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돈키호테!  _  2009.9.1
창밖을 보니 구름 한 점 없이 그저 푸르른 창공이다. 여름은 가고 가을이 왔다. 문득 ‘반지의 제왕’에서 주인공 프로도가 정든 고향 마을을 떠나 끝을 알 수 없는 먼 遠征(원정)길에 오르기 직전의 여름과 가을을 묘사한 대목이 떠오른다.

먼 길을 떠나야 하는 프로도의 두 눈에 고향 마을 샤이어의 여름과 가을의 풍광은 새삼 아름답게 그리고 풍성하게 비쳐왔을 것이다. 서가에서 책을 가져와서 간명하고도 유려한 톨킨 할아버지의 글을 조금이나마 맛을 보여드릴까 한다.  

‘The Shire had seldom seen so fair a summer, or so rich an autumn; the trees were laden with apples, honey was dripping in the combs, and the corn was tall and full.’

(옮겨보면 이렇다.)

‘샤이어의 여름은 드물게 빛났고 가을 또한 풍성하기 그지없었다,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고, 벌집에서는 꿀이 흘러내렸으며, 높이 자란 옥수수는 씨알이 가득했다.’

반지의 제왕에 대한 원명은 The Lord of the Rings 이다.

사실 ‘lord’ 란 단어는 아시아 문화 속에서 찾아보면 君主(군주)란 표현이 가장 어울린다. 옛 로마 시대부터 반지란 신분의 상징이었고, 권력의 상징이었다. 그런 반지‘들’의 군주란 권력자들 위에 군림하는 군주란 의미가 된다. 그러니 우리말 제목을 반지의 제왕이라 한 것은 그리 틀린 것이 아니다.

모험 소설은 근본적으로 ‘환타지’이고 성장 소설일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 탐험에 관한 어린이용 책을 읽으면서, 지구상에는 더 이상 탐험과 정복의 여지가 남아있지 않은 시대에 태어났음을 알고 짜증을 부렸다. 겨우 15 소년 표류기나 로빈슨 쿠루소 정도로 무인도나 하나 찾아보는 도리밖에 없다고 우울해했다.

그 허탈함을 메워준 것이 중학교 무렵 알게 된 무협지의 세계였다. 거짓말 보태지 않고 권수로 5000 천권 정도는 읽었다. 고등학교 등교시 무협지 가방과 학교 가방을 별도로 들고 다니면서 수업 시간에 열심히 읽었다. 들키면 터지거나 압수였지만.

대학교 1학년 무렵, 서양 철학과 만났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음양오행과 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未知(미지)의 세계가 숨을 쉬고 있었다.

자신의 미래가 궁금하지 않은 자 없듯이 열심히 책을 보고 내 팔자를 따져가며 연구했다. 그럴듯한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다.

한문에 능숙했던 나는 직장을 다니면서 돈이 생기자 이 방면의 책을 다 뒤져 읽었다. 인사동 거리에 있던 책방, 동문선 출판사에서 운영하던 중국 서적방은 단골이었다. (너무 안 팔려서 그 책방은 문을 닫았지만, 내게는 즐거운 공간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내린 결론은 음양오행과 명리학이 뻥이라는 판단이었다. 죄다 근거가 희박하거나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이 더 많았다.

그러나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내가 궁극적으로 원했던 것은 ‘미지의 세계’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팔자를 볼 줄 안다는 소문은 더욱 널리 퍼져갔고 명성도 높아져갔다.

자꾸 남의 팔자를 봐주다보니 내가 뻥이라고 단정을 지었던 것 속에서 뭔가 보이는 것이 있었다. 이게 장난이 아니네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자 나는 본격적으로 검증을 해야 한다는 결심을 했고, 직장 점심 시간과 짜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이런저런 다양한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돈을 많이 번 사람, 무당, 이런 식으로 좀 특징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고 다녔다. 그 중에는 살인범도 있을 정도였다.

서대문 구치소를 찾아가 연쇄살인을 저지른 사람을 면회신청으로 만나서 생년월일시를 물었더니 화를 내면서 ‘내 나가기면 하면 너 가만 안 둘거야’ 하는 말에 겁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저가 나올 턱이 없으니 하고 안심하고 사식을 넣어주면서 다가가니 나중에 사주도 말하고 자신의 얘기도 털어놓았다. 이런 식으로 살인범도 여럿 만나서 친해지기도 했으니 얼마나 갸륵한 정성인가!

뻥이라 여겼다가 시간이 지나자 뻥이 아니라는 점을 느꼈고, 여기에는 나름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을 전환하자 더 빠져들었고 즐겼다.

한 가지 다행한 점으로 여기는 것은 상담료를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곤 늘 단서를 달았다. ‘이거 너무 믿을 거도 아니고, 내 실력이 아직은’ 하는 식으로 단서를 달았기에 거짓말 한 죄는 별로 받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다가 나는 어느덧 힌두 철학과 만나게 되었다. 불교 철학에 한 때 심취했다가 힌두 철학을 만나게 되니 이건 또 다른 한 차원 높은 세계, 물론 미지의 세계였다.

그러고 보니 나는 평생 未知(미지)의 세계가 아니면 가지 않았던 것 같다. 직장을 서른아홉에 떠난 이래 곤궁한 적도 많았고 좋은 조건의 직장이나 제의도 모두 거절해가면서 내가 찾아다닌 것은 바로 ‘알려지지 않은 세계’였던 것이다.

훌륭해서 ‘전인미답’의 경지를 간 것이 아니라,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니 혼자 밟아보는 세계만 찾아서 돌아다닌 셈이었다. 남이 가 본 세계라면 일부러 다른 길이나 오솔 길을 찾아 돌아다닌 것이었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아! 나는 본질에 있어 탐험가구나 하는 것을. 워낙 기사도에 관한 소설을 많이 읽다보니 때늦게 당나귀에 올라타고 기사의 길에 나선 돈키호테가 바로 나임을 알게 되었다.

이런 통찰에 도달했을 때 내 나이 어언 50 이었다. 그러니 진짜 돈키호테와 같아졌다.

사실 내가 이 블로그를 만들어놓고 글을 쓰면서 뭔가 좀 아는 냥 하고 있지만, 실은 거의 모든 것이 내 모험담이라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깝다. 사람과의 만남을 통한 모험담, 시공을 초월할 수 있는 책이라는 도구를 타고 만났던 여러 동서양의 스승님들의 이야기들이다.

역사로 들어가 동서고금의 이야기를 들쑤시고 돌아다녔고, 동서양의 철학을 헤매다가 어느 날에는 같은 자리에서 만나 ‘어, 이거 황당하구만’ 하고 희죽거리기도 했다.

귀신의 세계가 너무 궁금해서 열심히 찾아다녔지만, 확실한 성과를 거둔 적은 없었다. 만일 귀신이 만져지는 확실한 것이라면 사후의 세계를 입증하는 결과가 되니 말이다.

사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이제 세상에는 더 이상 미지의 것이 없다고 내가 느끼게 될 경우’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어떤 골목을 들어가 돌아다닐 때에도 항상 또 다른 미지의 골목을 예비 분으로 확보하고 있지 못하면 우울해지고 불안해진다.

2005 년 어느 날, 우울증이 찾아왔다. 강남 교보 문고를 가서 책을 뒤지고 돌아다니는데 세 시간 이상 돌아다녔건만 어느 구석에서도 더 이상 섹시한 모습과 냄새를 풍겨오는 책을 발견할 수 없었던 날이었다.

책에서 느끼지 못한다면 미지의 여성을 만나 또 다른 연애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사주도 엄청 많이 보았던 터라 시들했고, 더 이상 파고들거나 새 경지로 올라간다는 것도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노안이 오면서 한 시간 이상 책을 보면 눈이 시렸다. 사실 바람을 필 마음도 그다지 없었다. 좋은 대화 상대이던 아들이 군 입대를 하니 더욱 막막했다. 삶의 모든 지평이 한 순간 닫혀버렸다.

돈키호테가 세상 고생에 신물이 나고 어깨도 쳐져서 이제 고향 집으로 돌아가는 길밖에 남지 않았음을 느낀 것이었다.

냉정히 따져보니 결론은 갱년기였다. 갱년기 우울증이었다. 신기한 것은 그런 우울의 시간들을 한 일 년 지내고 나니 그러나 다시 명랑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덤으로 한 가지 통찰을 또 얻었다. 나는 몽상가이고 탐험가라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화학반응이 내 머리 속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진전이 없을 거라 판단했던 음양오행과 명리에 대한 식견이 갑작스럽게 한 단계 올라서게 되었다는 점이다.

2007 년의 무렵이었다. 그러자 더 이상 남의 운명을 봐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잘 모를 때는 나도 모르는 까닭에 헛소리도 섞게 되지만, 이젠 그럴 수가 없었다. 너무 많이 알아버렸고 삶과 운명의 비밀스런 이치를 통찰하게 되었던 것이다.

금년 2009 년 초 나는 2000 년부터 시작했던 그간의 상담을 접었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희희락락호호당’ 블로그이다.  

나는 이제 알고 있다. 모든 인생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각자 나름의 모험을 하고 그를 통해 존재의 의의를 알게 되는 과정이라는 것을.  

나만 몽상가나 탐험가라 아니라, 모두가 그렇다는 사실. 나만 돈키호테가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돈키호테스럽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보통 사람들이 성공이란 진부하고도 막연한 바람 속에 감추어두고 있는 진정한 바람은 모두가 모험이고 탐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이 어느 정도 대단한 것인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미지의 세계를 이리저리 쑤시고 돌아다니면서 내 몫의 삶을 즐겨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나의 몽상과 모험, 그리고 탐험은 앞으로도 쭈욱 이어질 것이다. 젊은 시절의 내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프로도’였다면 좀 더 미래의 나는 ‘빌보’일 것이고, 도중 고비마다 통찰을 얻는 순간은 ‘갠달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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