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 미국, 떨고 있는 세계  _  2009.11.7
앞의 글, ‘달러는 이제 良貨(양화)가 아니라 惡貨(악화)인가?’에 이어지는 글이다.

이제부터라도 미국은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낮추고 달러를 현실사정에 맞추어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이 미국 내에서도 힘을 얻는 현실이지만, 현실정치(real politics)는 원래 주장이 이치에 맞는다고 해서 당장 실천에 옮겨지는 법은 거의 없다.

정치란 이해당사자간의 갈등과 투쟁, 타협을 통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이 다소 급격할 때 우리는 개혁이라 하고 더 급격하면 혁명이라 한다. 젊은이들이 지지부진한 정치보다는 화끈한 혁명을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미국은 무역적자로 인해 생겨난 엄청난 자금의 홍수로 해서 기술주 열풍을 부르고 다시 부동산 거품이 생겼다가 그것이 소멸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

그 대응방법은 또 다시 돈으로 메우는 양적 완화정책이고 저금리 정책이며, 재정적자를 통한 경기부양 정책이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해결하려할 것이다.

미국 경제가 기적적으로 살아날 때까지 해열제(구제금융)와 모르핀(경기부양), 혈압 강화제(제로금리)를 투여하면서 버티자는 것이다.  일종의 대증요법인 바, 공연히 획기적인 해결책을 시도한답시고 신약을 시도했다가 박살이 나느니 아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중환자실에 들어간 미국 경제가 어느날 ‘기적적’으로 살아나면 다행이고 아니면 그건 또 그 때가서의 일이라고 여기는 것이 또한 정치인들의 자세일 수밖에 없다.

이런 것을 놓고 흔히들 정치인들을 욕하지만, 실은 정치인들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정치인은 표를 받아야 존재하고 존립할 수 있는 직업이라, 표 떨어지는 소리는 결코 입 밖에 내지 않으려 한다. 근본적인 처방이란 것이 원래 표 와장창 떨어지는 소리라는 것은 당연한 얘기인 것이니.

미국 경제가 기적적으로 살아난다는 것은 소비가 살아나고 실업률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일이다. 그런데 아침 신문을 보니 드디어 실업률 10 %를 넘어섰다고 한다.

그러니 현 상태에서 최소한 그런 기적이라도 기대해보려면 지켜야 할 절대적인 사항이 하나 있다.

바로 다우존스나 S&P500, 나스닥과 같은 증시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증시라 하면 부자들의 돈 놀음터인 줄 알고 있다면 오산이다. 미국의 웬만한 급여생활자들, 중산층들은 거의 빠짐없이 연금펀드에 다달이 돈을 붓고 있다.

미국 시민의 절대적 자산은 부동산이 아니라, 금융자산이고 그 금융자산은 대부분 연금펀드의 형태로 운용되고 있다. 미국인들의 노후 대비책은 연금펀드가 주종인 것이다.

부동산보다 금융자산이 많은 형태야말로 선진형 자산관리라는 식으로 매체들이 떠들어대고 펀드들이 열심히 선전하고 있지만, 세상에 확실한 것은 본시 없는 법이다.  

미국의 경우 증시가 하락하고 그것이 심화되면 그야말로 중산층은 절망적으로 변한다.  

그까짓 부동산이야 내린다고 해도 노후 대비책인 연금펀드가 있으니 하고 그럭저럭 쓸 돈은 쓴다는 식이지만, 만약 증시마저 무너지면 쓸 돈도 써선 안 되게 될 것이다.

얼마 전 글에서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인지라 밤에도 중국 증시와 영국 증시, 한국과 일본 증시를 확인하느라 수시로 리모콘으로 화면을 ‘온오프’하고 있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현재 미국의 제로 금리는 따라서 다른 무엇보다도 증시 부양용이다. 금리를 올리면 즉각 증시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것이 분명하니, 매달 출구전략은 시기상조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까지고 이 제로금리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제로금리가 유지되면 달러 시세가 다른 통화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벌써 중국이 일부 미국 국채를 슬며시 팔고 있고 일본이나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 실정이다. 무엇보다도 유로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릴 경우 치명적이다.

그래서 매일 각국의 저금리 정책 공조를 강조하고 있음이다.

지금 미국 정부가 고민하는 문제의 핵심은 증시가 계속 오르는 것도 문제이고, 증시가 떨어져도 문제라는 점이다.  

어차피 지금 증시상승은 일종의 ‘미니 거품’인 바, 제로금리를 계속 유지하다가 증시가 너무 올라버리면 결국 거품 소멸을 위해 내려야 하는 조정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니 그러다가 충격이 너무 커져서 증시가 아예 저 밑바닥으로 가서 길게 누워버리면 어쩌지 하는 고민.

반대로 미니 거품을 경계한답시고 금리를 덜컥 올렸다가 증시가 조정을 적당히 받으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고 그 역시 저 밑바닥으로 침몰해버리면 또한 마찬가지가 된다.

증시를 현 수준에서 적당히 박스권에 가둬놓고 관리할 수만 있다면 좋은데, 시장이란 것이 본시 언제까지 박스권에 가둬둘 방법은 없는 노릇이다.

버냉키는 현재 고난도의 묘기를 부리고 있다. 주특기가 원래 외줄타기 곡예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증시는 움직인다. 박스 안에 가둬놓는 방법은 원래 없다. 매수자와 매도자를 국가에서 지정해놓고, 오늘은 당신이 파시고 내일은 당신이 사시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증시를 당분간 휴업시킬 수도 없고, 골치가 아프다.

위로 가면 거품이 생겼다가 소멸할 것이니 더욱 심각한 문제이고, 그렇다고 밑으로 가게 두면 경제가 살아날 길이 영영 아듀인 셈이다.

그저 중환자실의 경제가 벌떡 일어나 나 살았어, 이제 괜챦아 하기만을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다.  

또 한 가지 고민은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은행들, 특히 투자은행들이다. 별 하는 일 없이 모니터 앞에서 ‘클릭’질이나 하며서 월급이다 보너스다 엄청 받아먹는 저 금융산적들을 손을 보긴 봐야 국민들의 속을 풀어줄 수 있겠건만 그 또한 쉽지 않다.  

마구 주어 패면서 국민들의 속풀이를 했다간 그래 나 못해 먹겠슈 하고 주식 다 팔아버리면 그 날 부로 증시는 끝장이니 그럴 수도 없고, 또 버냉키 형님 말만 믿고 주식을 삽니다 하는 놈들에게 달래가면서 사게도 하고 또 팔게도 하면서 증시를 적당히 조정해야 하니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중국은 중국대로 나도 속이 편한 것은 아니다 하며 매일 투정을 하니 그 또한 받아주어야 하고, 유로 중앙은행 총재가 출구전략 운운하면 ‘아이, 왜 그래 샀소, 다 아심시롱’ 하며 달래야 한다.

일본, 그간 엄청 뜯겼으니 입이 부을 대로 부어있다. 우리가 예전에 플라자 합의 바람에 작살이 났건만 이제는 헌씬짝처럼 버리고 중국과 함께 춤을 추겠다니 보답이 겨우 이 모양이냐고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더하여 아프간 전쟁은 끝날 기미도 없고, 의료 개혁은 결국 세금 더 내라는 얘기이니 인기가 없고, 연말에 있을 코펜하겐 기후협약이란 것 역시 산업에너지 사용을 자제하자는 것이다. 경제가 살아나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성장률을 알아서 줄이자는 것이니 원 참 이 무슨 봉창 두들기는 소린가!  

이래저래 미국은 돌아버릴 지경이다.

물론 다른 나라들도 최대한 협조하고 있다.

미국 경제가 무너져버린다면 어떤 결과가 올 것인지는 말 할 필요가 없다.

안 그래도 거품이 잔뜩 끼어있는 중국 경제는 그 날 부로 거품 소멸 과정이 시작될 것이고, 엄청 들고 있는 미국 국채는 휴지가 될 때까지 두고 있을 수도 없고 팔아버리자니 그 무게로 해서 역시 휴지가 될 것 같다.

일본 역시나 수출로 버티고 있는데, 미국 경제가 무너지면 길이 없다. 유로 지역은 고실업으로 인종 문제가 계속 되는 마당에 미국과 전 세계로부터의 관광 수입마저 끊어지면 여전히 앞이 막막하다.

그래서 G-7 은 물론 G-20 까지 동원해서 무너지는 미국 경제를 지탱하기로 결심했지만, 결국 누가 더 비용을 분담하느냐의 문제로 귀결이 된다.

오죽하면 G-20 회의의 내년도 의장국으로 우리 대한민국까지 차례가 왔을까나? 우리더러 비용 분담 좀 세게 하라는 격려성 채찍성 요구이다.

물론 우리 역시 비용 분담 좀 세게 해서 최대한 성의를 다해서 미국 경제가 살아날 수만 있다면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

아프간 파병 건은 국회의원들의 ‘신체 단련용’이지 비용 분담의 껌값도 되지 않는다.

미국 달러가 포린 어페어 지의 기사처럼 고분고분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달러가 내리면 우리와 같은 수출 경제는 치명타가 되고, 미국 역시 저금리 기조를 더 이상 유지할 수가 없게 될 것이며, 미국 경제는 그로 인해 길고 긴 불황으로 본격 들어갈 것이다.

미국 달러가 그렇다고 강세로 갈 이유는 전혀 없다.

달러가 오르기 시작하면 그 날 부로 전 세계로 퍼져나간 투자들이 회수되기 시작할 것이다. 이른바 ‘달러 캐리 트레이드’가 끝나면 한국증시만도 엄청난 돈이 빠져나갈 것이고, 경제는 바로 불황에 들어갈 것이고 부동산도 급격한 하락을 보일 것이다.

죽일 수도 없고 살릴 수도 없는 형국이 오늘날의 미국이고 달러가 되었다.

지금까지의 얘기는 이치에 관한 것이고, 현실에서 달러 가격은 어떻게 될까?

답이 없는 만큼 현실의 장에서 달러 가격은 이런저런 생각들이 갈등을 빚으면서 요동을 치게 될 것이라 본다. 그 과정에서만도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좋았던 만큼 아픔도 공유해야 할 것 같다.

최근에는 많이 잊히긴 했지만 이런 말이 있었다. 미국이 재채기하면 한국은 앓아눕는다. 기억나시는지. 여전히 빈말이 아니다.

지금 미국이 중환자실에서 산소 마스크를 쓰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무슨 마스크를 써야 할까?

다음 글에서 세계 경제가 안고 있는 또 하나의 치명적인 문제인 생산설비 과잉에 관한 얘기를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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