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想念(상념)  _  2009.7.12
굵은 비에 이어 가는 비, 다시 굵은 장대비가 늦은 밤부터 낮을 이어 진종일 내린다.

옛 사람들은 빗방울을 감히 헤어보려는 생각을 했었나 보다. 비가 억수로 내린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억수란 億數(억수)이니 억수같은 비란 엄청나게 많은 비이고 빗방울이니 말이다.

중국에선 장마를 梅雨(매우)라고 한다. 매실이 익어 떨어질 무렵 오는 비란 뜻이다. 제법 정겨운 표현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는 장마를 장맛비라 한다. 보도에서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장마란 길 長(장)에 물이나 비를 뜻하는 우리 말 ‘마’를 합친 말이다. 그러니 장마란 ‘긴 비’라는 말인데 이에 다시 ‘비’를 붙여 장맛비라 하니 뜻은 ‘긴 비비’가 된다. 장맛비가 온다는 말을 들으면 내 귀에는 언제나 ‘긴 비비’로 들린다. 그냥 장마가 옳다고 하면 될 것을.  

비가 올 때 하는 작은 놀이가 있다.

피우던 담배를 끌 때, 창문을 열고 나뭇잎이나 창문 유리에 달린 빗방울에 대어 끄는 놀이이다. 대는 순간 칙-하는 소리를 내며 꺼지는 것이 약간 劇的(극적) 긴장감을 자아낸다. 물론 잎새에는 뜨거운 담배 열이 닿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또 담배를 끌 때 얼굴에 닿는 차가운 빗방울이 시원하기도 하고 늦은 가을비라면 그 차가움이 나를 몸서리치게 하니 그 또한 즐긴다.

그러다가 상상에 빠져들기도 한다. 나뭇잎에 달린 저 작은 빗방울도 표면의  미세한 생명체에겐 큰 바다와도 같으리라는 생각, 이어 나뭇잎 표면에 살던 미세한 생명체라면 바다를 알 턱이 없으니 빗방울이 달리면 이게 웬 물난리냐 하고 난리법석을 떨겠지 하는 생각.

또 나아가서 저 미세한 생명과 이렇게 거대한 생명체인 내가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절대적 경지에서 생명의 가치를 따진다면 동일할까 아니면 역시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

그러다가 아무래도 내가 저 미세한 생명보다는 가치가 있다는 결론을 얻기도 한다. 그런데 가치가 더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만드는 이유가 또한 재미가 있다.

인간인 내가 만물의 영장이라서가 아니라, 단순히 덩치가 크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는 결론을 얻기에 그렇다.

예전에 읽었던 어느 생물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한 다세포 동물의 개개 세포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생명체라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수백억의 개별 생명들이 군집을 이루어 협조하면서 살아간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나라는 존재는 수백억의 세포로 된 생명체이기에 나뭇잎 표면을 맴도는 단세포 생명보다 훨씬 쪽수가 많다는 차원에서 내가 저 나뭇잎의 미미한 생명체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이니 조금 우습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지만 이런 생각들과 공상 역시 비오는 날 빠져드는 생각 놀이이다.

생각에 잠겼다가 문득  젖은 나뭇잎 사이에 몸을 피한 파리 한 마리를 발견한다. 발을 비벼대지도 않고 그저 몸을 웅크리고 있다. 파리도 상념에 빠져있는 것 같다, 공연히 손을 대면 놀랄 것 같아 지켜보기만 한다.

묻는다, 파리야 넌 무슨 생각? 내 질문의 念波(염파)를 느낀 것일까? 잠깐 진저리를 치던 파리는 그만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생각을 방해했다면 미안하네 하고 그만 창문을 닫는다. 상념의 여운이 미처 가시지 않아 자판을 두드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난 비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어린 시절 처마에서 도관을 타고 떨어지는 빗물 웅덩이 속 세상이 너무나도 깨끗하게 보여 우산을 받쳐 들고 그 속을 하염없이 바라다보다 그만 심심하면 그 정갈한 세계를 작대기로 휘저어 흙탕 세계로 만들기도 했다.

그 물웅덩이 세계를 흙탕으로 만들 수 있는 어린 나의 힘은 절대적이고 요즘 말로 자연재해임을 당시에도 의식하고 있었으니 영악한 개구쟁이였던 셈이다.

그러다가 누님이 다가와 ‘이 속에도 나쁜 균이 무지 많다, 너’하며 겁을 줬지만, 투명하고 정갈한 이 빗물 웅덩이 속에는 ‘하지만 좋은 균도 많을 거야’ 하면서 그 협박에 굴하지 않았었다.

초등학교 4학년 가을 무렵, 학교에서 귀가하는 길에 장대비가 퍼붓고 천둥번개가 쳤다. 들고 있던 우산 꼭지로 번개가 내릴 것 같은 두려움에 우산을 던져버리고 비를 쫄딱 맞았던 적이 있다. 지나가던 아저씨가 너 왜 우산을 버리니 하셨다.

나는 속으로 ‘번개가 내 우산 끝에 치면 제 인생 끝이예요’ 하며 대답하길 ‘그냥 저는 이런 소나기를 좋아하거든요’ 하며 호탕하게 헛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새롭다. 물에 흠뻑 젖은 사내아이의 허세였던 것이다.

집에 돌아와 열이 나기 시작했고 사흘 정도 감기로 고생했었다. 나는 감기에 대한 인상이 나쁘지 않다. 감기 들어 열이 나면 그 때부터 어머니의 극진한 간호가 따르고 엄하시던 아버지마저 사근사근한 음성으로 ‘뭘 먹고 싶니?’ 하시니 사실 감기 들면 좋았다.

중년 넘은 이 나이에도 비오는 날 감기 걸려 며칠 앓았던 그 시절의 포근함에 대한 동경이 여전히 아련하고 새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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