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시위를 돌이켜보면서  _  2009.9.3
어린 아이의 눈앞에서 세상은 단순하다. 보는 것이 단순하니 마음도 단순하다. 이른바 童心(동심)의 세계이다. 세상이 단순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시력이 약한 까닭이다.

동심의 눈으로 보던 간단한 세상보기에서 벗어나 나이가 들고 지식과 경험이 약간씩 생겨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부단히 확신을 가지게 되고 다시 갈등에 휩싸이게 된다.    

젊은이는 확신과 미혹을 오가다 보니 ‘데모’도 잘 한다. 사춘기 때는 부모님과 선생님에 대해 반항하고, 좀 더 철이 들면 세상과 사회에 대해 곧잘 항거한다.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짓이라면 일부러라도 골라서 하는 젊은이들에게 락(rock)이란 대중음악 장르는 그 본질이 반항이고 불만의 해소인 것이니 사회적으로 순기능을 지녔다 하겠다.

나는 한다, 왜냐고? 하지 말라고 하니까. 하지 말라고 하는 행동을 함께 하는 자가 곁에 있다면 그 순간 친구이고 동지이며 심지어는 남이 아닌 하나가 된다. 이처럼 순식간에 ‘연대’를 하는 젊은이들은 그래서 ‘광장’을 좋아한다.  

누군가 주목해주면 더욱 흥이 나고 신이 올라 더욱 강렬한 연대의식을 발산하면서 뭉치게 된다.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아냐고 묻는다면 나 역시 그랬으니까.

서울시청 앞 광장은 그렇기에 반항하는 젊은이들의 정열을 분출하기에 최적의 장소일 수밖에 없다. 시당국에서 다른 장소를 내어줄 터이니 여기서는 하지 마시오 하고 아무리 말해도 들을 리 만무하다.

여기서는 ‘하지 마시오’ 하는 말 자체가 하나의 이유가 된다. 왜냐면 하지 말라고 하니까. 아울러 서울 시청 앞 광장은 만인의 주목, 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곳이니 거기서 해야만 더 흥이 나고 신명이 오른다. 시선을 느끼면 더욱 고난도의 춤사위를 보이고자 한다.  

지난 해 초여름 시청 앞 광장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시위, 초등학교 시절 여름 장마 궂은 비 내리던 무렵 달걀귀신을 진짜로 봤다는 소문이 3,4 학년 아이들 사이에 퍼지면서 전율하던 때와 같다는 생각이었다. 전율 역시 하나의 쾌감이라고 다른 글에서 말한 적이 있다.  

소문의 구체적인 진원지는 주지하디시피 지상파 방송이었다.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했다.

근거가 희박한 소문을 유포하면 당장은 요란스럽겠지만 결국 회사의 이미지는 실추될 것이니 궁극적으로 손해라는 생각, 조만간 정부가 방송사의 경영에 손을 보는 일이 있겠구나 싶었다. 또 그와 함께 반대파의 신뢰도 그만큼 떨어지겠구나 하는 생각.

또 하나는 반대쪽 정권이 등장한 것에 대해 저런 식으로라도 분노와 정열을 일시에 분출할 수 있는 파티의 장을 만들었으니 나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그 바람에 피해가 다소 발생했지만 그것은 광란의 ‘락 페스티벌’에서 발생하기 마련인 난동 피해와 별반 차이가 없다. 먼 옛날 애재(아현동)와 만리재(만리동) 아이들 사이에서 해마다 있었던 投石戰(투석전) 놀이의 피해는 어쩌면 더 심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니 말이다.

그 시위는 촛불로 시작했지만 난장으로 치닫다가 어느 한 순간 응집력이 사라지는 유행성 감기처럼 그렇게 전형적으로 끝을 맺었다. 석 달 열흘을 넘기기는 어려우리라 여겼고 또 그렇게 끝이 났다.

건전한 시위문화 운운 떠들지만, 아직 우리 사회가 그럴 정도는 아니고 시위란 것이 다소 격한 맛도 있고 난장스런 구석이 있어야 하지 폴리스 라인 안에서의 밋밋한 피켓 시위를 강요하기에는 좀 그렇지 않은가 싶다.

난리가 다소 심각해지자 이명박 대통령이 너무 조용히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촛불 시위가 끝날 무렵에는 나 역시 이명박 대통령의 대응 방식이 옳았다는 판단이 들었다.

근본 원인은 어쩌면 야당이 소수당이 되었다는 점에 있었다. 정권에 이어 국회마저 내어준 상태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음을 느낀 정권 반대파의 입장에서 계기를 찾은 것이 촛불 시위였다고 본다.

거기에 저마다 다양한 이유, 취업이 어려운 환경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불안감, 88 만원 세대란 말에 잔뜩 주눅이 든 마음 등등의 이유로 분출구를 찾아야 했던 젊은이들의 욕구가 가세하면서 증폭되었으니 그 분출욕구를 그 정도에서 풀 수 있도록 배려한 대통령의 판단은 역시 세상을 살아온 경륜의 소산이라 하겠다.  

국운 상에서 보면 촛불 시위는 겨울 문턱에서 우연히 시작되고 거기에 정권의 반대파가 적극 찬조하면서 벌어졌던 젊은이들의 격렬했던 잔치였다. 그러니 촛불 시위는 오래도록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기억에 남게 될 것이다.

사실 시청 앞 광장은 ‘디자인틱’ 서울로서 정치 입지를 굳혀보려는 서울시장의 공들인 작품이다.

그런데 얼마 전 시청 광장을 지나다보니 인조잔디로 바꾸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래, 잘 했어, 그게 나아, 어차피 또 망가질 잔디라면 내구성이 좋은 인조잔디가 좋겠지 싶었다. 물론 주변 여기저기에 망원 기능을 갖춘 CCTV도 잔뜩 설치되겠네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차 알게 된다. 젊은 날의 반항과 데모, 몸부림은 세상과 사회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 그것은 결국 스스로를 향한 것이었음을. 젊음은 어리석지만 아름답다. 촛불 난장도 그랬었다.

(이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 분도 많으실 것이다. 하지만 민주사회란 싫은 생각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제도가 아니겠는가. 미리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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