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야말로 블루 오션이다.  _  2009.9.24
작년 가을, 제자들과 함께 안동 하회마을로 놀러갔다가 풍산 뜰을 지나게 되었다. 그 무연한 대낮의 벌판이 모두 황금물결로 넘실대고 있었으니 보기에 정말 좋았다.

잠시 차를 멈추게 하고 벌판 가운데 길을 걸으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리곤 생각에 잠겼다. 농사가 오늘날 시시한 것이라 하지만, 이처럼 구체적으로 생생한 收穫(수확)의 맛을 그 어디에서 맛볼 수 있으리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면서 또 생각했다. 이 모든 황금벌판이 모두 내 뜨락이라면 그야말로 부자가 아닌가!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저 들판을 기름진 농지로 가꿔내기까지 누대에 걸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있었을까를. 한 때 들판은 지금의 평평한 들판이 아니라 구릉과 낮은 언덕 등 많은 굴곡이 있었을 것이니 그것들을 손으로 밀어내고 다져서 오늘의 논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나는 늘 생각한다, 직장도 다녀보고 사업에 손을 대 보기도 하고 투기에도 매진했던 나는 이 세상에서 농부야말로 가장 위대한 사업가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오늘날의 농부는 농부다운 면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농부란 어느 누구에게도 힘든 소리 하지 않고 오로지 땅과 씨름하는 농부를 말한다.

그리고 부자가 되려면 먼저 농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持論(지론)이다.

실은 내 지론이 아니라 어느 분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다만 나는 그 이치를 배운 다음에 좀 더 내 것으로 정리했을 뿐이다.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땅은 대한민국에서 그리 많지 않다. 국토가 좁은 탓이다.

그러나 생각하기에 따라 땅은 무한대로 주어져 있다.

문제는 그 땅들이 일단은 그리고 모두가 황무지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남은 숙제는 그 무한의 땅을 기름진 옥답으로 바꿀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한의 땅을 기름진 땅으로 바꾸는 상상은 아무나 하지 못하는 것 같다.

특히 고정 급여로 생활하는 사람의 경우 편한 맛은 있지만, 이런 상상을 잘 하지 못한다. 상상력에 테두리가 정해진 탓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상상은 자유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고정 급여를 받는 사람은 그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셈이 된다.

실은 급여 생활자라 해도 무한의 황무지를 옥답으로 바꾸는 상상을 해도 되고 또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지만 상상하는 것은 자유인 까닭에.

상상의 규모가 커지면 사람도 커진다.

내가 한참 어려웠던 1996 년의 어느 겨울 날 강원도 양구로 바람 쏘이러 갔다가 선상에서 만난 그 양반이 일러준 얘기가 바로 이것이다.

나이가 70 대 후반으로 생각되던 그 분은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바보들이야, 상상은 자유인 데 말이야. 세상 천지에 돈이 깔려 있다는 말은 들어보셨겠지. 그런데 말이야, 황금이 그냥 깔려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질 않다는 사실이지.

자네, 가을 들판의 황금을 보았겠지. 그 황금이 어디서 나오나? 바로 농부가 일년 내내 땀 흘려 일한 수고에서 나오는 것이지. 그런데 그런 논은 임자가 있어.

임자가 있다는 말은 그 논을 꼭 돈을 주고 샀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네. 돈을 주고 사면 남는 것도 없고 남기기도 어려워. 돈이 되려면 황무지를 일구어내야 하는 것이고 당연히 세월이 들어가기 마련이지. 그런 자만이 임자의 자격이 있는 거야.  

쌀? 물론 오늘날 별 돈이 되지를 않지. 그러니 고지식하게 쌀농사만 생각하지 말고 돈이 되는 농사를 지으면 될 게 아닌가?

정주영 저 영감 보게나, 저 영감 나하고 잘 알고 지내는 사람이네만 진짜 농부야, 농부. 다만 쌀농사를 짓지 않을 뿐이지, 천생 농군이야 농군.

정 회장? 회장은 무슨 회장. 그냥 농군일 뿐이야. 그다지 모험적인 사업가가 아니라네. 내가 잘 알고 있지.

자네도 부자가 되고픈가? 정주영이를 따라하게나. 종자돈 타령 같은 소리는 아예 하지를 마시게나. 정주영이도 나도 다 해봐서 아는데 그냥 하면 되는 것일세. 부자가 되고픈 마음이 없는 것이지. 없다는 데야 무슨 도리가 있겠나.

대충 이런 내용의 얘기를 들려주셨다.

호반의 짙은 안개가 가실 무렵 배는 선착장에 닿았고 그 분은 미소를 지으면서 떠나가셨다. 수행하는 사람들이 여럿 되는 것으로 보아 범상한 분이 아닌 것을 짐작했을 뿐, 그 분이 대단한 재력가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은 그러니 그 분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나는 운명을 연구하는 사람이고, 무한의 황무지를 옥답으로 바꾸는데 겨우(?) 30 년이면 충분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땅의 넓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 생전에 정성을 쏟을 수 있는 기간은 30 년이 전부이기에 그 시간 만큼이면 되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 상관이 없다. 땅만 열심히 일구고 갈면 되는 것이다. 꼭 돈이 되지 않는 작물을 심어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반드시 가치가 있는 작물을 심어야 한다.

돈이 되느냐의 문제는 사회적 평가와 인정의 문제이고, 그것을 떠나 훗날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된다고 생각했다. 정 안 되면 내가 가치를 부여하면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당시 나는 그런 결심을 했다. 그래, 나도 저 無限(무한)의 황무지를 일구고야 말겠어. 일구는 자가 임자가 되는 것이 바로 자연의 이치가 아니겠어.

그 뒤로 나는 황무지를 일구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행복하다. 언젠가 저 황무지는 기름진 옥답이 되어 황금이 주렁주렁 열릴 것이라 생각하면 마음은 이미 부자이다. 그 황금을 사람들이 돈으로 쳐주느냐의 문제는 생각도 하기 싫다.

황무지는 임자가 없는 땅이다. 꼭 발에 밟히는 땅만이 땅이 아니라 생각을 열면 황무지, 임자가 없는 땅은 어디에도 있다. 당신도 그 황무지를 30 년간 일구어내면 부자가 될 것이다.

재주가 있느냐? 오히려 재주가 장애가 될 수도 있으니 그저 열과 성을 다하고, 노고와 땀을 아끼지 않으면서 30 년간 일구면 반드시 부자가 된다. 자연과 사물과 운명의 이치이다.

그러니 이 세상은 재산을 물려받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고, 물려받아서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오해이고 착각이다.

우리 사회가 지난 10 년간 온통 이념으로 시끌벅적한 것은 이런 오해와 착각의 소산이다. 모두들 쉽게 가지려고 하고 쉽게 누리려고 하니 그런 것이라 본다. 생각을 열어보라, 누구도 소유하려 들지 않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무한의 황무지가 펼쳐져 있을 것이다.

가서 일구라, 그러면 당신 것이 될 것이다.

서비스 차원에서 고 정주영 회장의 사주를 잠깐 풀이해본다.

1915 년생이다.

년 乙卯
월 丁亥
일 庚申
시 丁丑

이 양반이 땅을 갈기로 작정을 한 것은 1940 庚辰(경진)년이었다.

황무지가 서서히 옥답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1964 甲辰(갑진)년부터였으니 땅을 일군지 24 년이 지난 때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10 년이 지나자 그 땅에서 엄청난 수확을 얻게 되니 바로 1974 甲寅(갑인)년이었다. 이로서 정주영 회장은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이처럼 황무지를 지극정성으로 일구기 시작한 지 34 년이 지나면 최고의 수확기를 맞이한다.

차면 기울기 마련이니, 이 양반의 모든 기운이 막히기 시작한 것은 1992 壬申(임신)년부터였다. 이 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 낙선되면서 사실상 이 양반의 운은 마무리되었다.

정말 위대한 농부였다, 정주영 회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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