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한다.
굳이 큰 성공이나 실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성공과 실패 속에서 큰 성공도 있고 큰 실패도 있음이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는 다양한 경험을 쌓게 되고 그 경험이 누적되다 보면 어떤 깨달음이나 통찰을 얻기도 한다.
그런데 그 깨달음이나 지혜란 것들 또한 그다지 믿음직하지 않을 때도 많다. 예서의 깨달음이 제서 얻은 지혜와 서로 맞지 않아 헷갈리기도 한다.
‘착하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이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독하게 살아야 성공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얘기이다.
그래서 좀 더 올바른 깨우침을 얻고자 책을 봐도 그렇다. 공자의 말씀을 읽다보면 그 말이 옳고, 老莊(노장)의 책을 읽으면 그 또한 맞는 말이다. 그러다가 다시 다른 책을 읽으면 그 또한 옳구나 싶다.
그 결과 성현들의 말씀은 모두 같은 말씀이구나 하고 두루뭉술하게 정리해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성현의 말씀이란 것이 다 좋긴 하지만 정작 實用(실용)적 차원에서는 그저 그렇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여러 경험들, 실제 생활이나 사업 또는 책을 통해 얻어진 잡다한 것들 사이의 혼동과 혼란을 견디며 마침내 통일된 하나를 얻을 때까지 진지하게 사색하고 검증해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사람이 자신의 감정과 사고력, 배운 지식 그리고 경험으로부터 얻어낸 통찰들을 그럭저럭 원만한 하나로 통합해 내기란 실로 어렵다.
한 인간의 속만 들여다보아도 이럴진대 무수한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인간 사회를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세상이 그럭저럭 굴러가고 유지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나 하나만 정리하고 통합하기도 어려운데 사회는 더 어려울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세상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부단히 새로운 思潮(사조)가 밀려든다.
이른바 잘 나가는 나라나 문화권으로부터 쉴 사이 없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앞날이 없을 줄 알아라, 저렇게 하지 않으면 뒤쳐질 것이다 하면서 다양한 생각과 메시지들이 날아들어 안 그래도 피곤한 우리의 신경세포들을 자극해온다.
지난 1980 년대 학생들 사이에선 독일 출신의 ‘마르크스’라는 성현 비슷한 분이 남긴 말씀을 몇 구절 외우고 있지 못하면 축에 끼지도 못했던 시절도 있었다. 거의 성현의 반열에 오른 대우를 받았기에 나는 ‘칼 마르크스’를 莫子(막자)라고 개인적으로 부르기로 했다.
이처럼 莫子(막자)가 엄청 유행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 때 그 사조를 배운 이들은 오늘날도 여전히 막자와 그 제자들의 말을 열심히 전도하며 살아가고 있다.
단골메뉴는 ‘자본과 시장이 사람을 상품화하고 他者化(타자화)화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돈이 사람을 종이나 노예로 만든다’는 말이다.
상품화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타자화’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약간 철학 용어 같기도 하니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풍요해지고 외국을 자주 드나들게 되자 미국 드라마 ‘섹스 앤 시티’가 방영되었다.
그러면서 우리 젊은이들의 생활양식에 있어 하나의 선망 받는 ‘표준’으로 자리를 잡았다. 서울 강남에서 좀 빠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젊은이들은 모두 ‘짝퉁 뉴요커’가 되어버린 것이다.
각종 원두커피와 와인, 마이 카, 카드, 해외여행, 고급 주거 공간, 분방한 섹스 라이프 등등이 기본 주요 품목이다.
그런가 하면 전원으로 돌아가 생활하려는 歸農(귀농)바람이 불어 상당 수 젊은 부부들이 소로우의 ‘월든’이나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겨드랑이에 끼고서 도시를 탈출하기도 하고 또 시간이 지나 되돌아오기도 했다.
해외여행도 엄청 유행이었다. 나중에는 그냥 좋은 곳이 아니라 ‘더러운’ 聖水(성수)가 흐르는 인도 바리나시에 가서 화장터 연기 냄새는 맡고 와야 이른바 명함을 내밀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또 에스유비(SUV) 란 새로운 형태의 자동차가 나오자 보다 풍요롭고 개인적이며 특별한 주말 여가를 즐기려는 젊은 연인들과 부부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사업 좀 한다는 사람들, 낙하산으로 공기업체의 長(장)자리를 꿰찬 사람들, 새로운 기회를 잡겠다는 사람들은 경영의 도사, 영어로 guru 라 불리는 서양 전도사들의 새로운 복음에 끊임없이 매료되고 있다.
그래서 그 경영의 도사님들은 일등석 비행기를 타고 우리나라로 왕림하셔서 귀한 복음을 상당히 뻐기는 자세로 전도하고 다닌다.
그런 도사님들의 강연회는 그냥 강연회가 아니라 ‘꼰뻐런스’라고 한다. ‘함께’라는 뜻의 con, 뻐길 ‘뻐’, 도사님들이 여러 명 와서 한 자리에서 뻐긴다고 해서 ‘꼰뻐런스’이다.
재미난 점은 그런 꼰뻐런스에 참석한 높은 양반들은 그러나 너무나도 바빠서 정작 복음을 듣지도 못한다는 사실이다. 아니면 들으나 안 들으나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체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경영 도사님들의 단골 메뉴는 ‘혁신’이다.
혁신을 하지 않으면 지구상에 살아갈 수 있는 자격증을 박탈당할 것 같아 겁이 나기도 한다.
革新(혁신), 가죽 껍데기 개비하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저토록 떠들고 다니는가 싶다. 하는 모습이 길거리의 외침인 ‘예수천국 불신지옥’과 거의 대등한 수준이다.
그러니 또 신경이 쓰인다.
그럴 법도 한 것이 ‘해오던 대로 하는 기업은 망한다’고 협박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협박이나 공갈을 치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무슨 이유로 비싼 돈 들여 비행기 일등석에 태워 모셔오고 꼰뻐런스를 하는지 이해할 순 없지만 아무튼 그런 유행이 여전하고도 한창이다.
작년 가을 무렵, 나는 莫子(막자)의 제자이면서 짝퉁 뉴요커이며 늘 조만간 귀농하겠다고 결심하고 있으면서 혁신에 대한 열정도 엄청난 후배와 종로 삼청동 부티크 거리의 어느 카페에서 와인과 커피를 마시면서 저녁 한 나절을 즐겁게 보낸 경험이 있다.
그 후배의 말을 주로 들어주는 편이었지만, 아무튼 즐거운 대화였다. 그리고 속으로 ‘야, 이 친구 봐라, 참 골고루 섭취를 했구나!’하며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내 말, 결코 그 후배를 비웃는 얘기가 아니라는 점, 아끼고 사랑하는 후배라는 점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여기서 하고자 하는 말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얻게 된 다양한 것들을 하나로 정리하고 통합하기가 실로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후배에 대해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 후배 스스로 자신이 小市民(소시민)임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걱정이 될 때는 사람이 큰 욕심을 가질 때이다. 그러니까 大市民(대시민)이 되고자 작정할 때이다.
그러다보면 이런저런 말들을 액면 그대로 믿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그렇고 마음 편하게 이웃나라의 예를 들자. 일본의 소니라는 기업이다.
한동안 하드웨어 보다 소프트웨어가 진짜라고 떠들고 다니는 경영 도사들이 많았다. 이에 세계 제1의 하드웨어 메이커였던 일본 ‘소니’가 낚였다는 사실이다.
그 바람에 소니는 거의 거덜이 났다. 반면 하드웨어에 치중했던 삼성전자는 대박이 났고 말이다.
이 점에 대한 내 생각을 좀 밝히면 이렇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소프트웨어로 떼돈을 번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미국이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기에 미국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지, 가령 삼성전자가 그에 버금가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또 최근에는 ‘컨텐츠가 핵심이다’는 목소리도 드높다.
그야말로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와 같은 소리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한다는 거 쥐란 쥐들은 익히 잘 알고 있지만 달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뛰어난 목소리를 지닌 ‘신정환’이가 노래하지 않고 라디오 스타에 나오는 것은 노래가 싫어서가 아니라 노래할 시장이 없기 때문인 것은 ‘신정환’이도 알고 주변사람들도 알며 심지어는 늙은 호호당도 알고 있다.
또 韓流(한류)란 것도 그렇다.
우리 젊은 예능인들이 일본이나 중국 동남아 등지에 가서 인기가 많고, 우리 영화나 드라마가 잘 팔린다면 당연히 반가운 일이다. 장사도 되고 우리에 대한 인상도 좋아지니 무조건 좋은 일이다.
그런데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내 보기에 당연하다.
우리 공중파 방송들은 ‘일본 노래나 가수가 등장하지 못 한다’는 불문율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인근에 있는 나라의 대중가요나 문화는 우리 시장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장벽을 쳐놓은 상태에서 우리 것이 그 나라로 가서 팔리기를 기대하는 것이 한류일진대 이 무슨 해괴망측한 발상일까!
情(정)이란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어야 생겨나고 돈독해지는 것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원 웨이 티켓(one way ticket)’에 지나지 않는다.
이래서는 더더욱 뭐가 뭔지 모르는 세상이다.
글의 흐름이 약간 까칠해졌으니 돌아와야 하겠다. 지금 나는 무언가를 비판하거나 공격하자는 취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세상 살다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음이다.
너무 진지하게 어떤 사조나 흐름에 몰두하기 보다는 차라리 모든 것을 그저 한 때의 유행으로서 내 삶의 앞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라 여기는 것이 더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사실 이 글은 회남자를 읽다가 다음과 같은 구절을 잠시 음미하다가 쓰게 되었다. 그리고 나름 웃겨보자는 취지의 ‘개그’였다.
天下之物博而智淺(천하지물박이지천)이 그것이다.
‘천하는 넓고 사물은 헤아릴 수 없이 많으니 사람의 지혜는 얕을 밖에’ 하는 말이다.
적어도 회남자의 이 말은 뭐 거창한 지혜의 말로서가 아니라 최소한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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