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가 준비되고 있다. (4)  _  2009.10.1
저번 글에서 정치사회적 실체로서의 맑시즘은 이미 끝이 났고 사상적 영향력으로서의 맑시즘도 조만간 끝이 날 것이라는 얘기를 했다.

이번에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글로벌리즘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분량 상 두 번에 나누어 얘기하고자 한다.

글로벌리즘을 ‘자본주의적 시장경제가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산되는 현상’이라고 일단 정리를 하겠다.

따라서 글로벌리즘은 1995 乙亥(을해)년 WTO 결성으로 미국에 의해 시작된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얘기는 1995 년으로부터 120 년 전인 1875 년에 시작된 글로벌리즘부터 얘기하고자 한다.  

19 세기 말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다른 세계를 마구 침탈해가던 서유럽 나라들은 1873 계유년부터 1895 을미년까지 무려 23 년에 걸친 장기 불황에 들어갔다.

산업화의 선두 주자 영국을 모델로 하여 독일과 프랑스, 나중에는  미국까지도 급격한 산업화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 공업생산품의 공급과잉이 불러온 불황이었다.

시장경제는 언제나 이런 요동을 겪기 마련이다. 누가 돈이 좀 된다 싶으면 여기저기 우후죽순 격으로 사업에 뛰어들기 마련이고, 그것이 지나치면 산업합리화, 즉 구조조정 또는 인수합병을 통해 정리되곤 하는 것이다.

불황이 심화되고 더 이상 투자할 곳이 없어지자 그간에 축적된 돈과 富(부)는 대부분 은행에 예치되었다. 그런데 은행으로서는 그 돈을 대출할 곳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는 예전에 없던 현상이었다. 그 이전에는 대출에 대한 만성적인 초과수요가 기본이었기에 갑자기 돈이 남아돌기 시작하자 은행들은 고민에 빠졌다.

궁리 끝에 짜낸 묘안은 해외 식민지 쪽으로 돈을 흘리는 방법이었다. 바로 자금의 해외수출이었고 이에 따라 그 돈을 보호하기 위한 군사력도 더욱 해외로 나가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영국은행들은 1875 乙亥(을해)년부터 해외 식민지 쪽으로 돈을 유출시키기 시작했던 바, 이는 자본주의가 본격화된 이래 맞이한 최초의 글로벌리즘 현상이었다.

해외자금수출과 군사진출이 영국만의 일이었다면 큰 문제는 없었겠지만 문제는 나머지 강국들도 모두 이 길을 따라갔다는 점이다. 그러자 서구 열강 사이에 식민지 분할을 놓고 더더욱 갈등과 모순의 골이 깊어 갔다.

그러자 독일 통일의 대업을 이룩한 대정치가 비스마르크는 이대로 가다가는 파멸적인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감지하고, 1884 년에 열강들을 베를린에 불러 모았다.

의제는 아프리카를 어떻게 공평무사(?)하게 분할할 것인지를 논의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땅따먹기 경쟁이 그것으로 끝이 날 까닭이 없다. 만사가 그렇듯 한 번 시작된 레이스는 언제나 끝장을 보아야 하는 법.

독일 통일만 해도 이미 기존 세력 판도에 풍파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비스마르크가 실권을 잡고 있는 동안, 유럽은 그런대로 평온무사했지만 문제는 야심찬 젊은 황제 빌헬름 2세가 즉위하면서부터였다.

빌헬름 2세는 영국을 능가하는 대제국을 건설하겠다는 야심에서 1990 년 비스마르크를 실각시키고 대외 확장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것이 결국 자본주의 열강들이 파멸로 가는 돌이킬 수 없는 출발점이 되었다.

한편으론 대영제국이 가진 것이 너무 많았기에 다른 후발 경쟁자들로금 참을 수 없는 질시를 불러일으켰다는 점도 있었다.

영국은 자국 영토의 무려 100 배에 달하는 55 개의 식민지를 전 세계에 걸쳐 가지고 있었고 당시 세계인구가 겨우 20 억에 불과하던 시절 무려 4 억의 인구를 제국 치하에 안고 있었다.

그러니 나머지 국가들, 프랑스나 독일, 러시아 등의 열강들은 눈이 뒤집힐 노릇이었다.

유럽 열강간의 레이스는 결국 제1차 대전과 제2차 대전을 불러왔다.

약간 그 경과를 살피면 1875 년으로부터 30 년-이 30 년은 60 년의 절반이고 언제나 강조하듯이 어떤 변곡점이 된다는 사실-이 지나 1905 년 무렵 그 대 전쟁의 전초전이 벌어졌으니 바로 러일 전쟁이었다.

한반도의 주도권을 잡고자 러시아와 일본이 크게 한 판 붙었던 전쟁이다. 묘한 것은 우리 한반도는 세계적으로 큰 흐름이 변화할 때면 언제나 그 갈등의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러일 전쟁이 그렇고, 6.25 전쟁이 그렇다.

러일 전쟁은 러시아와 일본이 붙은 전쟁이지만 실은 모든 열강들이 그 뒤에 도사리고 있었던 전쟁이었다.

다만 유럽이나 유럽 근처에서 전쟁이 터지면 자칫 모든 열강들이 맞붙는 큰 전쟁이 될 수 있기에 저네들 입장에서 저 멀고 먼 아시아 동쪽 끝에서 전초전을 벌렸던 것이다. 일종의 ‘간을 본’ 전쟁이었다 하겠다.

전쟁에서 패전한 러시아는 엄청난 내부 모순과 갈등으로 혁명의 소용돌이로 휘말려들게 되었다.

이 무렵,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나선 이가 바로 레닌이었다.

1917 년에 발표한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업그레이드된 맑시즘으로서 자본주의에 대해 날렸던 가장 강렬한 카운터 펀치였다.

그런데 앞글에서 얘기했듯이 공산혁명이 전 유럽으로 번져나가리라고 기대했던 그 기대는 무위로 그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후진국인 러시아만 단독으로 사회주의를 채택했으니 이로서 맑시즘은 상승 모멘텀을 상실했다고 얘기했다. 레닌의 펀치는 ‘미스 블로’로 끝이 났다.  

유럽은 세계의 지배자였지만 동시에 그 내부는 민족주의와 자본주의, 식민주의, 공산주의 등으로 엄청난 갈등에 휩싸였고, 그 모든 갈등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채택된 것은 결국 군사적 모험이었다.

그리하여 당시로서는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최후의 전쟁’으로서 제1차 대전이 터졌던 것이다.

그러나 모든 전쟁을 끝내기 전쟁이었던 세계 대전은 결과적으로 한 번으로 끝이 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전쟁의 이름도 ‘제1차’세계대전이 되었다.

궁극적으로 다시 히틀러에 의해 한 번의 전쟁 더 큰 참화를 가져왔던 제2차 대전이 일어나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1875 년 영국에 의해 제1차 글로벌리즘이 시작된 이후 다시 60 년만에 그것의 두 번째 버전이라 할 수 있는 보호무역주의가 원인이었다.

1935 년 乙亥(을해)년 히틀러가 등장하면서 보호무역주의는 본격화되었고 이로 인해 국제연맹은 문을 닫고 말았다.

보호무역주의는 1929 년의 미국 대공황으로 인한 악영향을 차단하기 위한 열강들의 조치였다. 자기 ‘나와바리’를 철저히 보호함으로써 시장을 지키고자 했던 것이고 이것이 결국 제2차 대전의 원인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독일이나 이탈리아는 이렇다 할 식민지나 시장이 없었기에 무언가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으면 영국이나 프랑스와의 장기 레이스에서 이길 수 없다는 점을 통감했던 것이다.

일본 역시 그런 흐름에 편승했고 그리하여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이라는 동맹이 결성된 것이다. 독일은 러시아를 독일의 영구적인 시장이자 석유 공급원으로 만들고자 했고 일본은 만주와 중국, 동남아 자원 지대를 영구적 시장 및 자원 공급 기지로 만들고자 했으니 이른바 ‘대동아 공영권’이었던 것이다.  

이미 가진 자와 이제 가지려고 하는 자간에 싸움이야말로 가장 치열한 법,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사상 가장 처절한 전쟁이었고 참화였다.  

게다가 제 2차 대전을 통해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한 소련마저도 실은 자본주의 체제인지 사회주의 체제인지조차 구분이 잘 가지 않게 되었다.

계급 없는 사회나 무산계급이 통치하는 사회는커녕 스탈린이라는 무자비한 독재자와 관료가 통치하면서 어떤 면에서는 서구의 온건 제국주의 국가들보다 더 제국주의적인 면모를 보였다.  

제2차 대전이 끝나자 서구 열강들은 모조리 몰락했고, 미국과 소련이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그러자 다시 대결 구도가 형성되었다. 당연한 일이다.

소련은 만인 평등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이념을 가지고 미국이 이끄는 시장경제 진영을 흔들고자 했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것은 ‘가짜’였다. 소련 자체가 이미 독재와 관료의 나라였던 것이다.

미국은 이에 맞서 엄청난 물자 원조와 금융 지원을 통해 자신의 ‘나와바리’를 관리했고 또 번영하도록 만들었다.

미국은 폐허가 된 서유럽을 다시 일으켰고, 일본과 절반의 한국을 번영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소련은 엉터리 이념과 무기만을 수출할 수밖에 없었으니 게임의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결국 미소간의 냉전은 미국이 소련의 가장 큰 동맹국인 중국을 시장경제로 끌어들이면서 최종결판이 났다.

이리하여 미소간의 냉전은 1991 년 소련의 붕괴로 막을 내렸고 동시에 1935 년에 시작된 글로벌리즘의 두 번째 버전이자 최악의 버전도 마무리되었다.

전 세계를 사실상 제패한 미국은 이제 야심찬 판세를 짤 수 있다고 여겼고, 이에 1995 년 세계무역기구를 만들고 글로벌리즘의 세 번째 버전을 가동시켰다.

이에 대한 얘기는 다음 글에서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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