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I와 영화--영화 시리즈 제2회  _  2009.5.5
‘CGI’라고 하는 기술은 영화의 스케일, 특히 액션이나 전쟁 영화에서 중요한 볼거리 요소, 소위 ‘스펙타클’을 가일층 발전시켰다. 영화 화면을 壯大(장대)한 볼거리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게 좀 오래 되다보니 약간 식상하게 만든다.

기억으로 이 기술의 위력을 실감하게 만든 최초의 영화는 1996 년 무렵의 ‘인디펜던스 데이’가 아니었나 싶다.

영화에서 F-18 호넷 전투기가 수백대, 한마디로 하루살이처럼 하늘을 뒤덮는 장면이 나왔다. “우와-, 저럴 수가, 야, 아들 정말 대단하다 그지?” 같이 보던 ‘아들’이란 호칭의 친구에게 동의를 구했고 그 친구도 동감했다.

젊은 친구 역시 늙은 친구의 감화를 많이 받은 탓에 현실적으로 F-18 과 같은 고가의 전투기가 동시에 같은 하늘에 수백대 출격하는 일은 오늘날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즐겁게 영화를 보았고 감명을 받았지만, 아니 글쎄 이런 거대한 장관이 그 뒤로 나오는 영화마다 반복이 되는 것이 아닌가.

급기야 ‘트로이’란 영화에서 그리스 함대가 수천 척 바다를 메우는 장면, 딱정벌레와 같은 그리스 중무장 보병이 트로이 해변을 가득 덮는 장면에 이르자 나는 그만 吐(토)를 참을 수 없었다.

'뭐야 이거 XX-', 브래드 피트야 여성들에게나 꽃남, 나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CGI에 대해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미리 다 본 것이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4 년부터 책을 접한 뒤 광팬이었던지라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얘기 자체에 감읍했다. 다소 애니메이션이 싫었지만 애써 눈감아주었다. 그러나  트로이에 와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집에 가서도 계속 열을 받자, 젊은 친구가 진정시켰다.
“아빠, 렌더링이 후져서 그런 거야.”
더 열을 받게 했다. 불난 집에 부채질, 더 성질을 부렸다.
“렌더링 뿌러지는 소리 하네, 개시키들.”
“앞으로 CGI 하는 영화 나오면 돈을 줄 테니 네가 미리 보고 아빠에게 보고해. 알았냐!”

문제는 이런 것이었다. 분명 壯觀(장관)이 펼쳐지건만 정작 느낌상으로 장관  같지가 않다는 점이다.

급기야 텔레비전의 사극 드라마에서도 CGI 가 일반화되어 나를 고문했고 나는 끄거나 돌리거나 하는 방식으로 저항했다.

그러면서 이런 농담도 아들에게 했다.

“야, 지원아. 어쩌구 저쩌구 해서 한미간 전쟁이 벌어지고 말이지, 그 바람에 태평양 상에 미국 초대형 항공모함을 한 2백 척 정도 띄우고 우리 장보고 잠수함 역시 5 백척 정도 보내가지고 치고받는 장면을 만들면 죽일라나? 크루즈 미사일 대략 5 만발 정도 나르고, 유도어뢰 1만발 정도 물속을 달리고 그러면 어떨까? 컴퓨터 몇 대 정도 돌려야 그런 장면 만들 수 있니? 견적 좀 빼 봐 응. 리얼리티 사그리 개무시하는 거지 뭐. 제목은 ‘킬 리얼리티’ 어때?”  

그랬다. CGI 란 놈이 등장해서 오히려 리얼리티를 망가뜨렸다.

가령 10 만의 양군이 마주쳐 일대 회전을 한다고 하자. 예전 같으면 이런 장면을 위해 그만큼의 엑스트라를 동원할 수 없었기에 연출기법이 대단히 중요했다.

위에서 아래를 보는 장면은 엑스트라가 많아야 하기에 주로 밑에서 위를 비스듬히 보는 장면으로 채운다든지, 불을 여기 저기 피우고 검은 연기로 화면을 어느 정도 메운다든지 아니면 주인공을 클로즈업한다든지 여러 기법이 고안되었다.

그리고 엑스트라 5 백 명만 동원되어도 연인원 수십만명이 몇 년에 걸쳐 수 억 달러를 들여 제작한 일대 스펙타클, 이런 식의 요란스런 홍보가 뒤따랐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동원 엑스트라가 화면을 그득 메우지 않아도 우리 머리 속에서는 가득 찬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왕 돈을 낸 거, 상상력을 발휘하여 스펙타클한 장면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이는 영화를 연출한 사람의 기법과 노력을 관객이 인정하고 나머지 미흡한 부분을 채워주는 공동의 작업이고 즐김이다.

옛날 미국 대공황 당시 실업자들을 마구 데려다 찍은 헐리우드 전성기의 영화를 제외하면 사실 스펙타클은 상상력을 통한 관객들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CGI 가 나오면서 ‘오버질’을 하기 시작했다. 앞서와 같이 F-18 전투기가 50 대만 하늘에 떠도 황홀한 장면에서 500 대 이상을 보여주니 오버인 것이고 시간이 지나자 리얼리티가 증발해버린 것이다. 렌더링과 같은 기술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바보 멍충이 감독들은 갈수록 더 많은 거대한 장면들을 컴퓨터 엔지니어들을 고용해서 마구 무한대로 보여주는 바람에 우리의 상상력을 해치고 있다.

상상력이란 것은 현실적 제약에서 얻어지는 인간의 소중한 지적 능력이다. 생각해보라 기억해보라, 첫 키스의 추억을. 정작 첫 키스를 얻을 때까지 우리는 얼마나 수많은 첫 키스 장면을 그려보고 지우고를 반복했던가 말이다.

물론 CGI 는 많은 기여를 했다. 거대한 산이 폭발하는 장면이나 뉴욕 시가 해일에 잠기는 장면, 지구가 혜성과의 충돌로 폭발하는 장면, 이 모두 기술의 개가이고 수많은 관객들을 감동과 충격에 빠져들게 했던 것은 분명 기술의 공로이다.

물론 돈 벌기 위해 무슨 짓을 못하리. 그러나 최근 미국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갈수록 재미가 없어져가는 것의 일부 원인으로 CGI 기술의 남발과 남용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나는 ‘블록버스터’라는 개념 자체가 영화를 힘들게 하는 원흉이라 본다. 이는 돈 넣고 돈 먹기 식에 지나지 않는다. ‘놈놈놈’이 무려 수백만명이 관람하고도 적자 운운하게 만든 배경에는 블록버스터 식의 안일한 제작방식이 자리하고 있다고 본다.

누구는 극장체인이 다 가져가기에 창작자는 남는 것이 없다 하고 누구는 스타 시스템이 문제라고 궁색한 변호를 하지만 가소로운 얘기, 다 알고 있는 사실이고 제작은 그것을 감안해서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핵심은 블록버스터 한 방으로 다 해결하겠다는 생각이 문제인 것이다.

잠깐 얘기가 주제에서 벗어났지만, 아무튼 CGI의 범람은 관객들의 영화적 상상력을 좀 먹게 한다는 말이 그리 틀린 것은 아니라 하겠다.

이에 ‘대안 없이 비판만 해대지 말고 좀 방법을 가르쳐주시지 그래!’ 하고 물어올 수도 있겠다.

그러면 ‘소비자가 왕’인 세상에서 호호당은 교활(?)하게 이런 답을 할 것이다.

‘나는 관객일 뿐,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당신들이 알아서 고민할 문제, 안 그런가요?’

물론 그렇다고 영화를 좋아하는 호호당이 고민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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