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德(도덕)과 돈, 권력, 이 三者(삼자)간의 오랜 갈등에 대하여, 제3회  _  2009.5.7
근대시민혁명이 가져온 결과를 노골적으로 정리하면 돈은 자유를 얻었고 권력은 제약을 받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 이전 신분제 사회나 봉건사회에서 권력은 영원했고 돈은 제약을 받던 것이 뒤바뀐 것이다.

물론 근대시민혁명의 더 근본적 의미는 人權(인권)일 것이다.

통치를 받는 사람에게 군주나 권력자가 마음대로 죽이고 살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하늘로부터 어떤 권리를 받아서 태어났다는 주장, 이른바 天賦人權說(천부인권설)을 통해 하나의 독립된 법적 지위를 보장했다는 것이다.

모든 개인에 대한 법적 지위의 보장은 결국 통치 권력의 절대성을 해체시켜버렸다.  

그리고 개인의 지위에 대한 법적 보장이란 두 가지로 나뉜다.

개인이 자유롭게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권리로서 이를 自由(자유)라고 한다.

또 하나는 아무런 이유 없이 억울하게 자신의 노동력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는 권리이니 이를 平等(평등)이라 한다.  

정리하면 ‘자유’란 개인의 자유로운 판단으로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공격적  권리이고 ‘평등’이란 착취를 거부할 수 있는 방어적 권리인 것이다.

수많은 개인의 권리가 있지만 결국 자유와 평등이란 두 가지 권리로 귀속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도덕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고 물을 수 있겠다.

마치 빠져있는 것 같지만, 개인의 법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 내지는 권고가 바로 도덕의 역할이었으니 당시의 自然法(자연법)사상이 바로 그것이다.

자연법이란 문자 그대로 자연적으로 존재하며 타당하다고 상정되는 법이니 규범이고 도덕인 것이다. 여기서 ‘자연적으로 존재’한다는 말은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는 것을 말한다.

왜 이런 골치 아픈 얘기를 하는가?

권력과 돈이란 사실 근본적으로 이익으로서 인간의 이기적 본성에 속한다는 것이고, 도덕이란 그를 조화롭게 하려는 인간의 이성에서 출발한다는 점, 따라서 권력과 돈은 같은 성질의 것이고 도덕은 그에 대립되는 개념이란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바로 이 대목이 장차 생각해보고 따져보려는 것의 핵심이기에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것이다.

1987 년 이후 근 20 년이 넘게 우리 사회를 이끌어온 정치적 동력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아니라, ‘도덕적’ 권력에 대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전의 박정희로 시작된 군부 통치를 가능케 한 배경에는 도덕적 권력보다 우리도 잘 살아보자는 열망이 주를 이뤘다고 여긴다.

우리 국민들은 먼저 ‘먹고 살게 해 달라, 그러면 다스리는 너희들이 독재를 하건 다소 해 먹던 그런 것은 그런대로 인정해 줄 수 있다’는 요구를 앞세운 것이다.

그리고 먹고 사는 문제가 성공적으로 해결되자, 다음 번 요구를 내세웠다.

‘이제 다스리는 너희들도 마음대로 해먹지 말기를, 경제발전에 공이 많은 재벌들의 공로도 인정하지만 통치집단과 짜웅해서 해먹는 것은 용서치 않겠다.’

사실 민주주의란 정치적 개념은 우리 내부로부터 생긴 것이 아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나의 장래, 특히 경제적 장래가 어떻게 되느냐, 돈은 바로 신분상승이니 내가 가져갈 돈을 남이 가져가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먹고 살고 누리는 문제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 국민의 질이 높지 않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공자가 ‘예기’에서 사람의 관심사는 飮食男女(음식남녀)라고 통찰한 이래 변함없는 인간의 본성일 뿐이다.

우리가 한 때 추앙했던 4.19 혁명이 오늘에 이르러 모든 이의 관심 영역으로부터 멀어진 것도 실은 자연스런 일이다.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린 4.19 는 그 이전에 등장한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정치적 구호가 바탕이 되었기에 사람들은 ‘독재를 타도하면 잘 사는 사회가 되지 않겠느냐, 그러니 먹고 살 수 있지 않겠느냐’에 사람들의 관심이 있었지 민주주의 자체는 일부 정치세력을 제외하면 관심의 본질이 아니었다고 하겠다.

그러니 먹고 살게 되었으니 4.19는 잊혀지는 것이 정상인 것이다.

물론 민주주의를 위해 정열을 불태웠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강조해둔다.

다만 특정 정치 집단의 운동에 대중이 가세하는 데에는 언제나 대중의 이익을 반영하는 요소가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평범한 이치를 얘기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5.16 쿠데타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먹고 살게 해 주겠다는 군사정권의 강력한 의지표명과 실천력에 대해 일부 민주운동권을 제외한 대다수 대중이 점수를 주었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이해하면 노무현 정권이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도 쉽게 알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바로 ‘도덕적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그러니 이번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리 사건은 도덕적 권력이란 과연 가능한 것인가를 우리 국민들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보고 있다 하겠다.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킨 힘은 근본적으로 도덕적 권력에 대한 국민적 여망이었지만, 정권을 만든 정치집단 그 자체는 다양한 이념과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도덕적 권력에 대한 국민적 여망을 대표하는 집단으로 ‘노사모’가 있었고 구체적 정치집단으로 386 운동권 세력이 있었다. 이 양자가 정권을 만든 것이라 하겠다.

그러니 현재의 노무현 사건에 대해 가장 힘들어하고 허탈해 할 사람들은 아마도 ‘노사모’에 속했던 평범한 시민들일 것으로 나는 느낀다.

우선은 그래도 지지와 성원의 몸짓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그것은 사실 사람이 자신의 지난 날 옳았다고 믿고 행동했던 것 자체, 그러니까 그것은 그들 삶의 일부였기에 바로 부정하기는 어려운 법이라 그렇다 여긴다.

그러니 역시 가장 괴롭고 가슴 아파할 사람들은 노사모 회원들일 것이다. 노무현을 통해 정당하고도 도덕적인 권력이 지배하는 바른 사회를 꿈꾸었던 그들이기에.

얼마 전 늦은 밤 귀가 길에 택시 안에서 40 대 가령의 기사 양반이 노무현을 무진장 욕하고 있었다.

“개시키, 얼마나 믿고 기대했는데, 첫 사랑이 실패했을 때의 아픔보다 더 아픈 내 심정을 아시오? 적게 먹었다지만 먹은 것은 먹은 것, 아이 짜증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들어주기만 했다. 그럴 때 ‘세상 다 그런 거 아니겠소’ 라고 늙은이의 냉소로 대할 수는 없었다.

정리하면 1964 년부터 우리 정치를 이끌어 온 힘은 먼저 물질적 기초에 대한 요구였고 다음으로 도덕적 권력에 대한 열망이었다 하겠다.

민주주의? 그것은 도덕적 권력을 가능케 하는 최소한의 것일 뿐 도덕적 권력은 아닌 것이다.

생각은 점점 진지해지고, 사색이 깊어가고 있다. 잠시 초여름 빛이 가득한 창밖을 살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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