陰(음)은 기르고 陽(양)은 풀어라! (하)  _  2009.8.24
먼저 건강법에 대한 예이다.

건강하고 장수하려면 陰(음)에 해당되는 장부는 기르고 陽(양)에 해당되는 장부는 풀어야 한다. 그러면 음에 속하는 장부와 양에 속하는 장부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니 분야에 따른 지식이 필요해진다.

흔히 五臟六腑(오장육부)란 말을 하지만 실은 육장육부이다. 臟은 숨길 藏(장)과 뜻이 통하니 감추는 것은 陰(음)이다. 따라서 육장에 해당되는 것은  음이고 육부는 양이라 보면 된다.

육장은 간과 심, 심포, 비, 폐, 신이다. (여기서 심포를 포함하여 장부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정 관심이 간다면 한의학 책을 보라.)

육장은 그 역량을 강화시켜야 장생할 수 있으니 힘과 체력의 원천이다. 음은 기르는 것이니 반대로 음이 소진되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음은 培養(배양)을 골자로 한다.

얼마 전 김대중 대통령의 직접적 사망원인에 대해 다발성 장기부전이라는 보도가 있었던 바, 이것은 육장의 기운이 소진했다는 말이다. 생명의 원천 에너지가 모두 고갈되었다는 것이다.  

육부는 담, 소장, 삼초, 위, 대장, 방광이다. 이는 잘 풀리고 소통되어야 한다.

담즙 분비가 막히면 병이다. 위 속에서 먹은 것이 내려가지 않으면 병이고 소장의 영양 흡수가 막히면 병이며 대장의 활동이 원활치 않으면 병이다. 삼초나 방광도 마찬가지인 것이니 양은 疏通(소통)을 골자로 한다.

육장이 고갈되면 사망에 이르며 육부가 막히면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육장의 병은 오랜 시간에 걸친 만성 질병인 경우가 많고, 육부의 병은 급성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니 건강장수는 그 반대로만 하면 되는 것임을 알 것이다.

아울러 건강이란 육장육부만 튼튼하고 원활하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그에 따라 관장하는 근육과 피부, 골격이 있어 그에 따라 다시 음과 양을 잘 알아서 기를 것은 기르고 풀 것은 풀어야 한다.

(이 글은 음과 양이라는 대원칙만 얘기하고 있다. 자세히 쓰면 그것으로 새로운 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한의학 하시는 분이 읽는다면 통찰의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또 나아가서 육체와 정신이라는 측면이 있다.  

정신은 양이라 할 수 있으니 생각과 심정, 정서는 막힘이 없어야 하는 것이고, 육체는 음이니 기력을 너무 고갈하면 안 되고 어디까지나 기본은 기르고 또 아끼는 것을 근본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회남자라는 책에 부단히 등장하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러니 집착이 너무 강하거나 너무 애를 쓰면서 안달복달하다 보면 정신의 원활한 흐름이 막히게 되고 그로서 길러야 할 육장은 소진되고 풀어야 할 육부는 폐색된다.  

심기가 소진된 나머지 오는 심장병, 심화가 소통되지 않아 생기는 火病(화병), 모든 기분이 가라앉는 우울증, 오르고 내림이 번갈아드는 조울증, 지나치게 골똘한 나머지 생기는 위장병과 소장병, 또 대장병, 이런 모든 병증은 몸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신의 문제인 것이고 정신이 막히는 데서 생기는 것이다.

정신이 막힘이 없고 부드럽게 풀려있는 사람은 얼굴색도 온화하고 나아가서 성품도 부드럽고 활달하다.

반면 못된 성질은 주변 사람들도 들볶지만 무엇보다도 본인을 괴롭혀서 병을 만들거나 장수에 지장을 초래한다. 남을 미워함이 풀리지 않고 오래가면 무엇보다도 스스로에게 心毒(심독)이 되어 심장병을 얻는다.

그러니 건강 장수를 위해서는 몸의 양생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와 수양도 그에 못하지 않게 중요한 것이다.

이상 건강 장수에 음양을 경영하는 법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면 한 가지 예만 더 들고자 한다.

삶을 경영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이다.

얘기에 들어가기 전에 정신과 물질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겠다.

정신을 더 중시한다? 틀렸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하나의 도그마(dogma)일 뿐이다.  

물질을 더 중시한다? 틀렸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 역시 도그마.  

정신적 행복만을 중시하는 자는 물질을 경시한 죄로 역경을 겪을 것이다.  노골적으로 말해서 천원 지폐 한 장에 우는 날이 있다는 얘기이다.

물질을 훨씬 중시하는 자는 정신을 경시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줄여 말하면 아무리 많이 벌어도 한없이 배고픈 餓鬼(아귀)의 고통을 겪어야 할 것이다.

내 말은 둘 다 동등하게 없어선 안 될 것이라는 점이니, 이것이 바로 陰陽觀(음양관)이다.

삶에 있어서 정신은 陽(양)이고 물질은 陰(음)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삶을 제대로 경영할 수 있기에 먼저 이런 얘기를 했다.

그러니 음인 물질은 열심히 길러야 한다. 돈과 재산은 물질의 상징이니 많이 버는 것도 좋지만 세상은 치열한 경쟁이라 쉽지 않다. 그보다는 한도를 정하여 열심히 아끼고 저축하는 것이 잘 살 수 있는 첩경이 된다.

남들 쓴다고 나도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한다면 남들 과로하고 무리하면 나도 그렇게 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지 않은가!

반대로 정신은 양이니 열심히 풀어야 한다.  

그런데 오해가 하나 있다. 정신을 풀기 위해선 물질을 소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

영화 한 편을 보느라 오고가고 밥 먹고 입장료 내고 몇 만원 쓰게 되지만 정신적 위로와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하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물질과 정신이 서로 상반되는 경우도 있지만 무조건 항상 그렇다고 여긴다면 틀린 생각이다.

모든 성현의 가르침들이 욕망의 자제를 강조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이 대목이 엄중하고도 중요하다.

욕망을 무조건 자제함도 병의 원인이 되지만, 그렇다고 욕망을 맘껏 풀어헤쳐 놓으면 그 욕망은 잡초처럼 무한대로 자라서 황량한 벌판을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황량하고 무성한 풀밭으로 바람 길이 막혀버리면 우리의 정신은 숨통을 틀 수 없다. 거기에 습기라도 서리면 그것은 유독한 가스가 되어 정신은 커다란 해독을 입게 된다.

욕망은 그런 것이니 자칫 정신을 풀어놓기 보다는 閉塞(폐색)시켜 버린다.

따라서 욕망을 관리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의 정신에 바람이 통하게 하여 자유롭게 풀어놓는 방법이 된다.

냉수를 전혀 마시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덥고 갈증이 날 때 거꾸로 더운 물을 권하는 이치가 그것이다.  

더운 물을 마시는 것 속에 욕망의 자제를 통해 정신을 解放(해방)하는 이치가 담겨 있다. 간단한 일상사속에 삶의 오묘함이 있는 셈이다.

이 이치를 알면 물질과 욕망이 무조건 상반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며, 나아가서 음인 물질을 아끼고 저축함이 양인 정신을 해방하고 푸는데 아무 지장이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옛 선비들은 검약을 기본으로 했어도 정신은 구애됨이 없고 자유로웠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엄밀히 말하면 욕망은 그 자체로서 물질적이다. 그러니 음에 속한다. 돈을 쓰고 욕망을 채우는 것은 이 물질을 써서 저 물질을 채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물질에 대비되는 陽(양)의 부분인 정신은 욕망을 어느 정도 자제함으로서 더 크게 풀리고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莊子(장자)가 말한 것은 자유로운 정신의 경계이고, 공자가 말했던 仁(인)도  정신의 구속이 아니라 해방인 것이다.

陰(음)인 물질을 아끼고 저축하면서도 陽(양)인 정신이 자유롭고 구속이 없는 자는 물질을 반드시 아끼기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 결과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크게 베풀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잘 사는 것이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삶을 잘 경영하는 것이다.

저축이 그저 인색이라는 생각은 음양을 구분하지 못한 결과 핑계인 셈이다.

열심히 저축해서 잘 살면서 크게 베풀기도 하는 사람은 한결같이 삶의 경영에 성공한 사람이다.

‘음은 기르고 양은 풀라’는 원리에 대해 사실 한도 없이 예를 들 수 있겠지만, 그러면 운치가 없을 수도 잇을 것이다. 나머지는 각자가 살아가면서 통하고 깨우치는 재미를 맛보는 것도 좋으리라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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