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書(사서), 쉽게 말해 역사책은 숱한 오류와 날조 그리고 인위적 조작으로 뒤범벅이다. 특히 역사가 오래된 나라의 역사책은 그 정도가 아주 심하다. 그 중에서 대표를 뽑으라면 중국이 단연 으뜸일 것이다.
승자만이 역사를 기록할 수 있었던 까닭도 있겠지만, 정통 이데올로기의 창출과 그 유지에 적극 가담한 지식인층의 역할도 무척 컸다.
그러나 오류와 날조로 가득한 역사책이라고 해서 함부로 무시하거나 부정할 성질의 것도 아니다. 옛 사람들도 그런 폐단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오늘의 우리보다 더 엄격한 면모도 있었다.
단적인 예로, 조선시대 임금들은 자신의 행적에 관해 기록한 史官(사관)의 글을 읽어볼 수 없었다.
그러니 오류와 날조가 있다고 해서 그것들을 섣불리 부정하고, 역사 바로 세우기, 역사 다시 쓰기, 역사 바로 알기와 같은 선정적 구호 아래 섣불리 또 다시 함부로 역사를 바꾸는 일은 그것 자체가 또 다른 날조와 조작의 반복에 지나지 않을 공산이 매우 크다.
그러니 과거의 역사책이 오류와 날조를 담고 있다고 해도 그건 그대로 두고, 연구를 통해 알아낸 새로운 事實(사실)을 바탕으로 수정하고 보완해가는 것이 온당하고 합리적이라 하겠다.
간단히 말해 원문은 그대로 두고 그 아래에 보충해석과 다른 견해를 달아가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오늘은 중국의 역사 조작 또는 날조 중에서 아주 대표적인 사례 한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주제는 禪讓(선양)이다.
사전을 보면 선양이란 ‘권력자나 왕이 그 자리를 어질고 덕이 있는 자에게 넘겨주는 일’이라 되어있다.
권력이 넘어가는 방식은 오늘날 민주제도에서는 선거가 대표적이다. 피를 흘리지 않고 권력이 넘어가는 이 방식은 인류가 이룬 실로 위대한 進步(진보) 중에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과거 중국에서도 피를 흘리지 않고 권력이 넘어가는 방식이 있었다는 것이니 바로 ‘선양’이다.
그 대표적인 예는 아주 오랜 옛날 요 임금이 순에게 자리를 넘겨준 것, 그리고 또 순 임금이 우에게 자리를 넘겨준 일이다.
그래서 堯舜(요순) 시대라 하면 평화롭고 욕심이 없던 시대, 백성들은 제 할 일만 하면서 권력과 정치에 관심이 없어 그저 含哺鼓腹(함포고복), 배불리 먹고 누워서 그 배를 쓰다듬던 이상적인 시대로 생각하게 되었지만, 이런 착각은 역사 조작과 날조의 전형적인 예라 하겠다.
우리 인류가 피를 흘리지 않고 권력을 넘기게 된 것은 요순시대의 일이 아니라 그로부터 수 천 년 뒤 보통선거를 통해 권력이 넘어가는 민주주의가 정착되면서 비로소 일반화된 일이다.
따라서 요가 순에게 권력을 넘긴 것이나 순이 우에게 권력을 넘긴 것은 커다란 전쟁이 없었다는 것일 뿐, 치열한 암투는 물론 유혈이 낭자한 政變(정변) 내지는 쿠데타를 통한 과정이었다.
요가 순에게 권력을 평화롭게 넘겨준 이른바 선양은 기원 전 2300 년 무렵의 일로서 훗날(기원 전 200 년경)의 위대한 역사가 司馬遷(사마천)은 그간의 이런저런 역사 자료와 기록을 수집하여 ‘사기본기’에 그 일을 제법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사마천의 기록은 무려 2000 년이라는 시차가 있는 셈이다.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요순의 태평 시대란 것이 기원전 2300 년 경의 일이라는 점이다. 당시의 나라라고 해봐야 부족연맹체 정도였을 것이고 당시의 세력 범위는 기껏해야 오늘날 중국 山西省(산서성)에 있었던 당시의 중심거점-수도라고 하기엔 좀 그러니-에서 반경 200 킬로미터 정도였다는 점이다.
요가 순에게 또 순이 우에게 권력을 순순히 평화적으로 넘겨주었다는 선양에 관한 神話(신화)가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그 신화를 공식적으로 글로 남긴 이는 유교의 大聖(대성)인 孔子(공자)였다는 사실이다.
공자가 살았던 시대는 춘추시대 말기, 수백의 나라들이 저마다 땅과 이익을 차지하기 위해 부단히 다투던 시대였다. 그러나 오늘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실 그 시대는 기술 발전에 따른 사회 전반의 생산이 급 발전하던 시기였고 이에 따라 신분과 계급의 급격한 변화와 이동이 이루어지던 시대였다.
하지만 당시를 살았던 공자의 눈에는 그 시대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혼란의 시대였던 것이다. 당연한 것이 지금과 같은 경제 정치에 관한 이해가 없던 시절이었으니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이에 공자는 천하의 혼란을 바로잡고 신분질서의 붕괴에 따른 혼란과 반칙, 탈선을 막기 위한 정통성을 복원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하여 공자는 요순시대를 하나의 이상적 통치의 시대로 규정하고 그를 모범으로 하는 안정적 통치 질서의 틀을 제시하고자 했다.
좀 있다가 알게 되겠지만 堯舜(요순)의 시대가 선양이라는 평화적 권력 교체의 시대였다는 것은 비록 공자의 창안이 아니라 하더라도 분명한 역사의 조작이었다.
그런 면에서 공자는 일어났던 일을 기록하는 단순한 年代記(연대기)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어떤 목표와 가치관에 바탕을 두고 그것을 통해 사회를 통합하고자 하는 새로운 歷史(역사)를 창조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목표와 가치관은 통합을 위한 이데올로기였다.
史記(사기)를 남긴 사마천을 두고 중국 역사학의 아버지라 하지만, 그렇다면 공자는 마땅히 중국 역사학의 鼻祖(비조)라 해야 할 것이다.
역사는 이처럼 통치 이데올로기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 탄생한 것이다.
이 점에 대해 현대의 많은 학자들, 특히 서구의 진보적 학자들은 무척이나 비판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통치를 통해 안정을 이룬 사회가 만인에 의한 만인이 투쟁하는 사회보다 훨씬 좋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 또한 지나친 면이 있다고 하겠다.
그러면 堯(요)로부터 권력을 이어받은 舜(순)의 일에 대해서부터 얘기해보자.
사마천의 ‘사기본기’ 중에 五帝本紀(오제본기)를 보면 ‘요가 제위에 오른 지 70 년 만에 舜(순)을 얻었고 순에게 천자의 정치를 대행토록 하고 은거한 지 20 년 만에 순을 하늘에 추천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8 년이 지나 붕어했다’고 적혀있다.
요는 순에게 대행을 시키는 동안 무수한 경로로 순의 자질과 인격을 시험하였고 심지어는 자시의 두 딸을 주어 지근거리에서 확인한 결과 너무나도 훌륭하였기에 마침내 ‘아들에게 자리를 넘겨주면 천하가 손해를 볼 것이니 순에게 넘겨주면 자신의 아들만 손해를 보고 천하는 이익을 얻을 것이라 판단하게 되었다’는 얘기도 적혀있다.
순은 아주 못된 부모님 밑에서도 정성을 다해 섬겼고, 가는 곳마다 열과 성을 다해 백성들을 교화하고 다스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 임금이 돌아가신 뒤, 순은 요 임금의 아들에게 재차 천하를 양보하고 자신은 그 자리를 사양했으나 모든 제후들의 반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순은 이 모두 하늘의 뜻이구나! 하고 천자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사악한 4 대 무리를 변방으로 내치거나 정벌하니 온 천하가 순에게 귀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이런 내용이었다.
순은 요 임금의 정부에 들어와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권력을 장악해갔고, 마침내 요 임금의 두 딸을 아내로 맞아 사위가 되었다. 그런 연후에 자신을 따르는 새로운 16 개의 세력 또는 인물들을 요직에 앉혀 사실상 정권을 장악해버렸다.
이에 뒤늦게 순의 의도를 알아차린 요는 제위를 아들에게 넘겨주지 못하고 이미 권력을 장악한 순에게 제위를 물려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저항하던 요 임금의 4 대 충신들을 모조리 제거해버렸다. 당시 세력이란 그 사람 본인보다는 부족을 뜻하기에 4 대 부족을 멸하거나 해체하여 노예로 삼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4대 충신 중에는 나중에 순 임금으로부터 또 다시 권력을 찬탈한 사람, 그리하여 하 왕조를 창건한 禹(우) 임금이라는 사람의 부친도 들어있었다. (결국 또 다시 복수가 이루어진 셈이다.)
마지막으로 순은 요 임금으로 하여금 늙은 나이에 천하를 순시토록 강제했고, 이에 이미 노쇠하고 병이 든 요는 여행의 피로를 견디지 못하고 도중에 죽고 말았다. 잘 해야 달구지 타고 다니던 시절이라 장기 여행은 엄청난 무리였던 것이다. 30 년에 걸친 권력 찬탈의 과정이었다.
(근거에 대해 자세히 밝히면 좋겠지만, 학술 논문도 아닌지라 그저 충분한 근거가 있다는 사실 정도로 넘어가 주시면 좋겠다. 여러 사서에 그 근거들이 전해져오고 있으며, 특히 이 방면에 명성을 얻은 ‘백양’이라는 중국학자, 자치통감을 새롭게 풀이한 학자가 있으니 그의 책을 참고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순은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홍수를 전문적으로 다스리던 禹(우) 임금의 아버지까지도 죽였다. 그리하여 우가 대신 제방공사 사업을 맡게 되었다.
우 임금은 성은 사이고 이름은 문명이다.
그는 하천가에 살던 부족 출신으로서 그 부족은 제방공사에 상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바람에 홍수를 다스리는 사업에 전 부족이 동원되었다.
아버지가 순에게 죽임을 당했기에 그 아들 ‘사문명’은 무진장 조심하면서 세력을 길렀다.
기록에 보면 우 임금-그러니까 사문명은 13 년 동안 집 앞을 지나면서도 감히 들어가지 못했다고 되어 있는데, 이는 성실해서가 아니라 순 임금의 감시 때문이었다고 해야 한다.
그러면서 세력을 규합하니 어느덧 사문명의 힘이 순 임금의 그것을 넘어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순 임금을 끌어내리고 멀리 변방으로 내쳐 버렸다. 상당한 저항이 있었겠지만 자세한 기록이 없다. 이에 정통 역사기록에는 남쪽으로 순시를 나갔다가 들에서 돌아가셨다고만 되어있다. 결국 순 또한 요 임금과 같은 종말을 맞이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요 임금의 두 딸이자 아내인 여영과 아황은 함께 변방으로 유배되지 않았던 것 같다. 오랜 질곡에서 벗어났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런 이후에도 사문명은 바로 제위에 오르지 않고 무척이나 눈치를 보며 반대 세력을 회유하거나 무마한 지 3 년이 지난 뒤에 권력의 정상에 올랐고, 이로서 우 임금은 자신의 출신지 이름을 따서 夏(하)라고 하는 새 왕조를 창건했다. 그 이전의 왕조는 사실 명칭도 없었는데 처음 왕조의 이름이 생긴 것이다.
처음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니 어쨌든 평화로운 요순시대와 禪讓(선양)에 관한 신화를 공식적으로 남긴 것은 공자였고, 그로서 年代記(연대기)가 아닌 歷史(역사)가 시작되었다.
역사 이전에는 신화가 사회적 통합을 위한 이데올로기였다면 문명의 발달, 특히 농업기술의 현저한 발전에 따른 시대에 들어와서는 역사가 이데올로기 역할을 맡게 되었다.
호호당은 앞에서 요순시대의 선양은 신화 조작이 아니라 역사 조작이라는 말을 했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역사 자체가 어떤 목적을 위한 조작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것이니 그 또한 逆說(역설)이라 하겠다.
그러니 이에 이르면 역사는 부단한 조작과 분식의 과정이라고 해도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니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모두가 虛構(허구)이니 우리가 역사를 拒否(거부)해도 되는 것일까?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문제라 하겠다.
역사 기록의 거의 대부분은 事實(사실)이고 또 어떤 부분은 史實(사실)이며 또 어떤 부분은 심한 날조 또는 조작이다.
그렇기에 역사는 보는 자의 입장과 가치관에 따라 무한히 달리 볼 수도 있고 나아가서 어떤 통치 목적에 따라 새롭게 해석하거나 아니면 아예 만들어낼 여지가 충분히 있다.
그렇기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도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눈으로만 역사를 대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근대 이후 서양 학자들에 의해 역사는 또 다른 관점에서 이해되고 해석되고 있지만 그 역시 또 다른 이데올로기의 색안경일 수도 있다.
공자는 사회 통합과 안정된 질서를 위해 역사를 창조했다. 이를 두고 후세에 와서 공자가 지배계급의 이익에 봉사했다는 식으로 폄하하기도 하지만, 그 역시 계급갈등과 투쟁의 차원에서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역사가 날조되었다 하더라도 조작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지우고 새롭게 쓰는 것보다는 원문은 그냥 두고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인류가 종말을 맞는 날까지 역사와 그 평가는 완결될 수도 없고 또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 역사는 부단히 모든 사람의 當代(당대)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역할을 떠맡았다는 것이 호호당의 생각이다.
역사는 마지막 날까지도 사람들과 대화를 해야 하는 역할을 맡은 이상 오늘의 우리라고 해서 후세 사람들이 역사와 대화하는 길을 차단할 수 있는 권리는 없지 않은가.
우리가 오늘에 와서 대단히 아쉬워하는 것 중에 하나가 과거 우리 선조들이 ‘아니다 싶은 자료와 기록’을 툭 하면 없애고 멸실시켜버렸다는 점이 아닌가 말이다.
승자든 패자든 양쪽의 기록과 자료를 모두 남기고 보존해서 훗날 역사에 반영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인류의 커다란 진보라고 나는 여긴다.
(읽기에 편한 글은 아니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꼭 해두고 싶은 말이었다. 아울러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세월이 좋아졌다는 생각이다.)
이제 놀이터에서 철수해야 할 시간, 창밖을 보니 늦은 밤 시간, 차들이 엉금엉금 기고 있다, 빙판이다. 겨울이 제 맛을 낸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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