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로에 벼농사를 생각하다  _  2009.10.7
내일이면 寒露(한로), 찬 이슬이 내리는 때.

가을들판의 황금물결을 쌀로 거둬들이는 농부의 일손이 가장 분주한 때가 한로 무렵이다.

올해는 대단한 풍년이란 말을 들었다. 그래서 농부들의 표정이 밝지 않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렇다고 흉년이 들기를 기원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가을 들판 사이로 난 고속도로 위를 달리다보면 우리 논들이 얼마나 잘 정리되어 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평평하고 네모반듯한 것이 얼마나 보기에 좋은지 모른다.

처음부터 저렇듯 평평하고 반듯한 논이었을 리는 없다.

벼농사를 가지고 이 땅에 이주해온 오래 전의 우리 조상들은 거의 인력만으로 모질고도 억척같이 그리고 대를 이어 부단히 강 주변의 언덕과 구릉을 깎아내고 밀어서 저런 논과 밭을 일구어왔을 것이다.

그러니 저 평평하고 반듯한 논들은 우리 겨레 수 백 代(대)에 걸친 피와 땀의 산물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1960 년대 이후 우리가 일어서는 과정에서 부단히 품종을 개량하고 영농기술을 발전시켜왔기에 그리고 기계화가 이루어졌기에 지금 우리는 거의 해마다 풍년을 맞이하고 있다.

어릴 적 1960 년대 시절, 가을이 다가오면 신문지상에 제 1면 톱으로 다루는 것이 올해의 작황 예상이었고, 또 작황실적이었다. 잉크를 넉넉하게 써서 아주 진하고 큰 글자로 수확량을 알리곤 했다.

그러면 동네 어른들께서는 ‘음, 이제 우리도 몇 년 지나지 않아 식량 원조를 받지 않아도 되겠구만’ 하시며 흐뭇한 표정들을 지으셨다.

초등학교 다니던 어린 나도 어른들의 밝은 표정에 크게 안심하곤 했다.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는 거야?’ 하고 물어보면 어머니는 ‘응, 조금 부족하지만 서로 아끼고 나누어 먹으면 되는 거야’ 하셨다.

언젠가 국립중앙도서관에 가서 옛날 신문들을 한 번 뒤져보아야지 싶다. 가을작황이 탑 뉴스로 다뤄지던 시절이 언제까지였나를 확인하고픈 마음이다.

1970 년대 초, ‘통일벼’가 기억난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1972 년이라고 한다. 통일벼는 다수확 품종으로서 보릿고개에서 우리를 해방시켰다. 우리가 식량의 자급자족을 달성한 것은 1977 년의 일이었다고 한다. 1965 년 300만 톤에서 1977 년 600만 톤이 되어  쌀에 대한 悲願(비원)을 풀었다고 한다.

통일벼 개발은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가 이룩한 위대한 농업혁명이었던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쌀 수확량은 460만 톤 정도이다. 하지만 소비가 되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을 정도.

이토록 쌀은 천대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 한민족 한겨레는 오늘날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쌀의 산물이다. 우리 민족이 중국에 동화되지 않고 강한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쌀 때문이다.  

우리 민족을 만든 것은 광개토대왕도 아니고 김유신 장군도 아니며 세종대왕도 아니다. 모든 것은 벼농사에서 시작되었다.

중국 주변의 민족 중에 오늘날 중국에 흡수 동화되지 않은 민족이 거의 없다. 우리만 이상하게도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나라를 이루고 나아가서 번영발전하고 있다.

유목민족은 원래 전투에 능하다. 그런데 다 흡수되었다, 우리민족은 사실 전쟁에 그리 능한 민족도 아니건만 오늘날까지 독립을 유지하고 있다.

이 모두 쌀이 가져온 인구부양력 때문이다.

만주 땅 넓다 하지만 여진족이 청나라를 정복할 때 만주 모든 부족과 몽골족까지 죄다 끌어들여서 겨우 80 만에 불과했다. 그러나 한반도의 우리 겨레는 이미 600 만을 넘고 있었으니 그 차이는 결국 벼농사에 기인한다.

한반도와 같은 위도의 중국 화북 지역은 벼농사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칼로리도 적고 수확도 적은 밭농사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한반도는 여름철 고온다습한 몬순 기후로 해서 벼농사가 가능한 지역이다.

결국 한반도는 몬순 기후로 해서 높은 위도에도 불구하고 벼농사가 가능했었고, 이에 남쪽에서 벼농사기술을 가진 우리 조상의 일부가 정착할 수 있었다.

벼농사는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었고 결과 한반도의 땅덩이는 작지만 많은 인구가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만주족과 몽골, 거란 등의 우리와 사촌관계인 민족들이 결국 중국으로 흡수된 것 역시 군사력의 문제가 아니라 유목방식으로는 인구부양력이 약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반도의 인구는 대단히 많았고 그래서 민족적 정체성을 가질 수 있었다. 고온다습한 몬순 기후로 인해 가능했던 벼농사가 결국 우리 민족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듯 우리 민족을 만들어낸 쌀이 처치곤란이 되고 있다. 이에 다시 여러 논쟁과 주장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저 그런 주장들이고 별 설득력도 없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15 년에 걸친 국운의 겨울이 지나고 나면 더 이상  농부들이 황금물결 앞에서 울상 짓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냥 믿음이나 신념이 아니라, 30 년 뒤까지 읽어낼 수 있는 내 눈에는 우리 쌀이 되살아나는 모든 과정이 소상하게 비쳐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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