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과 결실, 그 10 년의 時差(시차) (상)  _  2009.8.17
옛날 이야기책에 ‘부모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 10 년간 칼을 갈았다’는 말이 나온다. 10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도 있다.

그런데 이 말이 실로 그저 하는 소리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운명을 감정하고 상담을 하면서 실제 경험한 사실이고 10 년이란 말도 대충 10 년이 아니라, 정확하게 10 년인 것도 검증했다. 그래서 많이 놀랐다.

10 년이면 강산도 변하고 세상도 바뀐다. 사실이다.

하는 일마다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10 년간 하면 될 일을 이것 2 년, 저것 3 년, 이런 식으로 일을 변경하기 때문이다. 성공하고 싶다면 10 년간 그 일에 매달려라, 무조건 되니 말이다.

어떤 일에 목표를 두고 노력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당연히 성과가 나타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3 년이 되면 성과는 별로 없지만 하는 일은 익숙하게 된다. 그리고 3 년을 더 하면 그 일에 싫증이 나게 되니 그것이 바로 6 년 衝運(충운)이란 것으로서 고비가 된다.

대개의 사람은 빠르면 3 년, 길면 6 년 정도에서 갈등을 느끼게 되고 그만 두게 된다. 성공의 문턱에서 돌아서는 셈이다. 남녀의 애정도 6 년이 되면 일단 당초의 애틋했던 마음은 간 곳이 없어지니 권태기라 하는 것이다.

나는 단련되지 않은 自由意志(자유의지)는 오히려 성공의 방해요인이라 보는 사람이다.  

직장생활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생활이라 월급 받으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없으면 한 우물 파기 어렵다. 결혼 생활도 아이가 생겨 공동의 책임감을 지워주지 않으면 6 년 지나면서 부부 사이가 위태롭다.

더군다나 이런저런 선택, 즉 옵션마저 다양하면 백발백중 실패로 끝난다는 것이 경험에서 얻은 철학이다.  

그러니 단련되지 않은 자유의지란 말은 내게 그저 變德(변덕)과 동의어일 뿐이다. 반면 세월 속에서 단련이 되어 여물어진 자유의지는 산도 옮겨놓을 수 있는 힘을 가진다.

아무튼 처음부터 자발성이나 자유의지에 맡겨두면 세상에 성공할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렇기에 인생 경험이 짧은 사람에게 자발성을 기대하는 것은 ‘기대난’이라 여긴다.

30 대 남성 직장인에게 먹여 살릴 가족이 없다면 온전히 직장 다닐 남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남성 호르몬의 충동질이 그렇게 두질 않을 것이다. 물론 여성도 큰 차이는 없다, 여성은 충동성에서 남자보다 덜하지만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더 복잡미묘한 정서를 가지고 있어 일관성을 보여주기가 더 어렵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이 공연한 말이 아닌 것이다.

30 대도 그러한데, 10 대 청소년들에게 자발적으로 공부하고 학업이 좋기를 바라는 것은 참으로 헛되다 할 수 있다. 개중에 그런 아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특별한 사연이 있고 연유가 있다. 그러니 자발에 맡겨두면 학업은 저조한 것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나는 여긴다.

심한 얘기 같겠지만, 어린 청소년들을 자발에 맡기는 것은 그들의 손에 흉기를 쥐어주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오로지 강제만 필요하다는 말은 아니고, 그들이 흔들릴 때마다 붙잡아줄 정도의 강제와 구속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물론 반발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너도 이젠 철이 들었으니 이러기를 기대한다’는 식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거짓말하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인격을 존중하기 위함이다.

본 얘기로 돌아가기로 한다.

10 년을 하면 성공하기 마련인 데, 그 도중에 앞서와 같이 엄청난 방해,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엄청난 마구니들이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사탄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어 10 년을 끌고 가기가 어려운 것이고, 자연히 성공에 도달하는 이는 드물기 마련인 것이다.

사실 그러니 얼마 전 저축의 1/3을 30 년간 저축하면 부자가 된다고 했지만 실은 그게 그리 만만한 프로젝트가 아닌 것이다. 부자가 되는 비결을 아낌없이 무료로 알려드린 것도 그런 까닭이다.  

6 년을 지나 그대로 하던 일을 하고 있으면 나머지 4 년은 다소 지루하고 답답하지만 손을 놓지는 않게 된다. 그럭저럭 이어갈 수 있다, 다만 당초의 포부와 희망은 가물해지고 희미해진다. 그냥 이대로 가다가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10 년이 되면 기대하지 않았던 성과가 불현 듯 나타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러다 말겠지 하는 마음이지만, 갈수록 성과는 또 다른 성과를 부르고 인연이 또 다른 인연을 맺게 하니 일은 순조롭게 이어져간다.

10 년 功(공)이 얼마나 대단한 힘을 지닌다는 것을 본인은 모르기 때문이다.

성과가 구체화되니 사람은 신이 나고 흥이 나기 시작한다. 이제는 성과가 의욕을 유발하는 단계로 들어선 것이다. 하지 말라고 해도 절로 열심히 하게 된다.

손에 쥐어지는 것도 있고 일하는 재미도 있어 열심히 노력하고 즐기는 세월이 이어진다. 도중에 간혹 우려되는 일도 만나고 힘든 경지도 만나지만 이상하게도 이럭저럭 고비를 넘기게 된다.

이 무렵이 되면 ‘나는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실은 운이 좋은 것이 아니라 기초가 튼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묘한 것은 그것이 바로 운이 좋은 것이다. 운이란 망외의 행운이 아니라 흐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조심하기도 하고 근심하기도 하며, 때로는 잘 풀려나가기도 하면서 18 년이 지나면 이른바 성과가 마구 확대되고 불어나는 또 한 번의 이상한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하는 일마다 나는 그냥 기본만 할 뿐인데 잘 되기 시작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이것을 확인하게 되면 사람은 가장 신나고 흥미롭게 일을 해 나간다.

나는 이런 점을 두고 공들인 세월의 복리이자가 붙기 시작했다고 표현한다.

빈 말이 아니다, 주변에 하는 일마다 성공하고 모든 것이 호조로만 향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니 살펴보라. 특별히 하는 것도 없는데 결과는 좋으니 신기할 정도이다.

공들인 세월의 복리이자 현상인 것이다.  

이쯤에서 한 가지 일을 알려드리겠다. 자발적으로 공부 잘 하는 학생의 비밀에 대해.

초등학교 6 년, 중학교 3년이면 9 년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부터 그 부모가 다소 강제적으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고 규율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 고등학교 1학년 무렵이면 10 년이 된다.

이런 아이들은 고등학교 2 학년부터 성적이 급상승하고 그 재미에 빠져 절로 공부하게 된다. 부모가 큰 신경 쓰지 않아도 좋은 성적을 나타내게 되어있다. (이처럼 공부가 제일 재미있고 쉬운 아이들을 나는 공부 프로라고 부른다.)

실은 세월의 내공이 가져온 복리이자 현상인 것이다.

이런 공부 프로들을 보고 뒤늦게 부랴부랴 학원 보내고 과외 시킨다고 따라갈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생각해보라, 저 쪽은 도도히 흐르는 강물이건만 이쪽에서 뒤늦게 얕은 개천에 양수기로 물을 댄다고 강물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아이들 공부 문제에 대해 나는 이렇게 말해준다. 초등학교 초반에 한 2 년 정도 억지로 시켜보고 자세가 잡히는 징조가 보이지 않으면 아닌 쪽으로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아니다 싶은 아이는 건강하게 씩씩하게 긍정적인 아이로 키워주는 쪽을 택하면  되는 것이다.

공부 잘 한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점, 결코 공연한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글에서 마무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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