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와 이치로, 태풍의 눈  _  2009.9.2
(일본의 변화에 대해 글을 썼는데, 일본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입장에서 너무 막연한 감이 있다 하니, 약간 보충하고자 한다.)

일본은 1955 乙未(을미)년에 초봄을 맞이했고, 지금은 겨울의 한 가운데를 가고 있다.

1955 년 자유당과 민주당이 연합해 만든 자민당이 봄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 6 년 전인 1949 己丑(기축)년에 요시다 시게루 총리가 이끈 변화의 물결이 시작이었다.

요시다는 이른바 ‘요시다 학교’를 통해 관료 출신들을 정계에 입문시켰고 그것으로서 향후 60 년에 걸친 일본 정치의 구조적 특징, 즉 관료가 이끄는 나라의 틀이 지워졌으니, 요시다 시게루는 전후 일본 번영의 기틀을 만든 사람이었다.

1949 년으로부터 60 년이 지난 오늘, 자민당 체제가 붕괴했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핵심 주역으로 등장한 사람은 하토야마 당수가 아니라, 오자와 이치로, 한자로 小澤一郞(소택일랑)이란 사람이다.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그가 이끄는 ‘일신회’ 계열이 전체 480 석 중에서 143 명이 당선되었다. 사실상 최대 정파로 등장한 것이다. 일본 언론은 그들을 ‘오자와의 칠드런’이라 부른다.

사실 오자와는 오래 전부터 일본 정치 변화의 축이었다.

그는 오래 전 서민 출신으로서 일본 총리의 자리에 오른 다나카 가쿠에이에 의해 정계에 입문했으며 다나카 수상은 그를 아들처럼 아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조폭과도 같은 비정한 정치의 세계라 오자와는 나중에 그를 배반하면서 자립의 기반을 잡았다. (우리 정치에도 이런 일이 많지만 입을 아끼고자 한다.)

오자와는 사실 일본 자민당의 장기 집권을 이미 한 번 붕괴시켰던 장본인이다.

1993 년 7월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의 과반 의석이 무너져 야당으로 전락케 한 것도 바로 오자와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은 자민당 체제가 무너졌다고 난리 법석이었는데 사실 그럴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  

1993 년은 일본 국운의 봄이 시작된 1955 년에서 38 년이 지난 시점이다. 이는 우리가 1964 년 초봄에서 38 년이 지난 시점인 2002 년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것과 같은 흐름이다.

노무현 정부가 지지 여부를 떠나 성공 여부를 떠나 새로운 충격이었듯이, 당시 일본의 자민당 패배도 그랬던 것이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러 일본은 이제 더 이상 그냥 있을 순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앙 무대에는 여전히 오자와가 서있다.

오자와의 정치적 노선은 기본적으로 보수라 하겠지만, 기존의 체제와는 다른 일본을 꿈꾸는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재미난 점은 지금의 시점이 오자와 이치로의 정치 歷程(역정)에 있어 최고봉이라는 점이다. 물론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실세 중의 실세로서 장차의 세월은 내 손바닥 안에 있다고 득의양양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렇지가 않다. 기대는 엇나갈 것이니, 세상의 이치는 다 쓰면 버리는 법이다. 용이 다하면 바로 무용인 이치, 用盡則無用(용진즉무용)의 이치이다. 생각해보면 그것이 당연한 것이나 사람의 욕심이 그 간단한 것을 보지 못하게 할 뿐이다.

오자와 자신이 정치의 스승 다나카 가쿠에이를 버렸듯이 때가 되면 오자와의 아이들 중에 다시 그를 딪고 일어서는 자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자와는 60 년 전 1949 년 요시다 시게루가 새로운 틀을 자아내었듯 그 역시 역사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더욱 재미난 점이 있다.

요시다 시게루, 1955 년 자민당 체제의 기틀을 만든 이 대정치가의 외손자가 바로 지금 일본 총리를 막 사임하고 있는 ‘아소 다로’라는 사실이다.

1949 년 변화의 주역 요시다 시게루, 그로부터 정확하게 한 갑자 60 년 후 몰락하는 집권 자민당의 마지막 총리자리를 그 외손자 ‘아소 다로’가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 할아버지는 새 시대의 막을 열었고 손자는 그 시대의 막을 내렸으니 이 어찌 한 편의 소설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또 하나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다. 금년 3월 22일 요시다 시게루 총리가 살았던 저택이 모두 불에 타 소실되었다는 점이다. 그 보도를 일본 미디어에서 접하면서, 아, 이제 또 하나의 흐름이 완결되었구나! 하는 감회, 음양오행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의 짙은 감회였다.

우리 정치 흐름에 대해서도 언젠가 비교적 자유로운 시점이 되면 소상히 얘기하는 날이 올 것이다.



이전페이지로    목록보기            이 글 담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