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때문에 강변역 테크노마트 빌딩을 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섰는데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보니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포스터였다.
캬-하고 감탄했다. 쥑인다! 짱이다!
다양한 그레이로 처리된 배경에 약간의 칼러들이 묻어나는 포스터, 제목 글자들이 마치 칼로 허공을 베어놓은 것 같다.
제목 밑으로 짙은 구름이 얽혀들면서 역동성을 강조하고 또 구름 사이로 빛이 비쳐들고 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무대는 산간의 풀밭이다.
우측 하단에 차승원이가 선비 차림의 하얀 옷을 바람에 날리면서 방금 칼을 힘차게 휘둘러 내려 벤 자세로 비스듬하게 서있다.
황정민이는 좌측 하단에 낭인의 자세로 칼을 아래에서 위로 힘차게 베어버린 자세로 허공에 떠 있다.
서로가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음이 분명하다.
백과 흑의 콘트라스트. 흑백 대결, 강렬한 대결 구도.
하단에는 무척이나 실망스런 문구, ‘2010 년, 역사가 담지 못한 최대의 반란이 시작된다’가 적혀져있다. 뭐 저런 유치하고 非(비)설득적인 카피를 써놓았을까 싶지만, 그냥 옥에 티라 넘기기로 한다.
간만에 나를 감동시키는 포스터이다.
포스터를 보고 걸음을 돌리면서부터 내가 보아왔던 무수한 검객 결투 영화들이 눈앞을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먼저 떠오른 것은 예전 홍콩 영화에서 외팔이 검객으로 나온 王羽(왕우)와 일본의 맹인 검객 자토이치의 대결 장면이었다.
사실 바로 그 장면을 재연출한 것이다.
하지만 훌륭하다. 리메이크면 어떻고 베꼈으면 어때, 좋으면 된 거지. 감동을 줄 수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영화 ‘청풍명월’에서 최민수와 조재현이 개천에서 검으로 겨루는 장면도 정말 멋있었다는 생각이 났다.
모션이 겹쳐지면서 만들어내는 결투 장면, 이소룡의 쌍절곤 휘두르는 장면을 연상케 했다. 대단히 훌륭했다.
왕우가 출연한 영화들이 몇 편 눈앞을 지나갔고 자토이치 영화도 지나가고, 또 여러 편의 검객 영화들이 눈앞을 스치다보니 엘리베이터가 멈춰섰다.
내리면서 나는 ‘저 포스터 구매하려면 어디로 알아봐야하지?’ 하는 생각을 했다.
포스터를 구해서 판넬로 만들어 작업실 책상 바로 앞에 걸어둬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싄 여섯의 늙은 호호당이 검객 영화 포스터를 붙여놓고 지낸다?
그 또한 재미있지 않은가?
(앞글에서 영화 우울증 얘기를 했기에 즐거운 생각으로 전환해보려 애쓰는 과정에서 어제 본 포스터가 떠올랐다. 그러고 나니 많이 명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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