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을 따라 흐르는 생각들  _  2009.10.8
이제 가을이 늙었고 깊었으니 晩秋(만추)인 것이다.

나무 이파리들은 마르고 윤기를 잃었다, 아직 푸름을 간직하고 있긴 하지만.  대기는 산란하는 빛의 무리들로 더욱 밝고, 숲과 그늘은 빛을 빨아들이면서 더욱 어둑해지니 이것은 분명 늦가을의 정경이다.

늦가을을 그린다면 대기는 밝고 투명하게, 숲 그늘은 아주 어둡게 칠해야 철의 맛을 낼 수 있으리라.

그런 풍경 가운데 한 사람이 거닐고 있다면 밝음과 어둠의 대비를 그림 전체를 털어 가장 강렬하게 해야만 그 실루엣이 살아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 사람이 붉은 상의를 걸쳤다면 빛을 받는 부위는 핑크로, 그림자가 지는 부분은 푸른 기운이 감도는 보라를 칠해야 되리라.

그러나 이것은 서양화의 기법이니 수묵화로 그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묵화에서 허공은 묘사하지 않는다. 오로지 숲의 묘사를 통해서만 허공의 밝고 투명함을 묘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잎사귀는 건조한 갈필로 약간 붓을 비틀어 말라가는 느낌을 주고, 숲의 그늘 역시 물기 적은 붓에 진한 먹을 묻혀 붓을 종이 위에 던지듯이 묘사해야 하리라.

그 가운데 사람이 서 있다면 역시 진하고 건조한 갈필로 그림자를 묘사하고, 밝은 윤곽선은 빠른 붓으로 슬쩍 종이를 스치듯 묘사해야 하겠다. 그리고는 어울리는 畵題(화제)를 찾아야 하리라.

참! 글이란 이상한 구석이 있다. 애초 모니터에 ‘이제 가을이 늙었고 깊었으니 晩秋(만추)인 것이다’란 문장을 박아 넣을 때만 해도 늦가을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쓰고픈 마음 없었다.

그러나 그 다음 줄에 ‘나무 이파리들은 마르고 윤기를 잃었다’라고 쓰는 순간 글은 이미 그림 그리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사실 나는 글을 쓴 것이 아니고 두 장의 그림을 그렸던 셈이다. 그러고 나니 묵은 감각이 속에서 순간 발동한다. 오늘 일진이 뭐지? 하는 생각.

확인해보니 丙戌(병술)이다. 그렇구나! 오늘은 丙火(병화)가 작동하니 그림의 날이고, 거기에 건조한 戌土(술토)가 깔려있으니 마른 붓, 갈필 운운 하면서 마른 그림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은 밝고 그늘은 마르고 어둑한 일진인 것이니 앞에서 그런 얘기를 내가 하고 있구나 싶다. 병술의 기운이 천지에 가득하니 나는 그 기운을 따랐을 뿐이다.

이 글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는 내 속의 의식을 그냥 문장으로 표출하고 있을 뿐이다.

다시 생각이 옮겨간다. 지난 2006 년은 ‘병술’년이었다.

그렇다면 그 해의 분위기 역시 표층은 밝고 속은 마르고 어두웠던 것일까?

그 해 부동산 가격은 마지막 고비를 향해 달렸고, 증시는 위와 아래의 기로에서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열린우리당은 그 해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마르고 어둑해진 국민들의 속 그늘을 읽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알아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

그 해 지방선거는 박근혜의 승리였다. 물론 그 이후 한나라 당 경선에서 지긴 했지만, 다음을 기약하기에 충분한 승리.

다시 오늘 이 시각으로 돌아온다.

창밖을 보니 구름 몇 점 흩어져있는 높은 하늘에는 강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일본 태풍의 영향이리라. 건너 편 시멘트 건물이 마치 고등학교 시절 미술실의 한 구석을 차지하던 네모진 정육면체처럼 명확한 그늘을 만들고 있다.

네모진 정육면체는 그리스 미학과 철학의 아이콘이다.

슈펭글러-서구의 몰락을 쓴 그 사람 말이다-는 그리스 철학이 논리적 明徵性(명징성), ‘clear and distinct’를 강조했던 것은 ‘에게’ 해의 밝은 태양빛이 사물에 드리울 때 생겨나는 뚜렷한 명암 때문이라는 말을 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논리의 세계에도 감성이 얼마든지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양반에게서 배웠다.

슈펭글러는 이어서 독일의 자연 환경은 습지가 많고 안개 자욱하여 불과 십 수 미터 떨어진 저편의 사물도 명징하게 보이지 않으니 당연히 독일 철학 속에는 안개 저편의 존재에 대한 동경이 스며있다고 말했다.

그는 말하길 ‘독일적’ 철학 속에는 그리스 철학에는 존재하지 않는 未知(미지)에 대한 동경과 설렘, 불안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 글을 통해 비로소 나는 게르만의 대 서사시인 ‘니벨룽겐의 반지’에 흐르는 불안하고도 강렬한 로망의 정신을 어렴픗 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독일적 정신과 로마 그리스적 전통간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 아울러 바그너의 작품 속을 관류하는 강렬한 비장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슈펭글러의 글에서 비롯되었다.

슈펭글러의 책을 이해하는데 10 년도 넘게 걸렸다.

무진장 불친절하게 거두절미하고 던져놓는 주제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배경부터 알아야 했기에 수십 권의 서양 철학과 미학, 역사에 관한 것들을 들쑤시고 다녀야 했었다.

세상에! 원 이토록 불친절하게 자신의 생각과 주제를 마구 던져놓고도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을 따라와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이 다시 있을까 싶었다.

모두들 배경에 대해서는 잘 알고 계시지요, 그럼 다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제 얘기를 진행합니다. 아! 잘 모르신다구요? 그럼 할 수 없지요 뭐.

슈펭글러는 이런 식이다.

너무나도 불친절하고 엄청 까칠해서 그만 두고도 싶었지만 꺼내놓는 얘기들이 워낙 매혹적이었기에 책을 던져버리지 못했고 억지로 무진장 공부했다.

읽어나가다 막히면 다시 책방을 뒤지고 국내에 없는 책은 주문해서 읽은 뒤, 다시 예전의 페이지로 돌아가곤 했다. 번역이 이상한 구석이 많아 나중에는 아예 독일 말 원서로 읽었으니 그 바람에 독일어 공부도 엄청 했다. 아, 쓰파, 캐시키.

나도 그 복수를 하고 싶다, 배경 설명 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생각을 말하는 책을 언젠가 쓸 날이 올 것이다.

아무튼 슈펭글러는 나를 많이 성가시게 했고 결과 나의 사부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독일 쪽에서 ‘서구의 몰락’을 쓴 ‘슈펭글러’와 대문호 ‘괴테’, ‘돈의 철학’을 쓴 ‘게오르그 심멜’, 신화학자 ‘하인리히 침머’, ‘순수이성비판’을 쓴 ‘칸트’, 해서 다섯 분의 존경하는 사부를 모셨다.

창밖을 보니 구름이 하늘에 고정되어 있다. 높은 하늘의 기류가 그쳤나 보다.

바람이 그치니 생각도 그쳐야 할 것 같다.

다음에는 친절한 글을 써야지.

여담: 며칠 전 기축통화에 관한 글에서 2019 년 경 새로운 대안이 나올 것이라는 예측을 밝혔는데, 신문을 보니 몇몇 나라들이 그 무렵에 가서 석유를 달러로 사지 못하게 하는 음모를 획책하고 있다는 기사가 있었다. 예정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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