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가 준비되고 있다. (5)  _  2009.10.2
저번 글에서 1995 년 세계무역기구의 창설로 미국이 시작한 글로벌리즘 이전의 흐름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번 글로벌리즘은 따라서 세 번째 업그레이드 버전인 셈이다.

첫 번째 버전: 1875 을해년 영국에 의한 글로벌리즘
두 번째 버전: 1935 을해년 ‘나와바리니즘’, 즉 블락경제주의
세 번째 버전: 1995 을해년 미국 주도의 WTO를 통한 글로벌리즘

먼저 생각할 것은 글로벌리즘이 과연 지구촌을 관류하는 대세인지의 여부이다. 그것은 앞서 맑시즘을 살필 때 사용했던 기법, 즉 360 년의 1/5 지점인 72 년차에 이르러 상승 모멘텀이 형성되는 가를 보는 방법이다.  

1875 더하기 72 는 1947 이 된다. 이 무렵은 미소간의 냉전이 시작되던 시점이다.

먼저 1944 년 미국은 제2차 대전 이후의 세계질서를 만들기 위해 브레튼우즈 체제를 만들었다.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고 세계시장경제의 문제점을 조정하기 위한 IMF 설립, 아울러 자유무역증진을 위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GATT 등을 구축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소련과의 경쟁에서 충분치 못하다는 것을 인식한 미국은 엄청난 계획을 실행에 옮기게 되었으니 이른바 ‘마샬플랜’이었고 1947 년의 일이었다. 이것이 바로 상승 모멘텀이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서유럽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하여 상상할 수도 없는 거액의 원조를 유럽에 퍼부었고 그것으로서 유럽을 신속하게 부흥시켰다.

맑시즘이 그 출발로부터 72 년이 지난 시점에서 유럽 혁명에 대한 기대가 무산되고 겨우 러시아만 일국 사회주의로 이행하면서 모멘텀을 상실했던 것에 비하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마샬플랜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미국이 서유럽 전체를 매수했던 것이라 하겠다. 이로서 자본주의와 글로벌리즘의 우위가 확립된 것이고,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가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이후 수십년에 걸친 미소간의 냉전이 이어졌으나, 마샬플랜 당시 이미 승부는 결정지어져 있었던 것이다.

자본주의가 더 좋다, 맑시즘이 더 좋다 하고 수많은 학자들이 갑론을박을 했지만 세상은 학자들이 보는 대로 또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돌아와서 미국은 냉전에서 승리하고 소련이 없어졌지만 그간 체력과 원기가 크게 손상을 입고 있었다. 이에 미국은 빠른 시간 내에 원기를 회복하여 점차 흐트러져가고 있는 세계 패권을 다잡으려고 조급증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미국은 부시 행정부 시절 너무 일방적이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이른바 ‘일방주의’ 논쟁이었다.

아무튼 미국은 먼저 기존무역체제인 GATT를 없애고 WTO를 창설했으니 또한 1995 년의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미국이 안고 있는 기회와 위험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하자.  

먼저 미국이 안고 있는 문제점부터 살펴본다.  

가장 큰 문제점은 제조업 기반이 이미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가 거의 사라져버렸다는 점, 코카콜라와 맥도널드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생산품이 없다. 최근에는 미국의 자존심이던 GM과 포드마저도 부실기업이 되었다.

그 다음 문제점은 수 십 년에 걸친 만성적인 무역적자와 재정적자의 고착화였다. 미국은 이제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으로 유지해가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만성적인 무역적자는 나쁜 면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우리 대한민국을 비롯하여 수많은 나라들을 번영시키는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부흥과 한 때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던 일본 역시 모두 미국의 무역적자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 중국의 발전 역시 미국시장으로의 수출 때문이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전 세계를 번영하게 하고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었으니 제2차 대전 이후 세계는 미국에게 커다란 은혜를 입고 있는 셈이다.

보통의 나라라면 이런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감당할 길이 없지만 미국은 달랐다. 바로 찍어내면 돈이 되는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연방은행은 전 세계의 중앙은행으로서 세계화폐의 발행권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찍으면 돈이 되는 달러, 이 얼마나 엄청난 이익인가!

물론 처음에는 달러가 그 자체로서 가치가 없는 명목화폐가 아니라 금과 연계된 ‘하드커런시’였지만 어느새 그렇게 되고 말았다. 모든 나라가 묵시적 동의를 했던 것이고 그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 자체로서 가치가 없는 달러를 모든 나라가 수용하는 것은 결국 미국의 힘과 신용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여전히 미국의 힘이 막강하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사실이다, 미국은 여전히 막강하다.

그 기초는 역시 군사력이고, 이 점에 대해 이 시리즈 제1편에서 얘기했다.

미국은 군사력을 바탕으로 무수히 많은 시장을 만들고 또 정상 운용되도록 경찰권을 행사하고 있다.

결국 오늘날 미국이 가진 힘은 군사력과 기축통화인 달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에게는 한 가지 힘이 더 남아있으니 이 또한 간과되어선 안 될 점이다.

그것은 바로 세계제국 미국으로 몰려드는 해외인재들이다.

전 세계의 머리 좋은 친구들은 그 절반 정도가 미국으로 몰려들었고 지금도 몰려들고 있다. 자식을 ‘아이비리그’에 보냈겠다고 전 재산 털고 있는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이 어디 하나 둘인가! 심지어는 기러기가 되어 라면 끓이는 아버지가 또한 얼마나 흔한가 말이다.

다소 미안한 얘기지만 나는 자녀를 미국에 보내놓고 ‘반미’하시는 분들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 정운찬 총리가 자녀 이중국적 문제로 곤욕을 치르는 것을 보면서 미국이 ‘진짜 씨긴 씨다’ 싶은 마음이다.

이리하여 여전히 미국은 G 7을 통해 중간 보스들을 관리하고 나아가서 최근에는 G 20을 만들어 기간조직원들을 통제하고 있다.

미국이 1995 년 글로벌리즘을 새롭게 시작할 무렵, 사실 미국에게는 기막힌 카드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중국이다.

1875 년의 글로벌리즘과 1935 년의 글로벌리즘은 모두 공급과잉과 시장의 한계에서 오는 불황을 안고 있었으나, 중국 카드로 해서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거꾸로 호황을 누릴 수가 있었다.

중국은 엄청난 자금의 수요처이자 엄청난 시장이다. 앞으로도 더욱 커져갈  시장이다.

미국은 엄청난 자금을 빨아들일 중국을 개발했지만 문제는 자금이었다.

찍으면 돈이 되는 달러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마구 찍어내다가는 인플레이션을 견딜 수 없다. 그래서 떠올린 묘수가 있었다.

일본에는 ‘잃어버린 10 년’으로 엄청난 돈들이 은행에서 잠자고 있었다. 미국은 그 엔화를 가져다 쓰면 된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걸림돌이 있었으니 일본이 동남아시아 일대를 중심으로 엔화 블록을 형성함으로써 불황에서 탈피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은 1997 년 외환위기를 조성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엔화 블록’을 무산시키고 일본의 해외 투자 루트를 거의 완벽하게 차단시켜버렸다.

군사력의 받침 없이는 국제금융과 투자는 되지 않는다는 진리는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다.

노무현 정부 당시 ‘국제금융허브’추진이 한동안 이슈였지만 언감생심, 미국과 한 때 긴장관계에 들어갔던 노무현 정부에게 미국이 금융허브를 허용할 리가 만무하다.

(이 점에 대해 김태규 명리학 196 회 칼럼 ‘동북아 금융허브는 구현될 것인가?’를 참조하시길.)

홍콩은 영국의 아시아권 금융허브였다가 중국이 크면서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고, 싱가폴은 미국의 아시아 금융허브이며 일본 토쿄는 미국이 외환위기를 통해 죽지를 철저히 꺾어놓는 것을 보면서도 무슨 금융허브.

미국은 일본의 엔화 블록 움직임을 무산시키고 나서 일본 내에 잠잘 수밖에  없게 된 돈들을 초 저리로 마음껏 가져다가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에 투자 운용하면서 천문학적 수익을 올렸으니 ‘엔 캐리’가 그것이었다.

(다른 나라가 일본 돈을 가져다 썼다는 소식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는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부진을 면치 못했고, 그러자 ‘서브 프라임’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금융사기극을 통해 마지막 판을 벌렸다.

이 글은 최근의 상황 변화를 논의하기 위함이 아니니 이만 그치고, 미국에 의한 제3차 글로벌리즘이 세계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말하기 위함이다.  

미국에 의한 글로벌리즘이 전 인류에게 커다란 혜택을 준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바로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그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큰 줄기에서는 긍정적이라 하더라도 다양한 문제점들이 제기되고 있고 이는 또 다른 도전이 되고 있다.

먼저 얘기할 것은 1875 년으로부터 72 년이 지난 1947 년에 마샬플랜을 통해 세계적 시장경제화인 글로벌리즘이 상승 모멘텀을 만났다면 그것이 좀 더 확산되고 정착되면서 전 인류에게 혜택을 가져다주는 계기는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2019 년의 일이라는 점이다.

1875 년에서 144 년, 즉 360의 2/5 지점인 2019 년 무렵 분명히 인류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 것이라는 직관이다. 이미 1947 년 탄력을 받으면서 대세가 되었으니 2019 년에 가면 그것이 좀 더 바람직한 형태로 다가올 것이라 추측해본다.  

나는 그 계기가 금년 말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열리게 될 기후협약이 아닌가 생각한다. 기후협약에서 주요 경제국들이 성공적인 합의를 도출할 경우 인류는 새로운 형태의 시장경제와 보다 성숙된 자본주의를 열어갈 수도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 다음 글에서 이야기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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