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스커스 --역사 이야기 시리즈 제1회  _  2009.5.19
지구상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도시 다마스커스(damascus).

나는 다마스쿠스라 발음한다, 좀 더 쾌감을 느끼기에.
  
지금은 시리아 공화국의 수도로서 인구 4백만의 도시, 그러나 우리에겐 중동의 어느 먼 그저 그런 도시에 불과하다. 아마도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구글 어쓰'를 올려야 어딘지 감이 잡히는 생소한 도시.

중동 그리고 이슬람 세계에 대해 이해하려면 이 도시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연구에 의하면 기원전 1 만 년 전부터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며 도시화가 이루어진 것도 5천년을 넘는다고 한다. 실로 대단한 땅이고 도시!

이 도시가 급격히 번성하게 된 계기는 기원 전 1000 년경 동쪽에서 진출해 온 유목민들인 ‘아람’인들이 이 도시에 상수도와 운하를 건설하면서부터 였다.  

그리고 그 수리토목기술은 나중에 로마인들이 배워서 제국 전역의 주요 도시에 상하수도를 깔게 되어 문명과 도시화를 가속화시켰다.

아람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기원전 1500 년경 중동 지역의 민족 대이동으로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북부에 이주해와 나라를 세운 유목민족, 구약성서에는 유대의 사울과 다비드 등의 왕들과 전쟁을 했다는 얘기가 나오며 아시리아 사람들의 기록에도 강력한 약탈자로 묘사되고 있다.

그들은 유목을 하는 한편 대상들을 약탈하다가 서서히 중계무역상으로 발전해갔다. 이는 해적이 나중에 해상무역상인으로 발전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다.

그들이 세운 도시왕국 다마스커스는 그리하여 중동 지역의 중계무역 요충지로 발전했다. 그런 연유로 해서 그들이 쓰던 언어, 아람어는 고대 중동 전체의 공용어 구실을 했으며, 예수님이 쓰던 말도 히브리어가 아니라 아람어였다.  

지금 구글을 들어가서 시리아의 다마스커스를 확인해보라.

동으로 메소포타미아(오늘날의 이라크), 서로는 지중해와 이집트, 북으로는 아나톨리아(오늘날의 터키), 남으로는 아라비아 반도를 연결하는 교통의 길목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머스커스는 이처럼 중동 육로무역의 중심지였기에 크게 번성했지만 역으로 그 바람에 모든 신흥세력들의 쟁탈전이 끊임 없었다.

십자군 전쟁 당시에도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이슬람 세력과 유럽 십자군이 결정적으로 맞붙은 전쟁터도 바로 다마스커스였다. 그리하여 십자군 당시 용맹과 자비를 동시에 떨친 이슬람의 스타, 살라딘-실은 살라흐 앗딘-의 기마  동상도 이 다마스커스에 세워져 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이슬람 세계는 실로 방대하고 드넓다.

아프리카 북부로부터 중동을 거쳐 카자흐스탄 등 ‘스탄’이란 명칭이 붙는 여러 나라들이 위치한 중앙 아시아 남쪽 지대와 중국의 서부, 그리고 동남아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인 생각과 상상을 넘어서는 공간에 걸쳐 있다. 이슬람 인구도 무려 10 억에 달한다.

이 거대한 문명권 내부를 들여다보면 물자와 사상이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거쳐지나가야 했던 곳이 바로 이 가장 오랜 도시 다마스커스이다.

영어 알파벳도 그런 교류의 산물이다. 알파벳은 고대 지중해의 무역상이던 페니키아인들의 창안으로 알려졌지만 그 기원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자들을 주로 다마스커스의 아람인들이 변형발전 시킨 것이다.

결국 알파벳의 원조인 페니키아(오늘날 레바논 일대) 문자 역시 다마스커스 문자의 변형 버전이었다. 위치상으로도 페니키아는 다마스커스로부터 멀지 않은 지중해 쪽에 있다.

이 정도였기에 시리아 지역의 중점 도시인 다마스커스는 메카와 메디나, 예루살렘과 함께 이슬람의 4대 도시 중에 하나가 되었다. (이집트의 카이로는 여기에서 빠진다.)

참고로 시리아(Syria)란 명칭은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자리했던 ‘아시리아’ 제국을 일반적으로 부르던 명칭이었다고 한다.

그러면 지금부터 잠시 골치 좀 아프기로 하자. 이 도시가 얼마나 많은 세력들에게 쟁탈되고 또 주인이 뒤바뀌었는지, 무지 간략하게 알아본다.

아람인들이 세운 시리아 세계의 보물 다마스커스는 기원 전 8 세기에 아시리아 제국에게 병탄되었고, 기원 전 6 세기에는 신바빌로니아, 다시 페르시아 제국, 그리고 기원 전 4 세기에는 알렉산더 대왕, 기원 전 1 세기에는 로마제국에 의해 점령당하면서 헬레니즘 문명권을 형성했다.

그러다가 다시 AD 634 년에 무함마드를 계승한 라시둔 칼리프에게 정복당하면서 이슬람 문명권으로 편입되었다.  

그러다가 다시 1079 년부터 셀주크 터기에 정복당하고 다시 십자군에게 잠시 점령당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노예왕조로 알려진 맘루크 왕조의 지배를 받았고, 1400 년경에는 몽골계 정복왕조인 티무르 대제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다시 1500 년경에는 오스만 터키 제국의 치하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제1차 대전으로 오스만 터키가 몰락하자 프랑스의 신탁통치에 들어갔다가 1946 년에 독립한 시리아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이렇게 지배자가 무수히 바뀌고 변경된 땅이 어디 있으랴!

이런 환경에서 사는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우리 한민족은 외침에 대해 엄청나게 저항하고 외세에 대해 배타적이다. 그러나 이런 지역 사람들은 어떤 자세를 취했을까?

사실 이들에게 국가 관념이 희미하다. 오히려 부족에 소속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나간다. 이놈이 쳐들어오면 이놈에게 타협 복종하는 척하고 그러다가 다른 놈이 쳐들어오면 그 역시 복종하고 협조하는 시늉만 낼 뿐 그들에게 국가라든가 겨레의 관념은 없다. 있다면 부족이고 피를 통한 혈통이다.

현대 시리아는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아랍의 일원으로서 툭하면 패배했다. 비겁하고 용기가 없음이 아니라, 허울뿐인 나라간의 싸움에 목숨을 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다마스커스는 한 때 무역 경로의 변경으로 하여 조금 북쪽의 ‘팔미라’가 실크로드의 종점이란 명칭으로 각광을 받는 적도 있긴 했으나 다마스커스는 무역의 요충지, 학문과 사상, 교육기관의 허브로서 그 위상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다.

마지막으로 ‘다마스커스 검’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둔다. 이 칼의 제조법을 알아내기 위한 노력이 서양 기술 문명의 발전을 촉진시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단한 물건이다. 도검류 마니아치고 이 말을 모른다? 즉각 마니아 자격 박탈이다.  

(역사에 관한 새 시리즈를 시작한다. 거창하게 길고 긴 얘기들을 늘어놓으려 함이 아니라, 잘 모르면서도 우리에게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문명과 사람들에 대한 것들을 소개함으로써 우리의 미래가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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