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중요한 삶의 기술(2)  _  2009.8.2
황우석 박사 사건을 상기해보자. 황 박사가 거짓 논문을 미국 과학전문지에 올린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고, 이로 인해 국론이 분열될 정도로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런데 최근 읽은 거짓말에 관한 책에는 과학자들의 거짓말에 대한 풍부한 사례가 실려 있었다.  

과학자들도 거짓말과 사기를 잘 친다?

분명 일반적 관념과는 다르다. 하지만 이는 오늘날 과학에 대한 신뢰가 워낙  크다 보니, 과학이야말로 객관적 방법과 연구를 통해 진리를 찾는 분야로만  철석같이 믿고 있을 뿐, 그들도 인간이고 인간은 거짓말을 잘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과학적 거짓말이나 사기는 일반인이 검증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어쩌면 거짓말에 대한 유혹은 어쩌면 더 클 수도 있다.

내가 읽은 책은 제목이 ‘왜 뻔한 거짓말에 속을까’(21세기북스 번역출간)인데 이 책을 일부 인용해본다.

“과학적 속임수는 최근의 문제만이 아니다. 근대 과학의 위인인 물리학자 뉴턴, 유전학의 대부인 그레고리 멘델이 진행한 실험자료를 분석한 결과 그들 역시 자신의 이론을 공표하기 위해 자료를 날조한 것으로 밝혀졌다. 찰스 다윈은 이전 시대의 다른 과학자가 연구했던 자료에서 상당 부분을 ‘빌려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원 과학자에게 자신이 빌려온 연구에 대한 권리를 주지 않았다.”

“심지어 19 세기 프랑스 의학계의 거장인 루이스 파스퇴르 역시 이런 사기 행위에서 예외가 아니다. 최근 파스퇴르의 노트를 분석한 연구에서, 그가 몸담고 있던 의학분야와 과학분야의 윤리적 기준을 수 차례 어겼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 유명한 실험에서 그는 자신이 개발했다는 백신을 사용했는데, 사실 이 백신은 그가 아니라 그의 경쟁자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파스퇴르의 경쟁자는...파스퇴르가 백신 실험으로 인정을 받고 국제적으로 갈채를 받으며 성공한 몇 달 뒤 신경마비로 사망했다.”

국내에는 그의 이름을 딴 회사도 있는데 그 파스퇴르가 저런 쓰레기였다니 놀랍지 않은가!

뉴턴이나 멘델, 다윈, 파스퇴르, 모두 불세출의 학자였고 재능도 대단했던 과학의 천재들이었지만, 그들의 공적이 자신의 천재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책에는 대표적인 사례만이 아니라 오늘날의 과학계도 여전히 사기나 속임수가 횡행함은 물론 연구비 지원이나 여타 치열한 경쟁에서 오는 압박감으로 해서 더 심할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심리학자들도 사기를 잘 친다고 저자인 심리학자가 말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나는 책의 이 대목을 읽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황우석 박사만 사기 친 것이 아니라 단지 운이 나빠서 들켰을 뿐이라고. 한편 과학과 과학자에 대한 우리의 기준이 너무 높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물론 과학자들이 그런 식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해왔기에 자승자박이긴 하다.  

그러니 황 박사 사건은 사실 늘 있을 수 있는 일이건만, 우리가 지나치게 호들갑을 떤 것이 아닐까? 파스퇴르도 저 정도일진대, 황 박사에게 재능이 있다면 국익 차원에서 그의 도덕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도와주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가끔 장관 임명을 위한 검증 과정에서 지명된 학자들이 논문 표절이나 제자의 논문을 도용했다가 걸리곤 하는데, 이 또한 학자들의 세계에서는 별 놀랄 일이 아니고 공공연한 비밀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과학자를 비하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욕망으로 몸부림치는 인간이란 차원에서. 내 말인 즉은, 안 보는 데에서 무슨 짓을 못 하랴! 나 역시도! 그저 정도의 문제가 아니겠나 싶다.

약간 충격을 받으셨을 수도 있겠다. 거짓말은 이처럼 우리 주변에 그리고 어느 분야이든 흔한 일이다. 줄여 말하면 우리의 日常(일상)이다.

지금껏 읽어본 거짓말에 관한 책들, 주로 서구학자들이 쓴 책을 보면 결국 거짓말은 나쁜 것이고 해악이 크다는 기본적인 가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거짓말에 대한 서구 기독교적 가르침의 영향일 것으로 본다.

그러나 내 생각은 서구 학자들의 그것과도 그리고 우리 사회의 일반적 통념과도 많이 다르다.

그간 많은 사람들을 만나 상담해주는 과정에서 나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에 대해 상당히 독특한 견해를 가지게 되었다.

인간은 道德(도덕)과 利益(이익)이라는 두 개의 價値(가치)사이에서 부단히 흔들리고 부단히 바로잡는 존재이며, 그 과정에서 거짓말이야말로 이 두 개의 충돌하는 가치인 양심과 이익을 가장 손쉽게 절충시키고 타협시키는 방법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따라서 거짓말은 삶의 중요한 기술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즉, 거짓말에는 해악도 있지만, 그에 따른 상당한 便益(편익)이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오히려 절대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는 식의 가르침이나 믿음이 너무 강고하면 그 또한 스스로와 주변을 기만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거짓말의 일차적인 장점은 일단 쉽다는 점에 있다. 거짓말은 눈앞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일단 모면토록 해주기 때문이다.

임시변통이란 말이 있듯이, 급하면 둘러댈 수도 있는 법이다. 둘러대는 것 역시 일종의 거짓말이다. 그리고 이 거짓말은 우리에게 너무나 친근하고 익숙한 행동이다.

야, 그 일 다했냐? 라고 상사가 물었을 때, 네, 거의 다 되갑니다. 당신이 하는 일상의 거짓말이 아닌가!  


문제는 그 다음이다. 둘러댐으로써 시간을 벌었다면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진지하게 그 문제가 된 상황에 대해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둘러대기만 하면 결국 해악이 생긴다. 특히 뭐든지 모면하고 보는 손쉬운 방식으로 일관하다보면 문제에 대해 정면으로 맞서려는 우리의 의지를 갉아먹게 된다는 점이다. 그 결과 거짓말의 해악은 타인이나 주변 사람보다도 일차적으로 그 본인에게 돌아간다.  

다시 말해 ‘모면’ 자체는 일종의 편익인 셈이니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모면하는 식으로만 일관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짓말에 대해 내가 얻은 또 하나의 생각은 거짓말도 그 사람의 인간적 사회적 성숙도에 따라 발전해가고 성숙해진다는 것이다.

거짓말이 발전한다는 것은 거짓말을 능숙하게 하게 된다는 의미도 있지만, 거짓말을 가려서 하게 된다는 뜻도 있다.

앞서 얘기했듯이 거짓말에도 비용과 편익의 균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이고, 그 비용과 편익을 잘 가리는 사람이 성숙한 인간이란 생각이다.

유치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유치한 사람이다.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터무니 없는 사람이다. 엉뚱한 방식으로 하는 사람은 엉뚱한 사람이다.

세련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세련된 사람이다. 교활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교활한 사람이다. 깊은 계산에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속 깊은 사람이다.

이처럼 ‘동의반복’적인 정의를 내리고 있다, 나는.

왜 이런 말을 하는가?, 그 이유는 거짓말의 스타일이야말로 사람의 개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아이가 과자를 먹다가 들켰을 때, 엄마가 ‘이거 네가 먹었지’ 하고 묻자 과자 부스러기가 묻은 입으로 ‘아니, 안 먹었어’ 하는 거짓말을 했다고 하자. 만일 당신이 이런 거짓말을 한다면 당신은 아이처럼 유치한 사람인 것이다.

물론 성숙하고 사회적으로 잘 적응이 된 사람도 더러 유치한 거짓말을 할 때가 있다. 특히 애정에 눈이 멀면 그렇게 된다. 멀쩡하던 사람이 유치한 거짓말을 반복하면 문제가 생긴 징조로 해석해도 좋다.

인격적 성숙 또는 사회적 성숙과 관련하여 얘기를 제법 자세하게 해보려고 생각하니 글의 분량이 만만치 않음을 이 시점에서 느끼게 되었다.

아예, 나도 책 한권 써볼까 싶은 충동도 든다. 하지만 참는 것이 좋으리라.

용두사미로 글을 마무리하려니 좀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서비스 차원에서 성숙한 사람이 하는 거짓말 중에서 최고의 거짓말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여태껏 말하지 않는 ‘노하우’를 공개한다.  

이 거짓말은 제 아무리 눈치가 빠르고 냄새를 잘 맡아도 실로 속지 않기가 어려운 거짓말, 最上乘(최상승)의 거짓말이다.

이 거짓말의 이름은 바로 沈黙(침묵)이고, 또 無言(무언)이다.

세상은 늘 어떤 분위기에 휩싸여 돌아간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늘 분위기가 존재하고 그 분위기가 어떤 사안에 대한 결정을 내리게 만든다.

그 분위기는 대단히 생산적이고 효과적일 때도 있고 때로는 대단히 파괴적이고 괴멸적일 때도 있다.

다수의 적과 결전을 앞둔 시점에서 소수인 아군의 분위기가 결사적이고 반드시 이기겠다는 결의의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하면 그 싸움은 승리로 끝날 수도 있다. 누군가 비장하고도 결의에 찬 목소리로 ‘우리는 이긴다’고 선동을 하고 그것에 사람들이 따르면 그렇게 될 수 있다.  

이 때 당신이 아군을 지휘하는 대장이라고 하자. 백전노장인 당신이 보기에 도무지 이길 승산이 없어 보인다고 할 때, 당신은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대장으로서 당신은 눈을 부릅뜬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수 있다. 아니면 우리는 이긴다고 말하면서 분위기를 따라가던지.

진다고 생각하는 당신이 침묵하면 거짓을 하는 것이고 이긴다고 말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반대로 이런 경우도 있다.

당신이 보기에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고 하자. 당신은 또 그 미친 세상에서 나름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하자.

그럴 때 세상이 미쳤다고 말을 하면 몸을 다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할 행동은 함께 미쳐 돌아가든지 아니면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함께 미친 척 말을 하면 거짓말이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으면 거짓인 것이다.

침묵이나 무언은 따라서 최상승의 거짓이고 거짓말인 것이다.

세상을 오래 살은 노회한 사람들이나 백전노장들의 계산과 판단은 보통 사람들의 그것에 비해 훨씬 더 빠르고 정교하고 또 정확하다. 적어도 치매가 오기 전까지는 그렇다.  

그런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할 때면 그 반대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

‘젊은이 정말 대단하시네, 허허’, 이런 말을 들었다면 새겨듣는 것이 좋다. 사실 걱정은 많이 되지만 잘해보시게나 정도의 말이다.

그러나 더 우려되는 상황은 그들이 눈빛만 반짝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이다.  

그럴 때면 극도로 조심하고 주변을 철저히 살펴야 한다.  

이것이 거짓말 최상승 고수들의 거짓말을 읽어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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