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 Year에 대해  _  2009.10.27
大年(대년)이란 개념이 있다. 영어로는 ‘Great Year’라고 한다.

고대 바빌로니아 사람들에 의해 전승된 것으로서, 세상은 대략 25,920 년을 하나의 週期(주기)로 하여 새롭게 갱신되어 간다는 뜻에서 이런 말이 생겨났다.

탁월한 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는 이 대년의 개념에서 힌트를 얻어 ‘영원회귀의 신화’란 책을 쓰기도 했다. 回歸(회귀)란 돌아온다는 것이니 대년마다 새롭게 갱신된다는 뜻이다.

30 대 시절, 음양오행을 연구하다가 더 큰 주기가 있다는 것을 감지했을 때도 나는 이 ‘대년’의 개념에 대해 잘 알지 못했었다.

모델링을 하고 검증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현대학문의 기본 성격이고, 나 역시 그러했다. 처음 검증에 도전했던 것은 60 년 주기였고, 그것을 검증하는데 10 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다. 그러고 나니 내 나이 40 대 중반이었다.

다시 그보다 더 큰 차원의 주기로서 360 년과 600 년을 상정하게 되었고, 53 세가 되어서야 360 년 주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검증해보는 방법은 주로 歷史年表(역사년표)를 통한 방법이다.

역사가 장구한 나라들의 연표들을 바탕으로 역사서적들을 뒤져가며 다양한 사건들의 의미와 흥망성쇠를 따라가 보는 작업이었다.

가장 좋은 대상은 역사기록이 가장 잘 보존된 중국 그리고 로마 제국이었다. 페르시아 제국들도 비교적 충실한 편이었다. 그리고 서구의 경우 프랑스와 영국, 스페인 등이 근대사 기록이 워낙 충실해서 그런대로 좋은 자료가 되었다. 물론 우리나라도 역사기록이 충실한 편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360 년 이상의 주기를 검증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비교적 잘 알려지고 기록된 인류역사는 겨우 2500 년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러다보니 플라톤도 언급한 바 있는 ‘대년’에 대해 눈이 가기도 한다. 플라톤의 잃어버린 대륙 ‘아틀란티스’는 이 대년이 새롭게 갱신되는 과정에서 사라진 先文明(선문명)이란 뜻이기도 하다.

25,920 년이 1 대년이니 그것을 12 달로 나누면 1 달, 즉 1 대월은 2,160 년이 된다.

그래서 2,160 년을 하나의 주기로 상정하고 검증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앞서 얘기처럼 인류의 기록된 역사란 것이 겨우 2000 년 남짓하니 母集團(모집단)을 만들 수가 없다.

그러니 1 대월마저도 상상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

아무튼 대년이 존재하고 대월이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2,160 년이 1 대월이니 360 년은 그것의 1/6 이 된다. 한 달이 30 일이라 할 때 그 1/6 은 5일이 된다.

검증해내었다고 내가 믿고 있는 360 년 주기는 대년으로 치면 겨우 5일에 불과한 셈이다.

한 달을 여섯 단계로 나누는 방식은 동아시아 역법에서 72 候(후)의 개념과 같다.

‘후’라는 것은 5 일을 단위로 기후가 변화해가는 모습이 뚜렷하기에 생겨난 역법상의 개념이다.

360 년이라 하면 엄청난 시간에 걸친 큰 주기 같지만, 만일 대년의 개념이 실재하는 것이라면 나는 겨우 ‘후’를 검증해내는데 평생을 바친 셈이다.

나에겐 60 년 주기가 너무나도 확고부동한 것이고, 360 년 역시 상당히 뚜렷한 개념이지만, 아무래도 대년은 그런 검증을 거부한다. 그저 상상의 세계에 머물 뿐이다.

대년과 관련해서 재미난 점은 고도의 도시문명은 문명의 절정이자 성장의 종말이며 퇴락의 징후라는 것이 역사철학들의 공통된 견해라는 점이다.

플라톤이 선두주자였고, 다음으로 이슬람의 위대한 철학자 ‘이븐 할둔’이 같은 말을 했으며 마지막으로 ‘서구의 몰락’을 쓴 ‘쉬펭글러’ 역시 그런 의미에서 서구의 몰락을 예견했다는 점이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얘기인 것이 도시문명은 엄청난 에너지와 물자의 소비가 가능할 때만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도심에 지어지고 있는 유리건물들은 엄청난 난방과 냉방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 의한 글로벌리제이션은 전 인류의 1/3 정도를 도시에서 거주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생겨난 것이 석유와 에너지, 온난화 현상이지 않은가.

오늘날과 같은 고도의 자원 소비가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또 대년과 함께 발전된 것으로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 이슬람권의 의사와 점성술사들의 견해에 의하면 사람의 자연수명은 120 년이라고 한다. 동양의 명리학에서도 120 년을 상정하고 있다. 우연한 일치가 아닌 것이니 상당히 재미있다.  

조선시대만 해도 ‘인생 50년’이었다. 태종 임금이나 세종 대왕도 모두 50 대 중반에 세상을 떠날 정도였다. 임금이 그러할 진대 일반 백성이야 오죽 하랴.

그러나 오늘날 수명은 대략 80 초반까지는 무난하다.

나는 예전부터 이런 셈법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오래 산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장수의 기본은 건강과 좋은 심성이기 때문이다.

100 점 만점에서 낙제점은 40 점이고, 50 점이면 낙제는 아니나 불합격, 60 점이면 합격이며, 80 점은 우수한 점수라 하겠다.

50 세 이전에 죽으면 낙제라 본다. (120 곱하기 0.4 는 48 년)
60 세 환갑을 넘기면 50 점이니 불합격.
72 세를  넘기면 60 점이니 턱걸이 합격.
80 세를 넘기면 66 점이니 제법 좋은 점수.
96 세를 넘겨야 80 점이니 보기 드문 점수, 거의 神仙(신선)에 가깝다.

요즘 시대는 영양이 좋아져서 웬만한 체질이면 60 점은 무난하고 66 점도 그리 어렵지 않은 시대라 하겠다.

최근 생명공학이 발달하면 엄청 오래살 수도 있겠다는 낙관론도 등장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자연수명인 120 년을 넘어설 수는 없을 것이라 여긴다.

인체 내 모든 부품을 모두 갱신한다 해도 뇌의 수명이 어쩌면 120 년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다. 그것마저 바꾼다면 개인의 정체성이 유지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지난 청명 무렵에 지리산 칠불사를 다녀왔고, 이번 상강 부근에 다시 다녀왔다.

절로 오르는 화개로 연변의 벚나무들, 저번에는 화사 요염한 벚꽃이더니 이번에는 마르고 수척한 모습이었다. 마치 단장하지 않은 기생이 간만에 찾은 한량의 발걸음에 화들짝 놀라 허둥거리는 듯 했다. 놀러온 것이 아니라 그저 절에 다녀갈 뿐이니, 너무 부산떨지 말라고 손사래를 쳐야했다.

섬진강 물색만 봄이나 늦가을이나 변함없이 남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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