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미 재무부 차관을 지낸 ‘로저 알트먼’이란 사람이 ‘포린 어페어’지에 "Great Crash, 2008"이란 제목으로 글을 기고했는바, 그 내용이 상당히 새길 구석이 있어 보인다.
2008 년의 경제 위기는 미국이나 유럽, 즉 서구세계가 몰락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지정학적 힘은 동아시아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제 미국이나 유럽은 세계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제적 신뢰성과 자원을 모두 상실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약점들은 다시 보정될 순 있겠지만 그것은 당분간에 불과할 것이며 결국 세계적 권력의 중심은 미국으로부터 떠나가고 있다는 말까지 덧붙이고 있다.
2008 년 금융위기로 시작되어 미국과 유럽, 일본에 몰아닥친 경제침체는 일반적 불황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 취해지고 있는 양적 완화나 경기부양과 같은 회복 대책들도 상대적으로 효과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말도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프레드 벅스텐이란 양반이 ‘포린 어페어’지에 기고한 글도 흥미롭다.
제목은 "달러 그리고 적자 (Dollar and Deficit)"인데, 여기서 글의 필자는 미국이 진정으로 국력을 회복하려면 지금의 엄청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해소할 수 있는 고통스럽지만 현실적인 과감한 정책을 실천에 옮겨야 하며, 달러 가치도 현실에 맞게끔 대폭 하락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지난 30 년간 미국 정치인들과 정책 당국은 딜러의 우월한 위치를 남용하면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에 안일하게 대응해왔기에 더 이상 달러의 지위를 남용한다는 것은 파국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하고 있다.
찍어내면 돈이 되는 달러 방식은 이제 더 이상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고, 전향적인 자세로 국제통화시스템에 대해 중국을 비롯한 여타 나라들과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달러의 우월한 지위가 오히려 국익에 해롭다는 말까지 하고 있으니 말이다.)
‘포린 어페어’란 매체는 그저 그런 잡지가 아니다. 미국 국제정치와 경제 전반에 관해 가장 권위 있고 무게 있는 매체 중에 하나로서, 여기에 이런 글들이 실리고 있다는 것은 여간한 일이 아니다.
단기적으로 지금 시행되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책들이 잘 먹혀들고 있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좀 더 장기적으로는 미국이 이제 근본적인 재건책이 취해지지 않으면 세계 권력의 최고자리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위기감의 반영이라 하겠다.
미국이 소련과 한창 힘겨루기를 하고 있을 당시, 이른바 자유진영의 국가들, 특히 서유럽 국가들 그리고 아시아에선 일본을 포함하여 한국이나 대만 등의 나라들에 대하여 미국은 일부러 무역 적자를 유지함으로써 그들 나라가 번영할 수 있도록 했다.
일종의 조공무역을 통해 은혜를 베푸는 施恩政策(시은정책)이었다 하겠다.
박정희 대통령의 거의 도박에 가까운 수출 드라이브 몰빵 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환경적 배경 때문이었다.
미국의 무역적자 정책은 그러나 1980 년대 초반에 이르러 정책이 아니라,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무역흑자를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 없고, 재정적자를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미국으로 변해갔다.
그래서 미국은 일본을 희생양으로 삼았으니 바로 1985 년의 플라자 합의였다.
너희들, 우리 미국 땜시 엄청 수출 많이 하고 잘 먹고 잘 살고 있지, 안 그래? 국방비 부담도 거의 우리가 하고 있고 말이야.
옙, 그렇씀다.
그러니 시방 형님이 다소 피곤하고 힘이 지쳐있으니 내 말 좀 들어야겠지?
옙, 그렇씀다. 분부만...
오늘부터 니네 달러당 240 엔하던 엔화를 120 엔으로 바꾼다. 다시 말하면 엔화 가치를 두 배로 올리라는 것이지. 알것냐?
이것이 플라자 합의였다.
일본의 거품은 이 바람에 발생했고 결국 1991 년 거품이 터지면서 현재 일본은 지금까지 거의 20 년째 불황을 기고 있다. 일본 정말 대단한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20 년씩이나 버티고 있으니 벌긴 정말 많이 벌었나 보다.
그러나 꼬붕 일본의 손목을 비틀어 위기를 모면한 미국이었지만, 그 또한 20 년이 지나자 효력이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미국의 경제력과 경쟁력은 1999 년으로서 사실상 거덜이 나고 말았다. 사실 이 시점부터 미국은 경제침체로 들어갔어야 했다.
그 이후 미국의 무역적자는 1 년에 수천억 달러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니 합치면 수 조 달러가 중국을 포함한 수출 경제국들의 선에 들어갔다.
하지만 당장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대금지불을 달러, 찍으면 돈이 되는 종이돈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이나 일본, 독일, 그리고 우리 등 수출경제국들이 달러를 받는 족족 자국 통화로 바꾸거나 유로 등의 다른 나라 통화로 바꿔버렸다면 달러 가치는 벌써 진작 폭락해 있었을 것이다.
믿을 나라는 역시 미국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던 무역 흑자국들은 받은 달러 대금을 교환하지 않고 거의 모조리 미국 재무부가 발행하는 국채로 사들였다.
특히 1997 년 아시아 외환위기는 달러가 없으면 개고생한다는 교훈을 남겼기에 더욱 이런 흐름을 부채질했다.
당장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다.
미국은 늘어나는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서는 부단히 국채를 발행해야 했고, 수출 경제국들은 외환보유가 늘면서 점차 부강해졌다.
그런데 2000 년대 초반, 앞서 얘기했지만 미국은 1999 년으로서 경제력이 바닥에 떨어졌을 무렵 새로운 무공 초식을 선보였다.
이른바 신경제(New Economy)란 이름의 신 기술주 열풍이었다.
굴뚝 산업은 이제 중국이나 인도와 같은 후진국이나 할 일이고, 우리는 우아하게 연기 나지 않고 부가가치 엄청 높은 신 경제 시대로 들어갈란다 하며 미국이 뻐개기 시작했던 것이다.
빅 브라더가 그렇게 침을 튀기며 난리를 쳐대니 모두들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권력이동을 쓴 토플러 영감은 엄청난 강사료를 받고 그 귀하신 몸을 한국에까지 납시었고, 그 이후로도 수많은 경영의 대가 또는 도사들이 한국으로부터 ‘모심’을 받았다.
‘현대차 수십만 대 팔아봐야 쥬라기 공원 영화 한 편의 수익보다 못 합니다.’, 이 말은 우리 모두를 주눅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식경제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모두 확신했다.
당시 아무리 지식경제가 무엇인지 책을 읽어봐도 내용이 없길래 나는 뻥인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아마 다른 이들도 그런 생각이었겠지만 대세가 그러니 입 다물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사기였다. 개뻥이었다.
신경제 열풍은 2000 년에 들어 나스닥의 폭락과 함께 물거품으로 마무리되었다. 지식경제 시대도 함께 끝이 났다.
그저 모든 것은 수출 경제국들이 미국 국채를 매입하는 바람에 미국 자금 시장에 유동성 자금이 엄청나게 풍부해졌던 것이 원인이었다.
그 돈들이 처음에는 엄청난 기술주 거품을 만들었다가 빠지자, 다음에 찾은 방향이 주택담보대출이었다.
미국의 모든 중산층과 중하층까지 새 집을 사서 옮기고 나자 더 이상 돈을 굴릴 데가 없어졌고, 그러자 거지들에게도 ‘전액 플러스 이자’까지 대출을 해 주었다.
모든 유동자금은 그 출처가 수출 경제국들의 돈이었다. 해마다 수천억 달러의 무역적자는 국채 매입을 통해 재정적자를 메우고 메운 돈은 다시 미국 자금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왔던 것이 원인이었다.
돈의 홍수사태였고, 이것이 기술주 열풍 그리고 이어서 부동산 투기 열풍을 만들었다.
그리곤 한꺼번에 뻥하고 터진 것이 2008 년의 대붕괴이다.
이제 미국이 뭐라고 사기를 쳐도 알 놈은 다 알고 있다.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 미국이 출구전략의 이행시기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출구전략을 쓰든 안 쓰든 미국 경제가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고 기본인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글머리에서 소개했던 글들, ‘포린 어페어’지에 올린 글들이 흥미롭다는 것이다.
여전히 미국은 능란한 詐術(사술)을 부리고 있다. 이번 사기극의 주연배우는 수염 멋지게 기른 버냉키이고 조연은 가이트너 재무장관이다. 제작자는 오바마이고 제작비는 미국 부자 錢主(전주)들이 대고 있다.
여기에 울며 겨자 먹기이긴 하지만 찬조비는 일본과 중국이 대고 있고, 엑스트라 역은 G-20 이다.
또 감수비는 폴 크루그먼과 같은 사이비 경제학자들이 받고 있다.
이처럼 대규모 사기극이 연출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다.
물론 지금의 영화는 언제까지 흥행이 가능할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의외로 흥행기간은 짧은 것이다. 블록 버스터라 하지만, 1000 만 관객 돌파는 아무래도 어려워 보인다.
이 사기극이 끝나고 나면 전 세계는 어떻게 변할 것인지? 이 점에 대해서는 기회를 달리 마련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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