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게 반항하지 말기를  _  2009.5.15
5월은 푸르기도 하지만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으로 서비스 하나 드리고자 한다. 자녀와의 갈등을 해결하는 묘법이다. 불과 수 삼년 전에 겨우 알게 된 따끈한 것이지만 호호당의 집을 ‘열라’ 들락거려 주심에 사은 행사라 해도 좋다.

부모와 자녀는 기본적으로 30 년 터울이다. 음양오행 상 30 년은 사물이 정반대의 흐름을 만나는 기간이다. 이 논리를 부모자식 간에 적용하면 의미가 사뭇 심중하다.

부모가 살았던 세상과 자녀가 살아갈 세상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부모가 살면서 얻은 가치관과 통념 중에서 상당 부분이 자녀가 살아갈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점들이 있기 마련이란 얘기이다.

구태여 음양오행을 들먹이지 않아도 부모의 세상과 자녀의 세상이 다를 것임은 상식이 아니겠는가. 이 말 잘 새겼으면 한다.

가령 6.25 전쟁을 겪은 부모가 어떻게 번영과 평화의 대한민국에 태어난 자녀와 같은 가치관을 가지겠는가 말이다. 그렇다면 그건 순 거짓말이 아니겠는가!

내 자식 사랑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동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에 공통된 것이니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내가 낳은 자식이라 해서 내 슬하에서 내가 번 돈으로 먹고 배우며 성장한다고 해서 그 자식이 나와 동일한 가치관을 가지길 바란다면 그것은 부모의 편견이고 오만이며 착각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런 착각을 한다. 내 자식의 시야가 좁고 경험이 적으니 당연히 부모인 내가 자식보다 훨씬 인격적으로도 우월하다는 착각. 다시 하는 얘기지만 시야가 좁고 경험이 일천하다 해서 인격적으로 부모가 자식보다 나을 것이란 보장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공자님 부모가 공자보다 더 聖人(성인)인가 말이다.  

사춘기의 자녀가 반항을 한다, 가출을 했다, 맨 날 말을 듣질 않는다고 호소하는 부모들이 많다.  

실은 자녀가 반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키우는 부모인 당신이 반항하고 있다는 생각 혹시 뇌리를 스친 적 없으신지 묻고 싶다.

기본적으로 자녀와 갈등을 겪지 않으려면 인격적으로 자녀가 부모인 나보다 열등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後生(후생)이 可畏(가외)라는 말을 진심으로 이해할 때만이 그 부모는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이다.

자녀와 갈등하는 부모, 자녀가 반항을 하는 부모는 알고 보면 부모가 아직 어린 연유로 반항을 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듯이 자녀도 당연 부모님들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이 점 인정하시는가? 자녀의 마음속에 다음에 커서 우리 아빠 우리 엄마에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고자 하는 다짐이 있음을 알고 계시는가?

당신이 열심히 힘들게 일하면서 자녀를 부양하는 것을 자녀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시는가? 자녀들은 이미 알고 있는데 혹시 당신만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자녀들 역시 열심히 부모님이 권하는 것, 하라고 시키는 것 되라고 하는 것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 계시는가?

자녀가 반항한다는 것은 결국 하려고 해도 어렵고 더러는 자신의 적성과 가치관에 부합되지 않다보니 그 점을 어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물론 자신을 재워주고 보살펴주고 먹여주며 용돈도 주고 비씬 등록금도 내주는 부모님의 뜻에 부응하고자 하지만 그 것이 어려울 때면 나름대로 힘들다는 것을 사전에 당신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얘기해왔을 것이다.

그러다가 계속 부모인 당신이 자신의 가치관과 인생경험을 무리하게 강요하다보면 자녀도 인간인 이상 그리고 경험이 적다보니 짜증을 내거나 강하게 부인하며 덤벼들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사실 냉철하게 지켜보면 자녀의 어필 내지는 반항에 대해 부모들은 당황한 나머지 우선 이를 억누르고자 한다. 흔히 ‘말발’로 누르거나 욱박지르는 경우가 많다. 당황했기 때문인 바, 이는 당신도 아직 ‘아이’인 까닭이다.

왜 청소년기에 자녀들이 반항하는가, 그 이유가 있다.

어릴 적에는 무조건 말을 듣지만 사춘기 무렵이면 이제 자신의 자아가 형성되었고 이에 따라 유치하지만 자신의 가치관과 미래에 대한 생각이 나름 확고해졌기에 부모의 주문에 무조건 응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반항이라 하지만, 실은 생각을 다소 어설프게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호호당의 말인 즉은 ‘사랑하고 존경하는 부모에게 반항하는 자녀는 세상에 없다’는 점이다.

또 호호당의 말인 즉은 ‘아이를 키우는 당신이 아직 아이라서 세상에 대해 반항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녀를 통해 자신의 바람과 열등감을 해소하려는 마음,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섭섭함을 내 슬하인 자녀에게만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부모인 당신 마음속에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시는지.

그러면 자녀는 사랑하는 부모의 恨(한)을 간직하게 될 것이며 그 한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니 바로 자녀의 행복한 삶을 가로막게 된다는 생각, 성찰할 일이 아닌가.

모든 자녀들은 부모의 은공을 알고 있고 또 망각하지 않는다. 아울러 아무리 객관적으로 못난 부모라 해도 자녀의 마음속에 부모님은 훌륭한 분이고 큰 분인 것이다. 그런 분들이 한을 남긴다면 어떻게 자식으로서 그 한을 풀어드리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니 깊이 생각할 일이다. 당신의 한과 억울함이 정녕 이치에 맞는 얘기인가를. 욕망에 허덕이며 그 욕망을 모두 이루지 못했다고 자녀에게까지 한으로 대물림해서야 되겠는가? 그것이 과연 사랑하는 자녀의 앞날에 도움은커녕 장애가 된다는 생각에 미쳐야 되지 않겠는가?

자녀를 시집 장가보내서 손주를 얻으면 부모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아이구, 우리 아기가 아기를 낳았어요’ 라고.

사실이다. 아이가 아이를 낳는다. 아기를 얻은 이는 아직 어른이 아니라 아이인 것이다.

그러면 언제 어른이 되는가? 아이가 아이를 키우다보면 어른이 되는 것이다. 당신의 아이가 장성해서 독립을 할 때 비로소 당신도 어른이 되는 것이니 보통의 경우 손주를 얻으면 그때서야 어른이 되는 것이다.

‘너도 다음에 자식 낳아서 키워봐라’는 말이 그래서 빈 말이 아님이다.

그러한 까닭으로 당신이 부모로서 자녀를 키우고 있다면 당신은 아직 아이이고 서서히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당신에게 자녀가 반항을 하는 것은 사실 당신이 세상에 대해 반항하는 것이고 당신이 어른이 될 때 자녀도 반항을 그치게 된다.

내 자식이라 해서 내 마음대로 키운다? 진실로 그렇게 여긴다면 멀어도 한참을 멀은 셈이다.  

우리는 자녀를 키우면서 어른이 되어간다고 여겨야 한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인 것이니 자녀가 반항하면 당신이 반성할 일이다.

자녀를 내 소유라 여기지 말고 나보다 못한 인격체라 생각하느니 내 몸을 통해 세상에 나온 후배 친구라 여김이 더 가할 것이다.

서양 사람들 ‘외디푸스’ 운운 하면서 콤플렉스 들먹이는데 사실 그런 것은 없다. 아이가 아이를 낳고 기르다보니 아이에게 이상 증세가 생긴 것에 불과하다. 모두 미성숙한 부모로 하여 생겨난 아픔들인 것이다.

자녀의 가치관과 방법이 부족하다고 느꼈다면 부모인 당신의 가치관과 방법을 강요하지 말고 아빠는 그 때 이렇게 했던 적이 있어 또는 아빠 역시 너처럼 했다가 개피 봤어 하고 실수담을 얘기해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공부 잘 해라. 거의 모든 부모님들의 주문이다. 왜 그런지 아시는가?

거의 모든 부모들이 학생 시절에 공부를 잘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부로 해서 당한 억울함과 자존심의 상처를 내가 낳은 자녀라고 해서 해소해주어야 하는 계약이나 의무 같은 것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공부 못했다고 해서 자녀에게 쓸데없는 한을 물림하지 않고 세상은 얼마든지 성실하고 노력하면 다 잘 살 수 있는 마당이라 일러주는 것이 백배 나을 것이다.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에 나온 엄마 기억하시는가? 좀 모자란 아들에 대한 엄청난 신뢰와 자신감, 그런 것이 자녀를 건강하고 만들고 성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공부 못 한다고 해서 세상으로부터 퇴출당하는 법은 없다는 사실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처럼 자녀에게 강요하지만 않으면 부모와 갈등하는 자녀는 세상에 없다.

더 하고픈 말도 많지만 이 정도면 알아차릴 것 같으니 그만 하기로 한다.

그저 부모인 당신이 어른이 되면 된다.

가정의 달 5월에 자녀들과 행복한 시간되시길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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