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미국은 이처럼 쇠퇴의 길을 가고 있는가?  _  2009.11.9
아침 뉴스, 미국의 실질 실업이 17 %를 넘어 대공황 이후 최고치라 한다. 또 신문, 미국인들의 저축은 천 달러가 되지 않아 최저이고 빚은 4 만 달라가 넘어서고 있어 현 상황은 1980 년대 초반보다 더 심각하다 한다.

미국의 현 불황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늘 있기 마련인 요동, fluctuation 이 아니라 역사적인 전환점에서의 불황이라 본다. 물론 하루 아침에 미국이 뒤안길로 사라진다는 얘기는 아니고, 장기적 견지에서 변곡점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오늘은 미국을 대상으로 해서, 국가의 기운이 어떻게 융성하고 또 어떻게 쇠락하는가를 음양오행의 관점, 다시 말하면 주기와 순환의 관점에서 얘기해보고자 한다.

60 년을 하나의 주기로 볼 때, 어떤 나라의 국력이 성장하고 번영을 이어가는 데는 두 가지의 중요한 시점이 있다.

그것은 60 년에 걸친 국운의 파종기와 수확기이다. 이때를 놓치지 말아야 지속적인 성장과 번영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먼저 국운의 파종기에 새로운 성장동력에 투자하기 시작하면 그로 인해 국력은 서서히 왕성해지고 경제가 성장하게 된다.

또 하나는 국운의 추수기에 그간 농사를 잘 지어 풍성한 추수를 하면 그로 인해 소비가 왕성해지고 좋은 호황기를 맞이한다.

그러면 미국의 파종기는 언제였고 추수기는 언제였을까를 알아보자.

60 년을 한 주기로 하는 것을 1 년의 순환에 비교하면 이해가 쉬워진다. 이 점에 대해 여러 번 얘기했지만, 다시 한 번 정리해보자.

60 대 1 의 시간 스케일로 치환하는 방법이다.

1 년은 4 계절이니 한 계절은 15 년이 되고, 다시 1 년은 12 달이니 한 달은 5 년이 된다.

1 년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씨뿌리기와 모내기, 그리고 가을걷이이다. 이 세 가지 일 중에서 최고로 중요한 것은 씨뿌리기라 하겠다. 뭐니 해도 뿌린 것이 있고 심은 것이 있어야 걷고 말고 할 것이니.  

씨뿌리기는 4 월 20 일경 곡우 무렵에 한다. 이는 2월 초 입춘으로부터 2 달 반이 지난 시점이니 60 년 주기로 하면 12.5 년이 된다.

미국의 국운이 바닥을 치고 돌아서는 때는 1963 癸卯(계묘)년이고, 우리는 1964 甲辰(갑진)년이다.

미국과 우리 대한민국은 국운이 일어서는 때가 시기적으로 거의 일치하고 있고, 이것이 어쩌면 우리가 6.25의 폐허로부터 오늘 날과 같이 번영할 수 있었던 배경 중에 하나일 것이라 여긴다.

미국의 경우 1963 년이 시작점이고 이때를 입춘으로 보면 된다. 그러니 12.5 년이 지날 무렵은 1975 년 정도가 된다. 이 무렵이 미국으로서는 국운상 씨를 뿌려야 할 시기, 파종기였던 셈이다.

그리고 미국 국운상의 추수기는 1975 년으로부터 30 년이 지난 2005 년이 된다.

2005 년 무렵 생겨나기 시작한 서브 프라임 모기지 론은 국운의 추수기에 있었던 일이고 결국 이로 인해 문제가 터졌다는 것은 미국 국운의 추수가 잘못 되었다는 것이니 그 원인은 1975 년 파종기의 일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러니 1975 년 파종기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모든 원인은 이 때 생긴 것이니 말이다.

당시 미국은 성과 없는 베트남 전쟁에 대해 ‘출구전략’을 시행하면서 손을 떼고 있었다.

그런데 이 출구전략이란 말에 대해 조금 얘기할 필요가 있다. 출구전략이란 말은 미국이 베트남에서 도망쳐 나올 때 패배했다는 말은 죽어도 하기 싫고 해서 누군가 지어낸 달콤한 말이었다는 점이다.  

철수가 아니라 출구전략이란 이 말은 최근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제불황에 대해 미국 정부가 양적 완화와 제로 금리를 단행하고 언제 빠져나올 것인지를 놓고 다시 쓰고 있다.

묘하지 않은가? 출구전략이란 말이 등장했던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파종기에 제대로 씨를 뿌리지 않았다는 것과 그로 인해 30 년 뒤 불황을 맞이하여 또 다시 출구전략을 들먹이고 있다는 사실이.  

1975 년 무렵은 미국의 파종기였는데,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으로 엄청난 국력을 낭비하고 국론이 분열되면서 기진맥진했던 터라 결국 제대로 된 씨뿌리기에 실패했다.

2 차 대전 이후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한 미국은 세계 최대의 공장이었다. 그러나 서서히 일본과 독일이 산업 대국으로 부상해갔지만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눈이 팔려 흔히 하는 말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반도체 산업을 필두로 컴퓨터, LCD 등 무수한 오늘날의 대표적 첨단 전자 산업을 들 수 있다.

사실 이 첨단기술들은 모두 미국에서 개발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미국은 첨단 기술 강국이다. 하지만 기술개발과 산업화는 또 다른 문제이고, 산업화를 통해 경쟁력을 가지는 것 역시 별개의 차원이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 이후 그들이 개발한 첨단 기술을 산업화하는데 까지는 성공했지만, 그것을 지키고 세계 시장에서 장기간에 걸쳐 돈을 버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 기술을 바탕으로 응용 기술을 만들고 제품을 만들어서 결국 돈을 번 것은 일본과 독일이었다. 다음으로 바로 우리였고 지금은 중국이 그 길을 맹렬히 따라오고 있다.

미국은 기술을 거액을 받고 팔아먹거나 공장을 해외로 이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기술마저 이전해버렸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집에 두지 않고 돈을 받고 팔아버린 것이다. 물론 당장 거액이 들어오겠지만, 두고두고 뽑아먹는  것에 비하면 껌 값이었던 것이다.

미국은 국운의 파종기에 새로운 성장 동력원을 발굴하는데 성공했지만 그것을 파종하지 않고 그 종자를 팔아먹은 셈이라 하겠다.

얼핏 보기에 ‘클린’ 비즈니스였다. 공장에서 매연 연기가 오르지 않고, 미국 서부의 선인장 가득한 ‘산호세’에서 우아하게 전원 생활하면서 기술을 개발하면 일확천금을 할 수 있었으니 마치 옛날의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와도 같았다.

산호세는 실리콘 밸리라는 명칭을 얻으면서 벤처 붐의 산실이 되었고, 지적 재산권이란 개념을 만들어내었지만, 훗날 역사가들은 기술개발로 일확천금이 가능했던 벤처 신화야말로 미국이 쇠퇴하게된 결정적 전환점으로 평가할 것이라 본다.

기술개발로 천금을 벌고 생산과 제품은 아웃소싱으로 돌리는 풍조가 망국의 병이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지식경제가 도래했다고 떠들었지만 실로 가소로운 일이다.

우아하게 지적 노동만 해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착각, 땀을 흘려야만 얻는 것이 있다는 노동의 건전한 미학이 경시될 때 오늘날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가?

오늘날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는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미제는 武器(무기)를 제외하면 어디에도 없다.  

첨단 기술은 모두 미국이 산실이었건만 그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진 제품이 없다는 사실!

애써 개발해서 일시적으론 큰돈이지만 결국 싼 값에 넘겨먹는데 치중하다보면 오늘날 미국 꼴이 나는 것이다. 벤처 신화가 단지 벤처 신화 그 자체로만 그칠 때 맞이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10 년 동안 이런 엉터리 미국식 경영사조와 풍조가 뭔가 새로운 시대의 정답인 줄 알고 열나게 책보고 강사 모셔오고 컨퍼런스 열어가면서 제법 미래에 대비하는 척 부산을 떨고 있다.

그저 ‘우아’를 떨고 있는 것이고, ‘개멋’을 부리고 있을 뿐이다.  

반면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꾸역꾸역 기술 라이센스를 사들이고 여기에 응용기술을 덧붙여서 산업화시켰고, 그 결과 1980 년대 초반 제2위의 경제강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일본이 돈을 많이 벌자 미국 사람들은 ‘아니, 저 놈들은 일과 돈 밖에 모른다고 이코노믹 애니멀’이라 부르며 질시하기 시작했다. (허기야 요즘 우리 풍조는 ‘짐승남’을 더 쳐주는 추세던데.)

우리 역시 부단히 기술을 사오고 흉내내고 심지어는 훔쳐와서 우리 것으로 만들었고 그것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지금 중국은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유교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초식을 가미하고 있다.  

아무튼 돌아와서 미국은 국운의 파종기에 파종을 하지 않았다. 피폐한 경제일수록 소비를 줄여가며 투자에 나섰어야 했는데 개발된 기술을 돈 받고 팔았으니 좋을 리 만무하다.

1980 년대에 미국이 맞이한 불황은 당연한 것이었다.

어렵고 불황이었지만 미래를 향해 투자를 했어야 했던 것인데 미국은 그 반대로 갔다.

인수합병과 기업 분할 매각 등의 금융기법의 초식들만 난무하면서 富(부)의 源泉(원천)을 팔아먹기에 여념이 없었다.

봄에 씨를 뿌리는 시기에 먹을 것이 없다고 그 씨를 먹을 순 없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이다. 농부는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서너 톨의 종자를 마침내 손에서 놓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으니 바로 그 말이다.

미국은 1975 년 무렵, 베트남 전쟁의 여파로 경제가 피폐해지고 국력이 쇠진한 상태였다. 다시 말해 나름 배고픈 시기였다. 그 바람에 미국은 그들이 애써 개발한 신기술들을 죄다 팔아먹었으니 농부가 파종기에 배고프다고 종자를 먹어버린 것과 같은 결과였다.

어떤 일이 있어도 종자만큼은 밥해먹어선 안 될 일이었던 것이다.

국운의 파종기에 종자 볍씨를 먹어버렸으니 가을이 되면 걷을 것이 없을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물론 미국인들은 나름 자신이 있었을 것이고 믿는 구석이 있었을 것이다. 이 자신감은 아직도 여전할 것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달러라고 하는 도깨비 방망이를 쥐고 있었다. 찍어내면 그 즉시 돈이 되는 달러! 그래서 미국은 달러 체제를 방어하면서 소련과의 군비경쟁에서 이기기만 하면 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레이건 대통령에 의한 공급사이드 경제학이 유행하면서 미국 경제는 활황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농사가 아니었다. 달러를 무한정 찍어내고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오히려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무한정의 돈이 있는데 무슨 걱정? 이런 판단이었던 셈이다.

처음에는 물가가 오르고 경제마저 침체를 보였다.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이었다.

그러나 이는 1975 년 파종기에 파종을 하지 않았던 것과 아울러 달러를 마구 찍어내었기 때문이었다. 파종한 것이 없기에 불황은 당연한 결과였고 달러를 찍어내니 인플레이션이었다.

그것이 1980 년대 초반의 경제 불황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무역적자를 더 늘리고 이에 따라 달러를 마구 윤전기에서 찍어내니 이상하게도 경제가 살아나는 것이었다.

무역적자가 지속되면 나라 경제가 위태롭게 되는 것이 상식이지만, 미국은 달러라고 하는 도깨비 방망이를 쥐고 있었기에 외환위기는 발생하지 않았고,  오히려 무역적자 액수만큼 고스란히 미국 내 자금시장에는 유동자금이 더 풍부해졌다는 것이다.

오일 머니가 기승을 부렸지만, 그 돈은 고스란히 미국 자금시장에서 운용되었으니 미국 자금 시장은 돈벼락을 맞이했고 그 돈으로 경제가 잘 돌아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 기축통화를 지닌 미국은 무역적자에서 오는 시장의 풍부한 유동성과  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부흥하게 되었던 것이다. 동시에 산유국들을 분열시키는 정치 공작에 성공한 것도 기여한 바가 컸다.

그리고 이때부터 미국 경제 운영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착각이었지만. 그리하여 경기부양의 이론적 원조였던 케인즈 주의를 버리고 통화량을 늘리면 경제가 돌아간다는 프리드먼의 통화주의가 득세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케인즈 이론도 통화주의도 모두 정답이 아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알아서 이런 건방진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정답이란 것은 인간의 지혜로서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자로서의 말이다.

그러니 그저 때에 가장 걸 맞는 해법이 존재할 뿐이라 본다. 그러나 최근 미국은 케인즈 방식의 ‘경기부양’과 통화주의의 노골적 방식인 ‘양적 완화 정책’을 모두 가동하고 있다. 아는 것은 다 동원하고 있는 셈인데 최악의 정책 조합이라 본다. 비참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제 결론을 정리하기로 하자.

오늘날 미국의 문제는 1975 년 국운의 파종기에 제대로 씨를 뿌리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 경제회복은 달러라는 도깨비 방망이를 이용한 금융놀이였다.

그러나 엉터리는 결국 엉터리인 법, 국운의 추수기인 2005 년에 와서 마지막 엉터리 경제운영이 파탄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 바람에 이제 달러라는 무소불위의 만능 방망이도 그간 녹슬고 금이 가서 內波(내파)되고 있다는 것이다.

제법 긴 글이었고,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을 것이니 양해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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