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단순한 이야기  _  2009.9.6
오늘에 이르러 농사는 시시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농사는 한 때 인간이 ‘먹고’ 살아가는 큰 밑동이었고 뿌리였다.

그러나 이 글은 농사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개탄하려는 것이 아니라, 시시해진 농사야말로 우리가 잘 살아갈 수 있는 본질적 이치와 가치를 담고 있음을 얘기하고자 한다.

연을 맺은 것으로 따지면 무려 36 년의 세월이 경과한 음양오행의 이치에 대한 탐구 결과, 내가 얻은 통찰과 내린 결론은 농사야말로 그 모든 것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농사는 기본적으로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면서 주어지는 年(년)의 ‘순환’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지는 일이고 우리는 그 ‘일’을 통해 먹고살 수 있는 ‘식량’을 얻게 되고 그 식량의 바탕에서 ‘풍요’를 얻는다는 사실이다.

방금 내가 한 말 속에는 네 가지 핵심적인 어휘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주시기 바란다. 즉, 순환과 일, 식량, 풍요의 네 단어이다.

순환은 변함이 없으니 우주의 常法(상법)이다.

일은 苦力(고력), 고된 노력을 요구하지만 우리 몸과 마음을 단련시켜준다.

식량은 먹고사는 근본 중에 근본이다.

마지막으로 풍요는 우리가 누리고자 하는 것이고, 누구나 바라마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농부는 농사를 통해 우주의 이치를 깨닫게 되고 고된 노력을 감내하며 그 결과 먹고 살 식량을 얻어 처자식을 부양하고 또 나아가 사이 사이에 삶의 풍요를 만끽할 수 있게 된다.

농부는 우주의 이치를 배우니 賢者(현자)라 하겠다.

농부는 고된 노력을 통해 겸양과 인내를 배우니 仁者(인자)라 하겠다.

농부는 농사를 통해 처자식을 부양하고 더러 주변에도 베풀게 되니 德者(덕자)라 하겠다.

농부는 유한한 삶의 시간 속에서 이따금씩 풍요의 시간을 누리고 다 살면 죽어서 뒷동산 양지바른 곳 포근한 흙으로 돌아가 안길 수 있으니 그야말로 ‘행복한 사람’이란 하겠다.

더하여, 자손은 명절과 추석에 조상 묘를 찾아가 기리면서 조상과 내가 그리고 내 후손이 하나로 연결된 뿌리임을 알게 되니 내 삶은 유한해보이지만, 전체로서 생명은 不滅(불멸)임을 깨닫게 되니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가!

그러니 세상에 태어나 삶을 마칠 때까지 농부만한 사람이 다시 어디 있겠는가! 아직도 농부의 삶이 시시해보이시는가? 농사일이 여전히 미미하게 느껴지시는가?

물론 오늘의 세상은 농사로 먹고사는 세상이 아니다. 당신은 사업가일 수도 있고, 은행원일 수도 있으며 선생이나 교사이기도 할 것이며, 따분한 직장인 또는 특정 분야의 학자이기도 할 것이다. 직업의 세분화가 대세인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농사로 먹고살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우리의 속에는 여전히 농사하던 시절의 리듬이 살아있다. 그래서 나는 낙관한다, 여전히 우리는 행복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농사로 무조건 되돌아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멋을 부리며 귀농해야만 한다는 말도 아니다. 그러나 행복하고자 한다면 농사짓던 그 마음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을 하고픈 것이다.

다시 말해서, 농사하지 않는 삶이라 해서 농사가 담고 있는 그 모든 이치와 가치마저 망각하고 산다면 당신은 어쩌면 끝내 행복한 삶을 누리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얘기이다.

농사, 즉 농사에 담긴 방법과 기술, 땀과 수고, 그리고 마음가짐은 삶이 행복하기 위한 모든 것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는 ‘종합선물세트’라고 나는 감히 단정하고 싶다.

따라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농부처럼만 한다면 당신은 농부인 것이다.

잘 살고 싶다면 농부에게 물어보시기를, 혹시 부모님이 농사를 지었거나 지금도 짓고 있다면 정답은 곁에 있는 셈이다. 물론 방법은 또 있다, 책방에 가면 농가월령가라고 하는 책이 할인매대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이다.

아주 단순한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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