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공상, 즐거운 코미디  _  2009.9.14
은행원이 대출상담을 하고 있었다.

손님, 혹시 여태껏 위장전입 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솔직하게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손님.

네. (약간 긴장된 톤으로)

손님, 군대를 가고자 했으나 이상하게도 꼬여서 가지 않게 된 적이 있으셨나요?

네. (떨리는 톤으로)

혹시 정부 기업이나 기관에 근무하시고 계시나요?

네. (약간 안정을 찾는 목소리)

혹시 쌀 직불금 비슷한 거 받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 네. (다시 불안정해지는 톤)

자녀분께서 미국 ‘담쟁이 학교’나 그 언저리 학교에 다니고 계신가요?

네, 국내교육이 미흡해서 말이지요. (약간 변명투)

네 잘 알겠습니다, 손님. (말꼬리를 올리면서) 손님은 다섯 개 항목을 모두 만족시키고 계십니다. 항목마다 가산점이 부가되시는 관계로 ‘수퍼 프레스티지 하이클래스’에 해당되는 신용한도 15 억 원을 드립니다. 더 필요하신 건 없으시구요? 아, 네. 즐거운 상담이었습니다. 그럼 안녕히.

생각이 나서 만들어본 코미디였다. 그냥 웃자는 얘기이다.

최근 인사 청문회 때마다 들려오는 얘기들인데, 솔직한 말로 별로 비난하거나 야단칠 마음은 없다. 그저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나름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구나 하는 정도로만 받아들인다.

옛날에 직장 다니던 시절, 1990 년 무렵일 것이다. 나도 위장전입을 했던 적이 있다.

부하 직원이 이번이 기회입니다, 기회, 뭐하고 계세요, 같이 옮깁시다, 이런 식으로 권유하는 바람에 난데없이 우루루 함께 일산 신도시 근처의 어디-기억도 나지 않는다-론가 가족은 두고 나 혼자만 주민등록을 옮겼던 적이 있다.

뭐 그리 손해날 일도 아니고 해서 잘 알아보지도 않았다. 2 년 뒤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다시 살던 동네로 돌아왔다.

그랬더니 ‘전입을 환영합니다, 반포1동 동장’, 이렇게 인자된 축하문이 집으로 우송되었다. 민망한 마음으로 ‘그래 나도 반가워’ 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1976 년부터 쭉 살아오던 반포1동 주민의 연속성이 깨진 것은 좀 아쉬웠던지라 사람이 살다보면 남자가 外道(외도?)도 하는 거지 뭐 하면서 자위했다.  

아내는 주민등록 등본을 동사무소에서 뗄 때마다 지금도 툴툴거린다. 마치 별거했다가 재결합한 것처럼 보이네 하면서.

제도의 혜택(?)을 이용해서 재테크하는 것을 나름 개무시하던 나 같은 사람도 이처럼 위장전입한 前科(전과)가 있을 정도이니, 청문회에서 그런 전력이 조금 나온다고 해서 나는 전혀 놀라지 않는다.

얼마 전 검찰 수뇌부 인사를 위한 청문회에서 교통위반이 제법 되는 사람을 보면서 ‘저 양반, 성질 한 번 더럽네’ 한 적은 있다.

다만 무진장 위장전입 많이 하고 직불금 받고 농지 많이 가지고 있고 등등 그런 일이 좀 심하다 싶으면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그 양반, 엄청 쪼잔하고 무진장 성실하네. 마누라가 그런가?’ 정도의 생각은 든다.

좁쌀치고 큰 악당 별로 없다는 것, 오히려 부려먹기는 더 편하다는 것이 내 인생 경험이다. 청와대 양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든다.

청문회 할 때, 그 대상자만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물어볼 사람, 다시 말해 국회의원 스스로도 그런 질문을 할 자격이 있는 가를 검증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면 여야 할 것 없이 청문회에 참석할 사람을 가리느라 한참 시간이 걸리거나 어쩌면 청문회 정족수가 모자라게 될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하면 절로 키득 키득 웃음이 나온다.

한편으로 정부 발의로 앞으로 위장전입이나 군 면제 등등 너무나도 진부한 주제들은 시한을 정해서 더 이상 묻지 않는 ‘좁쌀’사면법을 통과시키면 어떨까?

물론 야당은 반대하는 척 하겠지만 장차 다시 정권을 되찾아올 수도 있고 해서 슬며시 못이기는 척 합의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참 시시하게 살아왔고 쪼잔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너무 나무랄 일만은 아니다. 이사 몇 번만 잘 하면 그것만으로도 富(부)를 일구어낼 수 있었던 초고속 개발 시대를 지금의 중장년층 세대는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는 위장전입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재미 보기 어려운 젊은 세대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대들-전부는 아니겠지만-이 비싼 등록금 내고 해외로 돌아다닌 거 알고 보면 부모님들의 그런 ‘쪼잔’함에서 나왔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리라.

젊은이들이여, 그러니 부모님들을 이젠 용서하는 것이 어떨까?

이 글은 우리들 부모 세대를 위한 작은 변명이었다. 수긍이 가지 않는다면 예수님 말씀처럼 ‘죄 없는 자 있으면 돌을 들어 저 사람을 쳐라’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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