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占(점)을 쳐보니  _  2009.9.12
우리나라 19 세 이상 성인의 9.5 % 인 359 만 명이 도박 중독이고 30-40 대 남성 자영업자가 그 중심에 있다는 보도를 접했다. 보호치료가 필요한 사람만도 81 만 명이라 한다. (OECD 평균은 4 %라고 한다.)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우리 현실이다.  

택시를 자주 이용한다, 운전면허를 반납해버린 관계로. 그러다보니 기사들로부터 개인택시 기사들이 경마장을 많이 찾는다는 얘기를 늘 듣게 된다.

우리 사회는 몇 년 사이 ‘한 방으로 인생역전’이란 심리가 팽배해있다. 한방 심리는 사실 ‘희망의 출구’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2003 년 상반기에 ‘올인’이란 드라마가 크게 인기를 끌었다. 당시 나는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 사회에 드리우기 시작했다는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드라마 내용을 떠나 올인, all-in 이란 의미 자체는 바로 ‘마지막 한 방’에 해당되는 말이었고, 한 방을 기대한다는 말은 바로 출구 없는 희망의 상징이기 때문이었다.

당시는 노무현 정부가 시작되던 때였다. 나는 우울했다. 올인 식으로 모든 것을 한꺼번에 확 뜯어고쳐 달라는 국민들의 정서적 욕구 앞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우리 지금 급하거든, 그러니 기다려줄 시간 별로 없다는 거 알고 있어야 해’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그러더니 2006 년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영화 ‘타짜’가 크게 흥행되었다. 영화 대사 중에 ‘갈 데까지 간 놈이지 뭐’ 하는 대사가 나온다.    

그랬다, 한 방이 실패로 끝이 난 우리는 이제 갈 데까지 가고 있었다. 영화는 대단히 재미있었지만, 한 편으로 더 지독한 소름이 끼쳐왔다.  

그리고 2008 년 초, 영화 ‘우생순’이 흥행에 성공했다.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은 ‘지난 때’를 되돌아본다는 것이니 좋은 시절이 이미 갔다는 것에 대한 향수 같은 거였다.

그 해 여름 마지막으로 영화 ‘놈놈놈’이 떴다.

(불과 1년 전의 일인데, 나도 모르게 ‘그 해 여름’이란 말을 하고 있다.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까마득한 과거로만 인식이 되니 그간 일이 워낙 많았었나 보다.)  

그저 ‘환타지아’였다. 더 이상 현실을 초월한 공간이 아니면 기댈 곳이 없다는 식이었다. 제목도 ‘놈놈놈’이었다.  

최근 ‘인생 뭐 있어?’ 하는 닭 체인점 광고 노랫말이 있다. ‘인생 뭐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광고 메시지만 거꾸로 해도 얼마든지 잘 살겠구나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광고문안 일을 하는 이에게 이런 말을 했더니 말은 없고 그저 ‘썩소’를 지을 뿐이었다. 물론 나도 그도 잘 알고 있다, 대중소비시장에서 상품을 결정하는 것은 소비자라는 사실을.

올 봄 하나의 영화, 여름에는 두 개의 영화가 화제를 모았다.

모랄을 넘어선 비뚤어진 모정의 처절함을 엽기적으로 보여준 ‘마더’, 엄마가 아닌 마더였다. 여름엔 ‘해운대’와 ‘국가대표’가 그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일단 남들만큼은 즐겨야 한다고 인산인해를 이룬 해운대 백사장을 덮쳐오는 파도, 저 산더미 같은 쓰나미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모든 것이 암울한 가운데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 종목의 금메달, 그 희박한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 우리 청소년들의 이야기.

물론 영화감독들은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감독과 제작진들은 대중들에게 뭔가 좋은 것을 안겨 주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영화를 만든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  

문제는 흥행에 성공하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바로 그 배경이야말로 우리의 현실을 소름 돋을 정도로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흥행이 되는 영화 제목과 대강의 줄거리만 따라가도 조만간 닥쳐올 미래를 미리 예고하다고 있다는 점, 그러니 영화만으로도 占(점)을 칠 수 있다는 말이다.

먼 옛날 1967 년 우리가 고픈 배를 움켜쥐고 열심히 나라를 건설하기 시작했을 당시 김희갑 황정순 원로배우들이 주연했던 ‘팔도강산’이란 영화가 크게 흥행했다.

전국 팔도에 사위를 둔 노부부가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힘차게 건설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영화였다. 물론 그 당시 우리는 대단히 가난했고 주려 있었다.

선전 영화라고 폄하하기 보다는, 우리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었던 영화였다.

지금의 영화는 감히 팔도강산과 같은 희망을 줄 수 없다. 주고자 해도 국가대표 정도가 기껏인 현실이다. 우리 환경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어두울수록 희망에 대한 의지도 물러서지 않는 법인가 보다.

보진 않았지만 ‘애자’라는 영화가 그런 것 같다. 이제 우리가 출구의 희박함을 확인했다면 우리의 걸음은 앞이 아니라 뒤로 향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하여 결국 돌아가야 할 곳은 역시 '가족'이라는 기본적 사실을 알려주는 영화라는 의미에서.

이 글은 분량 관계상 그간 흥행했던 모든 영화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했는지는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다.

난 늘 겨울을 얘기하고 있다. 나도 싫지만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러나 한 가지 약속을 드리겠다.

겨울의 어둠과 추위로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때가 오면 이 호호당 블로그는 부단히 그리고 끊임없이 봄을 노래할 것을.

다만 지금은 오는 겨울을 만들어내었던 원인과 그 과정, 바로 가을의 일들을  내 눈으로 그리고 당신 눈으로 똑똑히 새겨둘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겨울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 이어 날이 궂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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