變(변)과 革(혁)은 常道(상도)가 아니다.  _  2009.10.11
오늘날의 사람들은 ‘변화’라고 하면 부정적 인상보다 긍정적 생각을 더 많이 한다. 게다가 革新(혁신)이라 하면 더 근원적으로 좋아지는 변화라는 선입견을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다. 우리 한국인들은 그 정도가 상당히 심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인류의 문명사 전체를 놓고 보면, ‘변’이나 ‘혁’은 기본적으로 무척 금기시되던 생각이었다. 인류 문명사를 대략 1만년이라 할 때, 변이나 혁이 좋은 것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겨우 200 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변이나 혁은 상당히 불안하고 재수 없는 말이었다. 동양은 물론이고 서양도 그랬었다. 변이나 혁이 좋은 것으로 수용된 것은 한마디로 서구 계몽사상 때문이다.

1700 년대 초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대두된 ‘계몽주의’, 이른바 인습과 편견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사상적 흐름은 근본적으로 기독교적 세계관과  질서로부터의 탈피였다.  

계몽주의는 1800 년대 들어 서구에서 세상을 변혁하는 메인 스트림으로 자리 잡았고, 과학과 기술을 통해 얻어진 놀라운 군사력의 발전은 서구가 세계를 지배하는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여타 문명세계의 사람들은 이른바 洋式(양식)이라 하면 무조건 좋고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야 했고 또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양식하면 근대식이었고, 근대화는 바로 ‘양식화’인 세상이 되었다.

분명히 洋式化(양식화)-이를 일반적으로 서구식 근대화라 한다-가 가져다 준 이득은 대단히 컸다. 사실이다.

너무나도 압도적이고 인상적이었기에 양식화가 내포한 엄청난 폐단에 대해서는 아예 盲目(맹목)이 되어버렸다. 멀쩡히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가 되어버린 것이다.

오랫동안 나름의 고도로 발달된 문명세계를 구축함으로써 자존심과 자긍심을 지녀왔던 동아시아 세계는 양식화에 대해 여타 어느 문명권보다 극심한 수용과 갈등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수용 쪽이 더 대세였던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동아시아 사람들은 청맹과니이긴 하지만, 이따금씩 간간히 시력이 회복되기도 하는 ‘준’청맹과니로 지내왔다는 것이고, 여전히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세계제국 미국이 가져다준 경제적 물질적 혜택이 워낙 컸던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자본주의적 시장질서와 경제성장에 대한 엄청난 집착-내가 GDPism 이라 부르는-은 우리 생활의 모든 방면에 걸쳐 변과 혁을 일상화시키고 있다.

한 때 ‘칼 맑스’에게 있어 종교가 인민의 아편으로 느껴졌듯이, 내게는 변과 혁이 오늘날 사람들의 ‘뽕’이 되었다고 여긴다.

실생활에 있어 변과 혁은 뭐든지 바꾸고 버림으로써 구현된다.

특히 석유화학 공업의 발전은 오늘날 사람들로 하여금 쓰던 생활용품을 못 쓰게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싫증이 나서 버리게끔 만들어놓았다.

GDPism 에 대한 집착은 소비하지 않으면 경제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철저하게 각인시켜 놓았기에, 쓰다가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버리도록 만들어놓았다.

‘변덕스런 당신이야말로 멋쟁이, 언제든지 버리시고 얼마든지 버리세요, 그럼 존경할께요’식이다. 소비도 아닌 ‘버림’을 미덕으로 만들어놓은 것이 성장주의였던 셈이다.

‘올해의 유행, 또는 최신 유행’이란 개념을 만들어 유포시키고 각인시켜놓은 다음, 따르지 않는 자가 있을 것 같으면 센스 없고 둔한 자로 假借(가차)없이 내몰아버린다.

버림을 통한 소비, 소비를 통한 성장주의의 제일선 첨병으로서 ‘디자인’이란 것이 활개를 치고 있다.

‘그거 디자인이 틀렸네’ 하면 버리라는 주문이다. 물론 좋은 디자인은 순간적으로만 존재하도록 만들어놓았기에 오늘 시점에서 당신이 좋은 디자인의 옷을 걸쳤다 할지라도 내일이면 어느새 구닥다리 디자인이 된다. 그러니 버려야 한다.

디자인 감각이 없는 사람은 沒(몰)센스한 사람이고, 멋 좀 부리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디자인 감각이 없다는 말은 ‘준’사형선고인 세상이다.

옷만 아니라 내구성 소비재도 마찬가지여서 자동차 심지어는 주택도 디자인이 낡았다 하면 버려야 하고 버리게끔 만든 것이 오늘날의 소비 세상이다.

디자인은 그 자체로서 변고 혁을 강요하고 강제하고 있다.

서구 계몽주의에서 시작된 변과 혁의 흐름은 어쩌다보니 오늘에 이르러 정치와 경제, 문화 등등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흐름이고 힘이 되었다.

결혼 생활마저도 변과 혁이 강제적 배경으로 작용되다보니 툭하면 헤어지고 새 사람 만나는 흐름, 아니면 아예 결혼을 포기하고 소위 쿨(cool)하게 즐기는 하룻밤 사랑, 원나잇스탠드가 멋진 생활로 인식되고 있을 정도이다.

미국 드라마 ‘섹스 앤 시티’는 그런 변과 혁의 초 절정 패턴을 화려하게 과시하고 있지 않은가.

부담이 없는 생활, 조금 쓰다가 그리고 조금 지내다가 아니다 싶으면 버리고 바꾸는 생활은 바로 변과 혁이 고정관념으로 자리했기 때문이라 말하면 지나친 말이고 틀린 말이라 할 수 있을까!

특히 핸드폰 수출이 주요 경제 항목이 된 우리나라는 핸드폰 교체를 생활화시키고, 그를 촉진하기 위해 부단히 게임과 콘텐츠를 변경탑재시키고 있다.

핸드폰만 아니라, 모든 소비재를 바꾸게 하고 버리게 하기 위해, 심지어는 길을 가다가 자신과 같은 디자인의 옷이나 물건을 들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 즉시 불행해지도록 만들어놓았다.

술자리 대화에서 약간 먹물 티를 내면서 ‘이 미친 자본주의, 천박한 자본주의’라고 침을 튀기면서 맹비판하는 상대가 바로 그 천박하고 미친 자본주의자들이 기대하고 고대하는 생활양식을 충실하고도 씩씩하게 이행하고 있음을 발견할 때가 어디 한 두 번인가!

어, 핸드폰 바꿨네?
예, 디자인이 좀 그래서요.
어, 이탈리아를 들려왔다고?
예, 물건을 오래 사용하는 본바닥의 정신을 좀 살펴보고파서요. (비행기타고 오존 엄청 파괴했다.)
그래, 차를 바꾸겠다고?
예, 4 년 정도 타니까 도색이 가더라고요. 칠을 다시 할까 고민하다가 아예 몇 푼 더 들여서 이 기회에 새 차로 교체...

실로 허무개그가 아닐 수 없다.

그저 바꾼다, 바꾸려면 버려야 한다. 그냥 바꾸는 것도 아니고 확-개비한다. 소비 방면에서 주로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면, 정치 방면에서 주로 하는 말은 이렇다.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변화하는 자만이 발전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모양 이 꼴인 것은 기득권 층 때문이니 철저히 개혁해야 합니다.’

전국 어디를 가도 국도가 늘 새롭게 포장되고 있고, 서울시 전역은 중앙차선 공사가 한창이다. 솔직히 말해 4대강 살리기도 그것인 과연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그 역시 뭔가 바꾸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디를 가도 재개발이고, 재포장이고 재설계. 토목공사 없이 유지가 안 되는 것 사실이고 그것 없이는 GDP 숫자를 만들 수 없으니 당연히 바꿔야 한다. 모두들 그 흐름에 충실히 동참하고 있으면서 핑계는 ‘맹박이’ 때문이다.

맹박이 때문이 아니라 변과 혁은 우리 생활에 있어 ‘디폴트’ 값이 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철마다 지난 철의 옷이 후져서 코트 바꾸고 무시로 핸드폰 바꾸고 수시로 자동차 바꾸고 아파트 바꾸고 지겹다고 직장 옮기고 학군 때문에 강남으로 이사하고 심지어는 마누라나 남편 바꾸고 한국이 지겹다고 외국으로 떠돈다.  

바꾸려면 버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그러니 열심히 아이비리그 대학에 가야하고, 스펙 만들어야 할 것이며, 원어민 발음처럼 영어로 떠들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며, 또 자녀도 그런 식으로 시켜야 할 것이다.

인사청문회 때마다 고위층의 불거지는 문제점들은 그저 우리 사회를 충실히 살아가는 능력 충분한 사람임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변과 혁의 시대를 능동적으로 살아가고 있음이다.

이제 글을 정리하자.

여름철에 냉수 벌컥 마시기보다 더운 물을 천천히 식혀가면서 마시라는 얘기가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순간의 욕망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평안하고 편안하게 살려면 끊임없는 욕망에서 오는 변덕을 부단히 만족시키고 또 조장할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 세월이 오려면 물론 한참을 지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긴 올 것이다. 왜냐, 성장주의와 변혁주의는 모두 한 때의 일인 것이 분명하기에.

변과 혁이 常道(상도)가 아님을 알아차릴 때 비로소 우리는 청맹과니에서 벗어나 눈을 뜨고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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