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자의 돌, 엘릭시르  _  2009.10.29
잿빛 구름 옅게 깔려 푹한 늦가을 날씨, 오후에는 비가 올 것도 같다. 창밖을 보고 있노라니 어느덧 생각에 잠기게 된다.

그래, 이런 날이었다. 30 년도 더 전에 경복궁 경내의 잔디마당에 마주 앉았던 옛사람의 둥근 눈매와 하얀 치아가 기억 속에 아련하다. 그 사람 눈썹이 참 예뻤는데 싶다. 열정은 거부당했어도 실패한 사랑은 내 가슴 한 구석에서 보석처럼 빛을 발하고 있다.

이제 햇빛도 한 풀 죽어 은빛이다. 은빛은 무슨 빛인가?

황금의 빛깔은 설명 붙일 필요도 없이 광휘롭고 황홀하다. 그러나 은빛은 약간의 설명 또는 변명을 필요로 한다. ‘저 광휘로운 은빛을 보라’는 표현은 없지 않은가.

은빛은 노인의 머리카락에서 발하는 빛이니 이를테면 지혜의 빛이다. 금빛이 압도적인 권력을 상징하는데 비해 은빛은 결코 압도적이지도 않고 권력의 냄새를 품기지도 않는다.

군주의 머리에서 발하는 빛이 찬연한 황금빛이라면 은빛은 그 군주를 보좌하는 나이 많고 지혜로운 자문관의 머리에서 발하는 은은한 빛이다.

이런 말을 하고나니 생각은 반지의 제왕에 미친다. 유난히 은빛 광채에 대한 묘사가 많았던 소설이라 그런가 보다. 엘론드의 거처인 리벤델 계곡에도 은빛이 많았고, 난장이 드워프들의 광산인 모리아 동굴로 들어가는 문에 새겨진 은빛 별들도 기억이 난다.

판타지를 엄청 좋아하는 나, 일상의 현실과 판타지를 구분지우지도 않고 살아가는 나이기에 ‘반지의 제왕’은 내게 큰 행복을 안겨주었다.

그런 나의 역할 모델은 그래서 ‘간달프’이다.

간달프를 지망하다보니 놀랍게도 나는 ‘현자의 돌, 엘릭시르’를 찾게 되었다. 그러니 엘릭시르는 연금술사들에 대한 얘기 속에서만 존재하는 가공의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물건인 것이다. 놀랍게도 현존한다니!

뿐만 아니라 며칠 전에는 내가 찾은 ‘엘릭시르’의 비밀을 슬그머니 글로 올리기도 했다. 바로 프리스타일 202 번 글 ‘존재와 영원에 관한 세상에서 가장 쉬운 설명’이란 제목의 글이 그것이다.

가장 쉬운 설명이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시는 분이 더 많으리라 생각한다. 앞으로 서서히 시간을 두고 풀이해드리고자 한다. 그러나 기다리기가 지겨울 것 같아 여기서 힌트를 하나 드리겠다.

매일 먹는 쌀밥은 그 맛이 그저 그렇다. 그러나 서너 끼 굶고 나서 한 번 먹어보시라. 그 맛이 얼마나 황홀한지.  

행복이란 물건도 그와 같다. 더 많이 누리고 더 많은 돈을 벌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행복은 우리가 매일 먹는 한 공기의 쌀밥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 당신은 매일 주어진 행복을 매일 불행의 맛으로 느끼는 고약한 사람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은 당신이 달리 행복을 찾아본 들  결코 찾을 수 없을 것임을 내가 보장한다.

다시 말하지만 행복은 일상의 공기 밥을 떠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앞서 얘기처럼 쌀밥이 황홀한 맛으로 변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당연한 얘기겠지만 답은 굶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굶지 않고도 그 쌀밥을 며칠 굶은 듯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그건 당신이 엘릭시르를 가졌기 때문이다.

당신이 엘릭시르를 가지게 되면, 마치 우리가 음식에 굶주림으로서 쌀밥의 맛에 황홀해하듯, 당신을 삶에 굶주린 자로 만들어 준다. 그러면 그냥 지나쳐가는 평범한 시간들이 더 없는 황홀한 맛으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왜 우리 삶의 시간들은 그토록 재미가 없을까?

맛있는 음식은 처음에 가장 황홀한 맛을 주고 갈수록 그 맛을 모르게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은 대단히 묘하게 설계되어 있다.

처음 태어나 자랄 때는 제 맛을 느끼게 하다가 성인이 되면 무감각하게 만들고 마침내 삶의 끝에 다가갈수록 오묘한 맛을 내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주어져 있을 때는 아쉽지 않다가 끝에 가면 한 없이 아쉬워지는 것이 우리의 삶과 시간의 逆說(역설)이고 비밀이다.  

그러나 이 비밀을 알았다고 해서 그것만으로서 엘릭시르를 가진 것은 아니다.

그 무엇도 그렇듯이 이 비밀도 삶의 여정 속에서 또 경험 속에서 체득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남은 문제는 어떻게 체득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로 좁혀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문제는 이 비밀을 너무 뒤늦게 알아차리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늦은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처럼 늦었어도 알게 된다면 나름 좋은 것이지만, 당신이 좀 더 일찍 알게 된다면 더 좋지 않겠는가!

어떻게 그 비밀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체득하게 되느냐 하는 것은 앞으로의 숙제로 남겨두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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