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븐 할둔의 얘기  _  2009.10.28
오늘은 ‘이븐 할둔, Ibn Khaldoun’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한다.

이 사람의 풀 네임이 흥미롭다. 아부 자이드 압둘 라흐만 빈 무함마드 빈 할둔 알 하드라미, 한 번 소리 내어서 읽어보라! 이름이 길다는 것은 그만큼 사화적 존경을 받았다는 뜻이 된다. 1332 년에 태어나 1406 년에 죽은 이슬람 학자였다.

이따금씩 생각이 틀에 얽매인다고 스스로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이 양반이 남긴 글을 읽곤 한다. 본질을 통찰함에 있어 어떠한 가식이 없고 대단히 직설적이다. 그리하여 많은 스승님의 한 분으로 이븐 할둔을 모셨다.  

이븐 할둔의 조상은 아라비아 반도 남쪽의 예멘 계통의 부족으로서 초기 이슬람 세력이 종교적 열정으로 폭발적으로 팽창해가던 AD 600 년대 후반, 아프리카 북안을 정복하고 이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스페인까지 정복할 당시 크게 武勇(무용)을 떨쳤다.

이븐 할둔의 조상은 스페인의 세비야 지방에 정착하여 수 백 년 간 잘 살아오다가 AD 1200 년경 기독교들의 반격, 이른바 리콘키스타라 부르는 스페인 재정복 시기에 세력을 이끌고 피신하여 북아프리카의 튀니지에 정착하였다.

그러나 튀니지의 왕조는 할둔의 집안을 겉으로만 환영하는 척 했을 뿐, 끝내 뿌리내리는 데 실패했다.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할둔은 자연히 정치를 멀리하고 학문에 심취했다.

할둔의 생애는 그리 평탄하지 않았지만, 좋은 스승들을 만나 여러 학문에 대해 폭넓게 배우고 교류할 수 있었다.

그는 40 대 중반 행운이 찾아와 안온한 성에 머물며 ‘세계사’를 집필했다. 그리고 그 서론을 썼는데 그것이 바로 유명한 ‘역사서설’이다.

앞에서 가끔씩 읽곤 한다는 책이 이 ‘역사서설’이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할둔의 ‘역사서설’에 대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서, 자신의 역사철학은 할둔의 작품에 크게 영향 받았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스코틀랜드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였던 로버트 플린트는 할둔의 책을 두고 이 책에 비길 작품은 어느 시대에도 없었으며, 플라톤이나 아르스토텔레스, 어거스틴도 여기에 비할 순 없다고 극찬했다.

그러나 이 긴 글 전체를 여기에 소개하기는 어렵고 또 그럴 생각도 없다. 마음이 있으신 분은 번역본이 있으니 사서 보실 일이다.

다만 오늘 얘기는 이 양반, 내 스승님의 독특한 시각과 사상이 어떤 것인지, 그 맛을 좀 보여드릴까 해서이다. 두서없이 내용들을 제목 중심으로 소개하겠다.

이 분의 기본 개념에는 전야생활과 도회생활이 있다.

田野(전야)생활이란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것만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사치나 문화적 세련됨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말한다. 전야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비록 거칠기는 하지만 가식이 없고 대단히 힘을 가지고 있다.

반면 도회생활은 온갖 정치적 술수와 문화적 교양, 세련됨과 우아함, 향락을 누리며 사는 것으로서 한계에 달하면 스스로 몰락하거나 전야생활의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야생활을 하던 세력들이 새로운 왕조나 세력이 되어 지배하게 되고, 다시 도회생활을 통해 타락하고 무력해지면서 또 다른 전야생활의 세력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흥망성쇠의 기본 과정이라는 얘기이다.

그 과정에서 개입되는 세금 문제라든가 권력자 집단 내부의 분열, 문신과 무신의 차이, 말기 증세에 관한 다양한 생각들을 제시하고 있다.

도회화가 진행되면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산업의 발전과 이윤의 창조, 특히 노동이 이윤의 근본 원천이라는 생각은 훗날 맑스의 노동가치설에 큰 영향을 주었다.

아울러 다양한 계급, 농민과 상인, 장인, 지식계급의 성격과 역할에 대한 독특한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

재미난 예를 들면 이렇다.

- 지위는 재산 획득에 유리하다. (실로 솔직한 설명이 아닌가!)

- 상업에 종사해야 할 사람과 그래서는 안 될 사람의 부류. (독하지 못하거나 권력자와 줄이 닿지 않는 사람은 상업에 손대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다.)

- 상인의 성품은 지도자에 비해 열등하며 남자다움과도 거리가 멀다. (이를 두고 우리는 ‘갑을 관계’에서 ‘을’의 슬픔과 비굴이란 표현을 한다.)

- 기술은 거대하고 완벽한 도회문명이 있는 곳에서만 완벽해진다. (치열한 시장경쟁을 통한 이윤 창출의 메카니즘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 도회문화는 문명의 절정이자 성장의 종말이며 퇴락의 징후이다. (엄청난 자원 소비를 통해 유지되는 오늘날의 도시생활에 대한 하나의 경고이기도 하다.)

- 학자는 어느 누구보다도 정치에 어둡다.

학자가 왜 정치에 어두운가에 대해서는 약간 보충설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할둔의 주장에 따르면, 학자들은 일반화 및 유추를 통한 결론에 익숙해져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관찰 결과를 자신의 견해와 유추의 틀 속에 집어넣는 바람에 잘못을 범하기 쉽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똑똑한 것이 문제라는 얘기이다.

이에 반해 건강한 보통 사람들이나 평범한 지성을 가진 사람들은 마음속의 견해를 외부 사실과 일치시키려는 무모한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에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할둔의 주장은 지식인들이 가지는 논리적 사고방식, 다시 말해 자신이 세워놓은 이론적 틀로서 복잡다기한 세상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시도인지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이야말로 할둔으로부터 내가 크게 배운 점이다.

세상을 억지로 내 틀 속에 끼워 맞추기보다는 있는 현상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열린 사고방식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고, 책에서 선생에게서 배운 대로 굴러가는 세상이 아니라 세상은 부단히 스스로를 창조하고 있다는 식으로 봐야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줄여 말하면 세상이 主(주)인 것이고 이론은 從(종)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이론이 세상더러 틀렸다 말하는 것은 주종이 전도된 것이라 하겠다.

할둔의 ‘역사서설’은 다양한 사고와 생각들을 담고 있다.

역사서설은 세계사를 서술하기 전에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은 인간이라는 점, 그러니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를 서설로서 다루고 있는 것이다.

할둔의 글은 담백하고도 직설적이다. 때로는 통쾌하기까지 하다.

사람들이 공직을 희망하면서 국민의 공복이 될 것을 다짐하지만, 그 마음속에는 여전히 지위는 재산획득에 유리하기 때문인 점도 있는 것이 사실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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