를 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마치 쇼핑하러 나서는 얼굴이 대단한 正義(정의)의 구현인양 결의에 차 있다.  

나는 그런 것들을 삶의 군더더기라고 부른다. 군더더기는 나쁜 것이 아니라  삶의 풍요로움을 대변하는 것이고 내 삶을 장식하는 중요한 물건들이다. 따라서 군더더기는 바로 풍요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군더더기가 많은 삶이 바로 풍족하고 풍요로운 삶인 것이다.

군더더기는 꼭 옷이나 가구에 한정되지 않는다. 실로 다양한 항목들이 있다. 우리가 2000 cc 차를 사는 것도 군더더기이고,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도 군더더기이다. 남이 미처 먹어보지 못한 이상한 나라에서 온 커피를 음미하면서 맛의 차이를 느끼고자 애쓰는 것도 아주 좋은 군더더기이다.

더 나아가서 자녀가 학교 잘 다니고 모자란 과목은 단과반에 보내도 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자녀를 끌고 귀족과외를 찾아가는 것도 아이를 위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본질은 학부모인 당신에게 일종의 군더더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군더더기를 달리 虛榮(허영)이라 하기도 한다.

허영 또는 군더더기는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장식품의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허영을 부정적으로만 얘기하는 것 역시 약간 정신적으로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여긴다. 그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환타지’의 부분적 구현이기에 정신 건강에 대단히 유익할 때가 많다.

가진 자의 과시와 허영을 비판하는 사회적 여론도 많지만, 가진 자가 그런 방법 말고 가졌음에서 오는 차이를 달리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워낙 가지지 않다보니 가진 자의 이상한 과시가 때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는 있지만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그다지 난해할 것도 아니지 않은가, 아, 부러워요. 정말 풍요롭고 대단하군요, 이렇게 말하라고 하긴 다소 무리지만 그런 과시적 행동에 당신의 마음만 다치지 않는면 되는 일이다.  

나는 그래서 자기 나름의 한도에서 마음껏 허영을 부리고 군더더기를 붙이고 다니라고 오히려 권하고 싶다. 덕지덕지 붙여도 좋고 다닥다닥 붙여도 좋으니.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이 참치 마요네즈 삼각김밥을 곁들이면 또한 허영이고 사치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마음껏 허영하라고 권한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이처럼 군더더기나 허영이 전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했지만, 핵심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고 글머리에서 말한 까닭을 이제 말할 때가 되었다.

삶이 어려운 경지에 처하거나 비상한 결단이 요구될 때도 있다, 누구나.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당신은 말을 타고 있고, 지닌 물건이 워낙 많아 열 대의 나귀 수레에 싣고 길을 가고 있다고 하자. 그런데 10 여리 뒤에서 탈레반 같은 놈들이 당신을 노리고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다고 하자. 탈레반이 원하는 것은 바로 당신의 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대처를 내려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다 버리고 정말 필요한 물건, 그리고 가벼운 것만 약간 지니고 말 잔등에서 박차를 가해 최대한 신속하게 줄행랑을 쳐야 할 것이다.

바로 그 때 당신이 지니고 떠나는 물건이 바로 당신 삶의 핵심인 것이고, 남겨두는 물건들은 삶의 군더더기인 것이다.

군더더기는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들이지만 비상시국에선 아무 짝에도 필요 없는 것들이다. 핵심은 화려하지 않고 자랑할 물건이 아닐 순 있겠지만 없어선 안 될 물건들인 것이다.

도망에 성공하면 당연히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그 아깝고 좋던 것들을 다 버렸네, 아이고 이제 나는 망했네.

말은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그런 결단을 내린 스스로를 대견하다고 여길 것이다. 목숨이 붙어있어야 군더더기를 다시 붙일 수가 있다는 판단을 내린 당신은 실로 현명한 사람인 것이다.

이 글에 실린 얘기는 두 가지. 하나는 허영은 좋은 것이니 되는 한 마음껏 누리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허영에 매몰되진 말라는 것이다.  

나는 이 지혜를 어려서 보았던 ‘마켄나의 황금’이란 영화에서 얻었다. 비밀스런 황금의 계곡에서 지진이 나서 땅이 꺼지는데 금을 최대한 챙기다가 결국 금속에 파묻혀 죽는 바보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그러니 이 글을 읽고 당신은 핵심과 군더더기가 무엇인지 스스로 한 번 노트에 정리해보시길. 비상훈련 셈치고.

우리 국운의 겨울이 온다고 글로 썼더니 많은 분들이 방명록이나 또 개인적 메일을 통해 대처방법을 물어온다. 명리학 칼럼을 통해 이미 다 답변을 했지만, 줄여 말하면 핵심과 군더더기를 구별할 줄만 알면 겨울이 아니라 겨울 할아버지가 와도 얼어 죽지 않을 것이다.  

군더더기를 마음껏 누리자, 하지만 때로는 다 버릴 줄도 알아야 다시 군더더기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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