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헷갈리고 있다면 들어 보시게나  _  2009.9.4
지난 밤 갓등을 끄고 누웠더니 밝은 달빛이 여간하지 않았다. 다시 일어나 창밖을 살피니 집 뒷산 서편으로 기우는 보름달이었다. 空山(공산)에 明月(명월)이라, 어디서 개 짖는 소리만 들려오면 그만이련만!

푸른 기가 감도는 서늘한 달빛 앞에서 생각에 잠겼다가 홀연 깨어나 보니 달은 이미 산마루를 넘고 있었다.  

음양을 연구하는 사람인지라, 지난 역사의 일들을 무수히 되짚어보게 된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다시 보게 되고 또 다른 단서가 생각하면 또 살펴보게 된다. 문득 깊은 통찰을 얻는 순간도 있고 반대로 도로에 그칠 때도 있다. 그러니 지난 일들을 소상하게 알게 되고 연도와 사건들을 외우다시피 한다.

지난 십년 여 동안 많은 역사를 되살폈으니 우리 역사의 일들이야 좀 잘 꿰고 있으랴!

왜 과거를 보는가? 반성을 통해 교훈을 얻고자 함도 있고 그를 바탕으로 다가올 미래를 보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음양과 오행의 이치를 좀 더 투철하게 알아내기 위함이다.

우리 국운의 흐름에서 강아지 해, 戌(술)의 해를 맞으면 나라 사람들 모두가  생각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12 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술의 해에는 그 결과 유난히 갈등도 많았다.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을 것이니 잠깐 얘기해보자.

가깝게는 2006 년이 술의 해였다. 그 해 우리들을 갈등에 빠지게 만든 것은 부동산과 주식 문제였다. 부동산 가격이 지나치다 싶으면서도 이상 더 오르면 영원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에 거액의 대출도 마다치 않고 사들였다.

주식 상승의 흐름에 동참하지 않으면 노후 보장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저마다 펀드 열풍에 동참하면서 한 집 걸러 한 집 펀드에 가입하지 않은 집이 없을 정도였다.

한 편에서는 갖은 사치와 향락으로 흥청거렸고, 한 편에서는 생계가 갈수록 어려워졌다.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사람들은 혹시라도 이편이 아닌 저편으로 전락할 것 같은 두려움에서 그리고 이제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면 이편에 끼어들 수 있다는 기대에서 정신없이 아파트로 증시로 달려갔다.

비판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2006 년 우리의 정서가 그만큼 헷갈리고 또 불안했었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욕심과 공포는 엄밀한 경지에서 보면 동일한 것이니 당시 우리 정서는 욕심에 시달렸고 공포에 시달렸다.

하나 더 보자.

1994 년은 갑술년, 역시 술의 해였다. 벌써 아득한 얘기라 싶을 것이다.

당시 우리를 헷갈리게 만든 증세를 놓고 언론에서는 한국병 내지는 ‘빨리빨리’병이라 부르면서 시급히 치유해야 한다고 법석을 떨었다. 웃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치유방식 역시 ‘빨리빨리’ 식이었기 때문이다.

빨리빨리병의 언론이 빨리빨리병의 한국을 치유하자고 했던 것이니 결론은 우리 모두가 한국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유난히 조급하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도 알았지만, 왜 그 해 유난히 그 조급병을 인식했던 것일까?

간단히 말하면 ‘술’의 해라는 것이 정답이었고 풀어서 말하면 당시 우리 국민들의 발전에 대한 엄청난 조급증이 원인이었다 하겠다. 그러나 그 때와 2006 년과는 분명한 차이점이 하나 있다.

당시는 모두가 발전의 혜택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지만, 2006 년에 와서는 모두에게 희망이 부여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2000 년부터 시작된 양극화 때문이었다.

술의 해에 있었던 얘기는 이 정도에서 그치기로 하자. 더 거슬러 오르면 역사 강의가 되니 말이다. 그저 술의 해마다 그랬다고 ‘호호당’이란 사람이 얘기하니 일단은 받아들이는 정도로 그치자.

그러면 한 가지 더 얘기하겠다. 술의 해에 그런 헷갈림이 있고 나서 3 년이 지난 소의 해, 丑(축)의 해 말경이면 해답이 제시되었다는 사실이다.

1997 년 정축년에 가서 외환위기가 발생한 것은 그 3 년 전 1994 년 갑술년의 ‘빨리빨리’병이 가져온 후유증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2006 병술년에서 3 년이 지난 2009 년 기축년, 소의 해다. 올해 말쯤이면 답이 나온다는 얘기이다. 이것을 하나의 公式(공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의 의문부터 들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일들을 좀 더 살펴드리고도 싶지만, 분양 관계상 이유로 참기로 하자.

다만 아쉬움을 달래는 차원에서 1985 을축년, 즉 소의 해 말경부터 시작된 수출의 증가는 그 다음 3년에 걸친 우리 경제 대도약의 시기를 연 서막이었다는 점이다.

1982 년 술의 해에 엄청 혼란스럽다가 1985년 말 소의 해에는 쫄아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해 말 수출신용장 도래가 급증하면서 1986-1988의 3년에 걸친 대박을 맞이했던 것이다.

나는 당시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서른 하나였던 나는 이미 주식에 재미를 들이고 있었는데 그 해 11월경 증권사 객장을 찾았더니 이상한 일렁임이 있었다.

그래서 물어보았더니 한 중년의 신사가 나에게 ‘참 이상한 일이야, 외국에서 수출 신용장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다는데, 무슨 조화 속인지. 아무튼 그래서 자네도 주식을 좀 사두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하는 것이었다.

그 분의 조언대로 주식을 좀 사서 두었더니 다음 해 3월, 내 주식은 갑절로 올라있었다. 내 주식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종목이 드물 정도였다. 이를 두고 고수들은 ‘종목을 사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산다’는 표현을 한다.  

이처럼 축의 해라고 무조건 부정적인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닌 것이니 거기에는 60 년에 걸친 상승과 하락의 흐름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은 하락의 운, 내가 말하는 겨울의 초입이기에 금년 말경에 주어질 답은 하락이라는 것만 일러드린다.

이제 간밤 보름달 앞에서 스쳤던 생각들을 정리하기로 하자.

60 년 한 갑자 속에는 12 년마다 한 번씩 술의 해가 들어있고 그럴 때마다 우리들은 미망과 의혹에 사로잡혔다. 왜 그랬던 것일까?

우리 국운 상 ‘술’의 해는 추수의 해이기 때문이다. 추수가 끝나면 일단 잔치를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잔치가 너무 과하면 내년 추수 때까지, 아니 보릿고개 전까지 먹을 식량이 긴박해진다.

1970 술의 해, 박정희 영감이 모든 권력을 틀어쥐고 엄청나게 짠돌이 노릇을 하면서 국민들을 가혹하게 몰아쳤고, 워낙 어려운 형편이라 가을 잔치랄 것도 없었다.

1973 소의 해까지는 한술 더 떠서 유신체제란 것을 만들어 반대의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고 허리띠를 사정없이 졸라매면서 국민을 최소한으로 먹이고 남은 쌀은 죄다 종자로 비축했다가 1976 용의 해 파종기에 전량 뿌렸다.

이 무렵은 우리 국민들에게 있어 가장 고통스런 시기였다.

그러나 북한은 1970 년 술의 해에 거둔 수확을 거의 잔치로 먹어치우고 말았다. 당시 북한은 소련의 원조도 있고 생산력도 우리보다 좋은 편이라 방심했던 것이다. 그러니 바로 이 시기는 남북한의 흐름이 역전되는 순간이었다.  

그 결과 1976년 파종기를 맞아 북한은 제대로 파종한 것이 없었다. 그것이 누적되면서 점차 어려워졌고 1994 년 술의 해가 지나자 봄은커녕 겨울 기간 동안 먹을 것마저 없어지고 말았다.  

그 결과 1995-1997 년 사이 북한에서는 400 만에 달하는 북한 동포가 기아로 숨지는 참혹한 사태를 맞이했던 것이다.  

사실 박정희와 김일성 이 두 사람은 모두 애국자였고 백성을 사랑했던 지도자였다. 다만 박정희는 지독한 내핍과 근검절약을 국민들에게 강요한 사람이었다. 배고프겠지만 할 수 없다, 주린 배를 움켜잡고 내 말만 따르면 된다는 사람이었다.

반면 김일성에게는 그런 독한 면이 없었다. 물론 장차 소련이 무너지고 중국이 개방으로 가서 엄청난 발전을 보리라는 점을 내다볼 능력이야 당연히 없었겠지만.

두고두고 새기고 돌이켜보아야 할 우리 현대사의 전환점이라 하겠다.

이제 다시 최근으로 돌아오자. 2006 술의 해는 1970 년과 정반대였다고 볼 수 있다.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된 세상이니 시대 풍조에 맞지 않는  내핍과 절약이라는 비인기 종목을 택할 순 없었다. 거기에 이미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어져 있었다.

정치적으로 진보는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보수는 자기 책임과 성장 동력을 강조했다. 실은 양쪽 모두 일리가 있는 말들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럴 때일수록 절약과 내핍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나서는 이는 감히 없었다.  

경제대국이라며? 달러만 쌓아놓으면 외환위기도 없다며?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누려?  

가진 자는 마음껏 풍성한 가을 잔치를 벌였고, 가지지 못한 자는 겨울 끼니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놓인 자는 일단 가진 것으로 잔치에 동참은 하되 그 대비책으로 보험으로 부동산과 주식에, 아울러 자녀 교육에 투자를 했다. 그런데 그마저도 빌려서 한 자가 많으니 소위 ‘레버리지’금융방식이었다.

물론 여유가 좀 있으면 풀어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그다지 잘못한다고 비판할 생각도 물론 자격도 나는 없다. 하지만 좋을 때일수록 우환에 대비하는 마음자세는 萬古(만고)의 正法(정법)이 아니겠는가!

물론 나는 우리의 긴 미래를 낙관한다. 왜냐 우리 겨레는 엄청난 다이내믹을 지닌 사람들이기에. 다만 약간 걱정은 한다, 원래 우리 겨레가 준비라는 측면에서 그다지 능한 것 같지는 않기에. 그러나 여전히 낙관한다, 우리 겨레는 발등에 불? 하면 엄청 날래고 열심인 것을 알기에.    

1970, 1982, 1994, 2006, 모두 술의 해이고 헷갈림의 해이지만 반응과 행동양식은 달랐다. 물론 2018 년에 또 한 번의 개띠 해가 오겠지만 그 때 역시 전혀 다를 것이다.

그러니 그 다름을 면밀히 살피면 미래의 흐름도 보이는 것이다. 세상 이치란 알고 보면 그렇게 복잡한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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