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天王(사천왕)에 대하여  _  2009.10.8
대문 사진을 바꿨다. 15 일 간격의 24 절기에 맞추어 하는 작업이다.

이번 사진은 사천왕 또는 사대천왕 중에서 두 분이다. 비파를 들고 있는 분은 多聞天(다문천)이시고, 검을 들고 있는 분은 持國天(지국천)이시다.

그래서 사천왕에 대해 약간의 상식을 알려드릴까 한다.

절에 가보면 입구에 기둥이 좌우에 하나씩만 있는 一柱門(일주문)을 지나 대웅전에 이르는 사이에 천왕문이 위치하고 있다. 정식으로 하면 일주문을 지나 금강역사가 있는 금강문 다음에 천왕문, 다시 不二門(불이문)의 세 대문을 지나야 본당이다.

천왕문은 일주문과는 달리 그 안에 공간이 있어 좌우 양편에 사천왕이 모셔져 있다.

불교에는 33 天(천) 사상이란 것이 있다.

가장 밑에 欲界(욕계), 그 위에 色界(색계), 다시 그 위에 無色界(무색계)로 나뉜다.

욕계는 밑에서부터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 그리고 인간 세계가 있고 그 위에 욕계 6천이 있는바 그 순서는 밑에서부터 다시 사천왕천,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자재천, 타화자재천이 있다.

그 중에서 사천왕천과 도리천(달리 제석천이라 한다)은 수미산의 지면에 붙어있기에 地居天(지거천)이라 하고 그 위부터는 수미산 허공에 있어서 空居天(공거천)이라 한다.

그리고 수미산 중턱에 있는 사천왕천의 주재자들이 바로 사천왕들이다. 신성한 영역의 입구를 지키는 분들이다.

그러니 여러 분이 절에 가시면 만나게 되는 ‘일주문’은 수미산 입구인 셈이고, 천왕문을 지나면서부터 욕계 6천의 높고 신성한 영역으로 올라서는 셈이 된다. 그 이상의 색계나 무색계는 꿈도 꾸지 마시고.

보통 귀신이나 마귀는 일주문 입구부터 겁이 나서 돌아서지만 호기심이 발동해서 천왕문 안으로 들어왔다가는 아주 작살이 난다.

사천왕은 원래 인도의 신들인 것을 부처님에게 귀의했다는 명목으로 불교에서 임무를 주고 있는 것이다.

이 네 분을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장군의 모습으로 변모시킨 것은 중국 불교였다.

네 분을 설명하면 먼저 북쪽을 지키는 분이 사진에 나와 있는 비파를 든 다문천이다. 多聞(다문)이란 널리 듣는다는 뜻이니 세상의 여러 일들과 고통을 들어주시는 분이라는 의미이다. 듣고서 비파를 한 번 튕기면 法悅(법열), 진리의 기쁨이 온 세상에 퍼져 일체의 분쟁과 고통이 해소된다.

다음으로 동쪽을 지키는 분이 사진에서 검을 들고 있는 持國天王(지국천왕)이다. 나라를 지킨다는 뜻이니 이는 중국 대승불교의 護國思想(호국사상)을 상징하고 있기도 하다. ‘백수건달’이란 단어에서 건달은 간다르바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간다르바는 바로 지국천왕의 꼬봉이다.

그 다음으로 사진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남쪽을 지키는 분이 있으니 增長天王(증장천왕)이다. 늘리고 기른다는 뜻이니 이 양반은 만물을 소생시키겠다는 서원을 세운 분이다.

龍(용)을 움켜쥐고 있는데, 용은 물의 상징이니 만물을 소생시키는 단비를 상징하고 있다. 뜨거운 여름날에 내리는 비의 상징이니 관세음보살과 사상적 맥이 닿아있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서쪽을 지키는 분은 廣目天王(광목천왕)이다. 보는 눈이 넓다, wide eye 란 의미이다. 이 양반의 시선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없다.

눈을 무섭게 뜨고 있어 ‘넌 내 눈을 속일 수 없어’ 하는 식이지만 실은 반성을 하고 잘못을 뉘우치면 자애로운 양반으로 둔갑하다. 거짓말 하면 즉각 응징하겠다는 의미의 ‘삼지창’과 보탑을 들고 계시다.

이상으로 사천왕에 대한 얘기를 마친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33 천이 공상이 아니라 실제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장 밑바닥에 있는 지옥과 축생, 아귀, 아수라, 인간계는 바로 우리가 매일 눈앞에 대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와 사연들로 고통 받는 사람들, 같은 현실의 공간 속에 존재하지만 그들은 사실 지옥계에 있다. 그저 자기만 잘 살겠다고 아등바등 거리는 사람들은 바로 축생과 아귀계의 사람들이고, 또 이 세상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사람들도 있으니 아수라계이며 나머지는 그저 인간계이다.

실은 우리들이 매일 겪는 내면의 세계만 해도 지옥과 축생, 아귀, 아수라, 인간계를 한꺼번에 포함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은 아귀, 내일은 지옥,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니 욕계 6천도 존재하는 것이다. 절문에 들어서기만 해도 신성한 세계이고 교당에 들어서도 신성의 영역이다. 또 우리가 기도를 하는 그 순간 즉시 신성의 세계로 들어선다.

같은 공간을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우리들은 매 순간 다른 세계를 오르내리는 것이다. 그러니 33 천은 실재의 세계라 여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그런 느낌이다.

그러니 이제 대문 사진을 갈았으니 이 블로그에 들어오시는 분들은 모두 사천왕이 지키는 수미산 중턱에 들어서시는 것이고, 신성한 영역으로 들어오시는 것이라 해도 좋다. (감히 이런 말을 해도 될라나 싶긴 하지만.)

어릴 적 동래 범어사에 할머니를 따라갔다가 사천왕상을 보고 질려서 꿈에 가위눌렸던 추억이 난다.

어린 나에게 절에서 피우는 향냄새도 이상했고, 사천왕상은 정말이지 무섭고 싫었다. 게다가 대법당에 모셔진 세 분의 모습, 눈을 지그시 내리깔고 잔뜩 겁만 주니 좋을 리 없었다.

착한 어린이 되기가 엄청 버겁던 개구쟁이 시절, 여러 부처님들과 보살님들, 사천왕님들, 근육으로 몸을 두른 금강역사들, 인상 험하던 까까머리 스님들은 솔직히 말해 ‘노 땡큐’였지만 절에서 나올 때면 스님이 보자기에 싸주시던 그 놈의 油菓(유과) 때문에 절에 따라가곤 했다.

유과는 지금도 내가 가장 즐기는 음식이다. 이번 추석에 실컷 먹으면서 이 흔한 유과가 당시에는 귀한 음식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믿어지지 않았다. 아직 남아있으니 오늘 저녁에도 먹어야쥐,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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