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心理(심리)배틀! 그 긴박한 얘기  _  2009.9.11
점심에는 강남 교보빌딩 1층 뒤편에 있는 샌드위치 전문점을 자주 들른다.  그곳의 ‘안티 파스토’는 5천원인데 야채와 엷은 빵조각이 곁들여져 적게 먹는 나에게는 아주 흡족한 메뉴이다.

즐겁게 식사를 마친 후, 교보문고 지하계단으로 내려가려다가 담배를 한 대 꺼내 무는 바람에 건물 밖 할인 매대 쪽으로 발걸음이 잡혔다.  

많은 이들이 사무실 바깥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건만 길바닥에 꽁초가 보이지 않는다. 말끔한 보도에 나만 슬쩍 버리기도 민망하고 해서 주머니를 뒤지니 마침 티슈가 한 장 있기에 꽁초를 싸서 주머니에 넣었다. “아니, 이것들이, 여긴 한국이 아닌가? 언제부터 이토록 매너들이 업 되었지?”

할인 매대는 늘 사람들로 붐빈다. 아니나 다를까, 뭔가 옆구리를 툭 찔렀다.  돌아보니 아가씨 어깨에 걸쳐진 큰 가죽 가방이었다.

이 가방은 언제나 문제가 된다. 사람은 걸으면서 자신의 행동반경을 알고 있기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가방을 매면 그 반경에 대한 감각을 잃게 되는 것 같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가장 싫은 것이 저 어깨에 걸친 가방이고 또 신문 광독하는 사람들의 날카로운 종이끝날이다.

그런데 내 옆구리를 칠 정도면 자신의 어깨와 손에도 그 감각이 전해질 것이 분명한 데, 돌아보지도 않는 저 센스는 또 무엇이람?

‘아, 죄송합니다’ 까지 기대하는 것도 아니고 살짝 돌아보며 턱만 살짝 아래로 움직여주어도 피차간에 통할 매너이건만 아니 얘네들은 언제까지 이 매너를 유지할 참인지 원.

내가 저 가방에 대해 복수할 길은 딱 하나밖에 없다. 집에 가서 아들놈한테 너 가방 매고 다니면서 사람치고 다니는 여자애, 그러고도 모른척하는 신경줄 강한 여자애, 절대 사귀지 마라, 응! 하고 악담하는 방법이 전부이다.

책을 편한 마음으로 이것저것, 내친 김에 또 저것까지 집어 들었다. 식후의 느슨함 때문이고 할인 매대라는 점도 있겠지만, 읽을 만한 책이 세상에 아직도 이렇게 많이 남았다는 사실에 새삼 감탄할 정도인 무려 11권을 샀으니.

그 무게에 약간 후회를 하면서 계산대로 갔다. 계산대의 아가씨는 눈에 익은 얼굴이었고 역시나 잔뜩 부어있었다.

늘 물어보고도 싶고 충고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아가씨, 이봐요, 그렇게 부은 표정으로 있으면 할인 매대를 벗어나긴 어려울 지도 몰라. 좀 웃으면서 상냥하게 가야지. 이런 충고 말이다.

물론 나는 할인 매대 근무가 돌아가면서 하는지 아니면 찍혀서 하는지 그도 아니면 입사 순으로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눈에 익은 그 아가씨가 늘 부어있는 있는 것을 보면 찍혀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계산하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니 진정 살기 싫은 것도 같다. ‘아가씨 힘을 내어 살아야지’ 하는 말이 목젓을 스친다. 참아야지, 주유소 습격사건의 타이틀곡처럼 오늘도 참아야지.  

당연히 계산이 끝난 뒤 ‘안녕히 가셔요’ 하는 말은 기대도 하지 않고 뒤에서 들려오지도 않는다. 기대하지 않기에 나는 이미 등을 돌리고 있었다.

빨리 사무실로 돌아가 할인 매대랍시고 책갈피에 잔뜩 쌓인 흙먼지들이나 행주로 훔쳐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이런 먼지 닦아줄 정도의 센스를 지닌 점원은 최소한 대한민국에는 있을 것 같지 않다. 분명 그럴 것이다.

그런데 만일 있다면? 하고 자문해본다. 그야말로 대성할 사람이 분명하지, 암 그럼. 미국 이민을 갔던 우리 교포가 매대에 사과를 놓고 팔면서 늘 깨끗한 마른행주로 반짝거리게 닦아서 돈을 벌고 사업자금을 마련하는데 성공했다는 말이 기억이 난다. 아마 그 양반도 한국이라면 그렇게 하진 않았을 것이고.

이처럼 책을 사고 돌아오는 도중에도 여러 번의 心理戰(심리전)을 겪어야 했다. 나이가 들다보니 이런가? 싶기도 하다.

하늘을 보니 구름이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그래, 날씨에게 미안하지만 만만한 네 탓이나 좀 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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