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너머 또 산, 파도너머 또 파도, 글로벌 치킨 게임이 시작되고 있다!  _  2009.11.8
지금이야 그저 미국 경제 회생 여부에 모든 시선이 집중되어 있지만,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가 세계 경제의 앞날에 어둔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미국 경제가 예전처럼 살아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결국 길고 긴 불황으로 들어갈 것이라 했다. 이런 나의 생각과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기에 보니 ‘제프리 삭스’였다. 그는 지금의 불황이 한 세대, 즉 30 년간 짊어질 불황이라고 말하고 있다.

왜 이처럼 길고 긴 불황이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지금 세계경제는 지난 거품 경제 기간 동안 이루어진 막대한 생산설비투자로 인해 비록 미국 경제가 그럭저럭 균형을 찾는다 해도 장기에 걸친 만성적인 초과공급의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의 모든 문제는 결국 수요와 공급이다.  

생산설비가 많다는 것은 수요보다 공급이 많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공급은 수요처럼 때에 맞추어 탄력적으로 줄어들거나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수요는 주머니에 돈이 떨어지면 그에 따라 정확하게 줄어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공급은 탄력적이지 않다.

생산 설비나 플랜트는 기본적으로 장기에 걸쳐 투자가 이루어지고 시설이 된다. 공장이 한 번 가동되기 시작하면 웬만해서는 가동을 중지하는 법이 없다.
  
설사 밑지고 파는 한이 있더라도 생산 공장을 돌리는 것이 가동을 중단하는 것보다는 손실이 적게 나기 때문이다.

지금 전 세계는 미국 금융위기와 경제 문제, 출구 전략 등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지만, 설비 과다로 인한 공급과잉을 조정해야 하는 진짜 본 게임은 막 뒤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

반도체 치킨 게임은 운이 좋았다고 하겠다. 세계 경제가 무너지기 전의 일이라 그만큼 처절함이 덜했다. 승자는 삼성전자였기에 또 다행이었다.

그리고 지금 자동차 치킨 게임의 本幕(본막)이 오르고 있다.

최근 미국 GM 이 오펠 자동차를 매각하지 않기로 하면서 독일 총리마저 발끈하고 나섰다. 자동차 치킨 게임의 제1막이다. 또 얼마 전에는 토요타가 적자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장차 자동차 치킨 게임이 얼마나 처절한 것인지를 가늠케 하는 대목들이다.

우리 역시 쌍용 문제가 있고 GM 대우 문제가 걸려있다.  

자동차 산업의 공급과잉은 세계경제가 호황이던 2006 년 당시에도 이미 걱정거리가 되고 있었다. 그러니 장차 경제 불황이 지속되면 공급을 줄이기 위한 메이커 간의 혈투는 불가피한 것이다.

수많은 자동차 메이커들이 중국에 이미 공장을 세웠거나 증설, 또는 새롭게 짓고 있다. 중국 현지 공장의 생산설비가 다 완성되면 세계 자동차 시장은 더더욱 공급초과 상태가 될 것이니 문제의 심각성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모두들 14 억 인구라고 하는 숫자의 마력에 빨려든 감이 있다.

무한대의 내수시장이 생겨날 것이라는 기대가 부른 과잉설비인 것이다. 세상은 결코 일직선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쯤은 메이커들도 알고 있다.  

하지만 시장 규모가 커진다고 하는 전망이 주를 이룰 때 증설을 외면할 수 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

만일 전망대로 시장 규모가 커져 버리면 증설에 나서지 않은 기업들은 시장 점유율이 줄어들고 점유율의 하락은 즉각 기업의 경영에 악영향을 미치기에 정말 확신이 없는 한 증설을 외면하기가 어렵다.

조선 설비 역시 그렇다. 우리가 조선으로 재미를 톡톡히 보자, 중국 기업들은 요동반도의 大連(대련)시를 중심으로 막대한 선박건조 시설을 만들었다.

세계 물동량은 줄고 건조능력은 몇 배로 늘었으니 이 또한 치킨 게임이 불가피하다.  

자동차, 전자, 조선, 철강 등 핵심 산업 품목들이 거의 예외 없이 공급 초과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공급 초과는 그래서 언제나 치킨 게임으로 결론이 난다. 가장 처절한 게임이다. 누군가가 죽을 때까지 다 털고 일어날 때까지 이어지는 머니 게임이다.

결국 지금의 생산설비 과잉은 지난 2004 년에서 2006 년 기간 중 전 세계 경제가 드물게도 일제히 동시호황을 경험했기에 생겨난 결과라 하겠다.

세계 경제는 좀처럼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건만 어떤 연유로 동시 호황이 닥쳐온 것일까?

이 질문에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바로 장기적 공급 초과의 원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모든 원인은 엄청나게 규모가 커진 미국 무역적자에서 출발하고 있다.

해마다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무역적자는 앞선 글에서 얘기했듯이 미국 국채 매입을 통해 미국 자금 시장으로 다시 쏟아져 들어갔다. 미국 자금시장은 실로 미증유의 엄청난 유동성 자금으로 홍수 사태를 맞이했다.

엄청나게 불어나는 유동 자금으로 미국 은행들은 골머리를 앓을 지경이었다.

원래 은행들은 자금 운용, 즉 대출이나 투자에 신중한 법이지만 너무나도 많은 자금이 들어오니 서서히 건전한 자금운용에 대한 감각과 규칙은 무디어지는 것이 당연했다.

그 결과 마침내 서브 프라임 모기지 론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것이 생겨났다.

한편으로 은행을 통해 투자기관으로 흘러든 돈의 상당액은 다시 수익성이 높을 것으로 기대되는 해외 이머징 마켓 쪽으로 흘러들었다. 특히 중국을 필두로 하는 이른바 브릭스(Brics)가 그것이었다. 브라질과 러시아, 인디아와 중국의 합성어인 브릭스 말이다.

몇 조 달러가 브릭스 지역으로 흘러들었는데 그 돈들은 어디에 쓰여 졌던 것일까?

먹고 노느라? 돈은 그런 법이 없다. 당연히 생산설비와 유통망, 인프라 건설에 투자되었다.

세계 경제가 호황을 지속하고 있었기에 그 추세에 맞추어 앞으로 해마다 수요가 몇 퍼센트씩 증가한다는 계산에 맞추어 설비증설이 있었고 신규설비가 지어졌다.  

또 설비 증설에 따라 물동량이 증가할 것으로 보고 도로와 발전소 항만 등의 인프라 투자가 이루어졌고 다시 물동량 증가를 예상하고 조선 건조시설이 만들어졌다.

일련의 흐름이 모두 향후 수요 증가를 예상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미국 경제가 무너지고 금융이 긴축되고 수요가 줄기 시작했으니 지금까지의 모든 투자는 과잉이었음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경제가 지속적인 번영을 이어가려면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연설은 이미 지금의 대증요법만으로 불황을 해결할 수 없음을 대통령 또한 인식하고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미국 경제는 단기간에 회복될 수 없고 이에 따라 전 세계적인 설비과잉과 그로 인한 공급 초과를 조정해야 하는 것이 향후 세계 경제에 지어질 무게와 부담의 본질이고 본 모습인 것이다.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치킨 게임이 벌어질 것이다.

공급에서의 치킨 게임은 세계 경제에 동시 디플레이션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지금은 물가가 오르긴 하되 증가율이 떨어지는 ‘디스플레이션’ 시대라 하지만 양적 완화가 중단되는 순간부터 디플레이션이 고개를 들고 일어설 것이 自明(자명)하다.

디플레이션이란 간단히 말해 경기침체의 고착화 현상이고 인건비와 물건비가 동시에 하락하는 현상이다.  

지금 세계 경제의 핵심 주체들은 이미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다만 지금은 고스란히 앉아서 디플레이션을 맞이할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그리고 또 다른 기업에게 나아가서 다른 나라에게 그 부담을 전가시키기 위한 암중혈투가 이미 맹렬히 전개되고 있다.

누군가를 희생시킬 수 있으면 그만큼 부담은 가벼워질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들이 사라질 것이고 산업화된 나라 중에서 몇 나라는 희생을 당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물론 살아남는다 해도 그 과정에서 입게 될 內傷(내상) 또한 대단할 것임은 불가피하다.

GM 의 오펠 처리에 대해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발끈하고 나서는 것이 바로 그런 암투의 모습이다.

나는 이제 글로벌리제이션이 불황을 맞이하면서 ‘글로벌 치킨 게임’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액수의 돈이 허공 속으로 날아가 버릴 것이다.

상각 처리, 결손 처리, 투자 미회수, 대출 부실, 경매 집행, 파산절차 등 무수한 법률 용어들이 장차 우리들 귀를 따갑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업에 종사하던 수많은 사람들은 또 다시 구조조정, 해고, 명퇴 등의 얘기를 통해 일터를 잃게 될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은 미국의 쇠퇴로 시작된 전 세계적인 구조조정을 의미한다.

또 그 과정에서 자율조정기능이 상실된 기축통화 달러의 문제를 새롭게 해결하려는 시도가 있을 것이고 새로운 국제통화의 시대가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기축통화의 교체를 놓고 호기심 삼아 이런저런 말들을 하지만, 나는 소름이 끼친다.  

다음 글에서는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우리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이고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어떤 독자분이 장차 어떤 직업이 좋으냐는 질문을 했다. 지금 쓰고 있는 글들이 마무리되면 그에 따라 우리가 어떻게 먹고사느냐 하는 문제를 언급하게 될 터인데, 이 질문은 그 때 답하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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