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식량창고  _  2009.7.9
최근 케이블 ‘채널 칭’에서 방영하고 있는 ‘충신 유통훈’이란 사극 드라마가 있다. 원제목이 天下糧倉(천하량창)인데 풀이하면 ‘하늘 아래 식량 창고’가 된다.

‘하늘 아래 식량 창고’란 제목이 뜻하는 바는 ‘천하는 바로 만백성이고, 백성은 먹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기에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권력의 정당성은 경제를 잘 운영하는 것에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먹고 사는 것이라는 얘기는 역사 고금을 통해 진실이라 하겠다. 도덕과 윤리, 정당성과 철학, 종교, 그 어느 것이든 먹고 사는 것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이고 그것을 넘어서는 어떤 주장도 사상도 없음을 새삼 새기게 하는 제목이다.

먹고 사는 것은 삶의 기본이요 출발점인 것이다.

드라마 내용은 청나라 전성기를 통치한 건륭제의 통치 첫 해로부터 시작한다. 乾隆(건륭)이란 연호는 주역 팔괘의 으뜸인 乾(건)의 德化(덕화)를 통해 세상을 隆(융), 융성하게 하겠다는 의미이다.

건륭제는 아버지 옹정제의 때 이른 죽음으로 24 세에 황제의 위에 올랐지만 건강하고 총명하여 60 년간 중국을 통치하다가 퇴위한 뒤에도 4년을 더 살다간 군주였다. 공식적 재위 기간은 중국 역사상 두 번째이지만, 퇴위한 뒤 섭정을 하면서 실권을 잡고 있었으니 사실상 가장 장기간 통치했던 인물이다.

왕조의 통치를 보면 군주의 제위 기간이 길면 대개 세상이 평화롭고 번성한다. 재위기간이 길다는 것은 군주의 건강이 좋다는 것이니, 정신 똑 바로 차리고 통치하기에 규율이 잡히고 특정 세력의 농단이 설치지 못하는 까닭이라 하겠다.

우리나라도 조선 영조 임금이 54 년간 통치하면서 국력이 크게 신장될 수 있었다. 다만 임금이 건강해서 오래 통치하면 자식에게 부담이 된다.

사도세자의 예가 그것이다. 태자나 세자가 정해지면 으레 그 쪽에 붙는 무리가 생기기 마련인 데, 임금이 적당히 죽어주지 않고 오래 멀쩡하면 태자나 세자의 무리는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현 임금이 총애하는 신하와 태자나 세자의 신하 사이에 알력이 생겨날 것이고, 그러다보면 사건이 날 수밖에 없다. 아버지와 자식 간이라 하지만, 최고 통치권은 하나이니 그런 것이다.

자식을 죽여야 했던 영조는 그런 면에서 불행한 임금이었다.

최근 영국 왕실도 그렇다. 여왕이 건강해서 아직 물러날 기미가 없으니 찰스 황태자가 왕위에 오른다는 것은 이미 물 건너간 얘기이고, 아마도 손자가 왕위에 오를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영국 왕위는 통치권이 없으니 알력도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이다.

이런 비극은 오늘날 재벌가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되풀이되고 있다.

돌아와서 건륭제 통치 원년이었지만 대단한 가뭄이 들었다.

활달한 건륭제는 곳간을 풀어 백성을 먹여 살리는데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곡창은 겉만 가득하고 속은 빈 엉터리 이중 곡창이 허다했다. 국가의 장부에 기록된 곡식과 실제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이에 강직 청렴한 유통훈이란 대신이 전국을 누비며 부정과 허위 사실을 밝히고 백성들을 부양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내용이 스토리의 골격이다.

여기에 적당히 무협적인 요소와 멜로 드라마적 요소, 성장 소설적 요소가 가미되고 버무려져 맛있는 요리가 되어있다. 그러니 맛있게 먹고 무럭무럭 자랄 밖에.  

황제나 왕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면 관리들은 적당히 부패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 정상이고 자연스럽다.

대신에 권력을 독재하는 왕이나 황제 체제는 대단히 효율적이고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독재 체제도 득과 실이 있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민주체제도 득실이 있는 것이지 무조건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점이 현재까지는 더 있어 보일 뿐이다.

인류의 긴 역사를 볼 때 통치체제의 모범 답안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민주주의란 것이 대세가 된지 이제 겨우 백년도 되지 않은 시범 제도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수백년에 걸쳐 시행착오가 따를 것이고, 다듬어질 것이다. 물론 정 어렵다 싶으면 다시 다른 체제를 찾게 될 것이다.

동아시아의 중국과 조선 등지의 황제나 왕의 전제 체제는 역사상 다른 문화권의 전제 독재에 비해 대단히 우수했고 윤리 도덕적인 면도 강했으니 이는 유교적 德治(덕치)를 이상으로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세상은 서구화가 정답이라는 유행 사조가 지배하고 있어 동아시아의 통치방식을 무조건 지난 세월의 나빴던 것으로 여기지만 그것은 감히 단언하건대 無知(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근 2백년간 서구와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어 그렇게 보일 뿐이지, 긴 안목에서 그것은 또 하나의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의 지배가 언젠가 종식되면 지금의 민주주의 체제도 진정한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라 나는 본다.

그러나 동아시아적 독재나 전제는 반드시 관료의 부패를 일정 부분 동반하기 마련이었다. 그런 데에는 근본적으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관료의 입장에서 권력자에게 잘 보여야만 출세와 영달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실력과 충성을 보이는 것이 정답이지만, 실력이란 것이 추상적이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이어서 그렇고 충성심은 모두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으니 다른 편법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이에 관할지의 곡식 생산량을 허위 보고하여 칭찬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며, 일부 빼돌려서 다른 목적으로 전용하는 일도 생긴다.

흔히 간신이란 말을 하지만 간신 역시 임금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은 충신과 다름이 없다.

또 하나는 관료 사회 자체의 구조 때문이다.

관료 조직에서 출세하려면 당연히 윗 상사에게 잘 보이는 것이 기본이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 다만 무엇으로 잘 보이냐가 중요한 데 이 또한 능력이란 것이 추상적인 보이지 않는 것이니 이른바 아부가 중요한 것이 된다.

아부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몸으로 떼우는 사람도 있겠지만 환심을 사기 위해 금전이나 향응을 제공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기 위해선 봉급만으로는 어렵고 역시 어디선가 생길 구멍이 필요한 것이니 부정부패는 높은 개연성을 지니기 마련이다.

그러니 권력 있는 대신, 다시 말해 임금의 총애를 받는 신하를 중심으로 파당이 생기기 마련이고 끼리끼리 해먹기 마련이다. 끼리끼리 해먹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리이다.

다만 끼리끼리 해먹는 것이 지나치면 욕과 비난을 받는다. 따라서 현명한 무리나 파당은 적당히 안분해서 소수파에게도 자리를 일정 부분 내어준다.

그리고 파벌이나 당파에 속했다고 해도 무조건 거기에만 목을 거는 바보 같은 관료는 없다. 훗날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소수파나 찬밥 무리에게도 인정을 베풀어 대비해야 하는 것은 모두가 아는 상식이다.  

청나라 당시 오늘날 정부 부처의 7급 관리 정도라면 철마다 명절마다 무려 100 여 군데 이상 인사를 해야 했으니 그 돈이 어디서 나왔겠는가! 그래서 나온 것이 寸志(촌지) 문화인 것이다.

출장 갈 때 주는 祝 壯途(축 장도), 부서를 옮길 때 주는 전별금 등등 무수한 봉투가 있었다.

게다가 관료가 다스리는 민간 세상은 시쳇말로 五萬(오만) 잡것이 설쳐대는 곳이니 그들로부터 오만가지 유혹을 받았을 것이고 또 적극적으로 받아먹었을 것이다.

이런 부정부패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고 우리의 경우 여전히 일부는 그대로인 현실이다.

그렇다면 황제나 임금은 수수방관하고 있었겠는가? 백성이 노하면 나라가 흔들리고 혁명이 일어날 소지를 만드는 것이니 관료들의 가렴주구가 너무 심하지 않도록 적절히 견제하고자 했다.  

방법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유교적 도덕이었다. 그래서 청백리를 우선하고 상을 크게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청렴한 관료는 한 편 너그럽지 못하고 인적 관계망이 허술해서 자칫 왕따를 당할 우려라든가 관료들의 동정에 무심한 데가 있어 위험한 면도 있었다. 이에 권력자는 적당히 받아먹을 줄도 알고 정치를 할 줄 아는 노련한 사람을 섞어 쓰면서 통치를 했던 것이다.  

둘째는 권력자 자신이 냉철하게 어느 파벌이 너무 오랫동안 권세를 누리지 못하도록 견제하고 교체시켜가는 방법이었고, 한편으로 암행어사나 비밀경찰을 통해 탐관오리를 적당히 색출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면 대책이 있기 마련이니 비밀경찰이나 암행어사와 잘 지내는 방법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세상은 짜증나지만 언제나 이렇게 돌아간다.

역사 드라마는 끊임없이 이런 얘기들의 연속이다. 하지만 언제나 재미가 있다. 바로 인간의 이야기이고 우리 자신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부정부패와 관련해서 서구에는 이런 사회악이 없다고 여기면 오산이라는 점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나름의 세련된 부정부패의 관계망과 거래 방식이 존재하고 있다.

책을 뒤져보니 유통훈은 건륭제의 名臣(명신)이었다. 죽은 뒤 시호가 文正公(문정공)인 것을 보면 그렇다. 문정은 文臣(문신)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시호인 까닭이다. 청나라 3백년을 전부해서 문정의 시호를 받은 사람은 겨우 여덟 명에 불과하다.  

참고로 시호의 순서를 살펴보면 문정 다음에 文忠(문충), 그리고 文恭(문공), 文成(문성), 文端(문단), 文恪(문각), 文襄(문양) 순이다. 나머지는 최고통치기구인 군기처에서 정할 수 있었지만 문정만은 황제가 직접 정했다. 그러니 문정공의 시호를 받은 유통훈이란 사람의 공적이 실로 대단했던 모양이다.

건륭제는 퇴위하면서 그 아들 ‘유용’에게 재상 자리를 주었으니 유통훈의 공로를 인정한 것이라 하겠다. 유용 역시 학식이 깊고 총명 청렴하였으며, 특히 서예로 일가를 이루었다. 진한 먹을 잘 사용했기에 濃墨宰相(농묵재상)이란 별호까지 얻었다.

창밖은 모처럼 시원한 장맛비로 여름의 정서를 자아내고 있다.

이전페이지로    목록보기            이 글 담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