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의 합의란 무엇인가?  _  2009.12.13
며칠 전 ‘합의의 문화에 대하여’란 글에서 ‘둘 다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것이 사회적 正義(정의)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과 함께 자신의 생각을 밝혀온 독자가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해 개인적으로 답하는 것보다는 좀 더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블로그에 올린다.  

언제나 그렇지만 예를 들어 얘기하면 쉽다.

당신이 아파트를 사기 위해 집주인과 흥정을 한다고 하자.

당신은 시세보다 조금 더 싸게 사고자 할 것이다. 반대로 팔려는 이는 가급적 시세대로 팔고자 할 것이다, 마음 같아서야 더 비싸게 팔고 싶겠지만.

서로의 괴리가 너무 크면 합의가 되지 않아 거래가 불발로 끝날 것이다.

그러니 성사가 되었다는 것은 나름 그 시점에 있어 50 대 50 의 절충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가령 주인은 5 억을 제시했고 당신은 4 억 8 천을 주장하다가 4 억 9 천에 합의를 하는 것이다.

이런 흥정은 대개 큰 문제없이 끝이 나고, 쌍방 별 불만이 없이 마무리된다. 보통 사람은 대개 이런 정도의 경험밖에 없기에 쌍방 불만이 있는 합의가 최상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천억에 달하는 기업의 인수 합병 건이라 하자.

처음에 장부와 실물을 조사하는 과정부터 철저하게 진행이 될 것이고, 자산 가치를 평가하는 복잡한 일이 진행될 것이다.

그런 연후에 주어진 가치를 놓고 쌍방 치열한 협상이 시작될 것이다.

사는 측에서는 어떤 자산의 시가를 아주 낮게 평가하려 할 것이고, 또 우발 채무나 숨겨진 부실이 없는지를 면밀히 따지고 주장할 것이다.

파는 측에서는 자산의 시가를 최대한 높게 주장하면서 기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가격을 높이려는 행위를 할 것이다.

매 순간 변호사 입회 아래 속기록이 작성되고 합의 사항이 있을 때마다 확인하고 또 확인할 것이다.

그리하여 대충의 윤곽이 나오게 되면 그 때부터 쌍방은 본격적인 가격 흥정에 들어가게 된다.

밀고 당기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협상장에서 철수하는 배짱도 부려가면서 흥정이 진행된다. 그러나 피차 합의를 이루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면 전권을 위임받은 협상 당사자 간에 서로의 카드를 하나씩 공개하고 하나씩 얻고 하나를 양보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리하여 최종 계약 그러니까 합의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면 조인식에 함께 나와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를 받으며 악수를 하며 함께 환한 웃음을 짓는다.

그러나 미소는 여기까지.

실은 쌍방 다 모두 가슴 속에 불만과 억울함이 가득하다. 이 정도로 비싸게 주고 인수를 해야 했나 하는 회한, 너무 싸게 팔았다는 자책감 등으로 양쪽 모두 괴로운 심정으로 그리고 협상 과정에서 조금치도 물러서지 않앗던 지독한 상대방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안고 그 장소를 부랴부랴 떠나게 된다.

쌍방 모두 너무 양보했다는 마음으로 가득하지만, 바로 그것이 그 시점에 있어 최상의 합의인 것이다.

최상의 합의란 그 내용이 최상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궁극적인 정답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2006 년 10월 금호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할 당시 워낙 큰 거래였고 인수가격도 증시 가격보다 워낙 높았기에 말도 무성했지만, 그 시점에서 그 거래는 최상이었던 것이다.

금호그룹은 비싸게 인수했지만 금호 그룹으로서는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던 것이고, 반면 한편에서는 호남 기업에 대한 특혜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지금의 시점에서 금호의 대우건설 인수는 커다란 무리였음이 확연해졌지만, 그것은 지금이고 당시로서는 알 수 없던 일이었다.

민주주의 역시 다수결에 의해 사안을 결정한다. 그리하여 내려진 결정이 과연 궁극적으로 옳은 것인지 정당한 것인지는 사실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개개인의 마음 속에는 각자의 정답이 있겠지만, 그것은 문자 그대로 각자의 정답인 것이고 사회적 정답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내려진 결정이 틀렸다 싶으면 다시 더 나은 방향으로 고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잘못된 결정은 피해를 가져온다. 때로는 엄청난 해악을 초래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민주주의는 똑똑한 독재보다 언제나 떨어진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쳐 독재보다는 다수의 의사에 따라 일을 정하는 것이 더 좋다는 믿음-이 역시 정답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점-이 바로 민주주의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민주주의는 시장과 동일한 면을 지닌다. 일종의 相對主義(상대주의)인 것이다.

시장에서의 가격이 그 시점에서의 정답일 뿐, 영원히 정답이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사고 누군가는 팔고 있는 것이다. 누가 옳았는지는 시간이 흘러봐야 아는 것이고 그 또한 시간이 지나면 또 달라지는 것이 시장 가격이 아닌가.  

다수결로 의안을 결정하는 민주주의 제도, 사고자 하는 이와 팔고자 하는 이간의 자유 흥정을 통해 가격을 결정하는 市場(시장) 제도는 두 시스템 모두  絶代(절대)의 正答(정답)을 알 수 없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같은 것이다.

민주주의와 시장 제도는 언제나 그 게임에 참여하는 모두에게 있어 불만스러운 제도인 것이고, 불만을 쌍방이 함께 나누게 될 때 그 시점에 있어 최상의 결정인 것이다.

그렇기에 민주주의와 시장 제도에서는 참가자들이 부단히 자기 쪽으로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거나 가격을 조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때로는 그것이 혼탁하게 보이는 것이다.

混濁(혼탁)한 세상, 나름 합리적인 세상인 것이다.

중요한 점은 그 혼탁함이 윤리도덕까지는 아니더라도 정해진 법질서의 테두리를 벗어나선 안 된다는 점이고, 그것을 벗어나면 公共(공공)의 敵(적)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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