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을 쏘아 과녁의 한 가운데에 화살이 꽂히면 이를 的中(적중)이라 한다. 지금도 흔히 사용하는 어휘이다.
조선의 正祖(정조) 임금은 당대의 名弓(명궁)이셨고 쏘는 화살마다 모두 적중이었다. 수십 발을 쏘아 다 적중시키고 나면 마지막 한 발은 일부러 허공을 향해 쏘았다 한다.
이는 정조 임금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 적중시킨 이는 마지막 한 발을 적중시키지 않았으니 이로서 禮(예)를 표했다.
일부러 한 발을 적중시키지 않는 것을 예라고 했는데, 자칫 그를 ‘개멋’ 부리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오늘의 세상은 좀 다르다. 가령 골프 시합이라면 이미 우승이 확정되었어도 마지막 홀까지 최선을 다해 좋은 기록을 남기는 것을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라 한다.
정조 임금이 일부러 마지막 한 발을 허공으로 날림으로써 예를 다했던 것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오늘의 스포츠 정신, 두 가지 모두 훌륭한 것이다.
둘 다 훌륭하다 했지만, 이 두 가지 행위 속에는 무언가 다른 정신과 다른 문화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글은 이 두 개의 다른 情神世界(정신세계)가 무엇이었고 그것이 오늘날의 현실에서 어떻게 충돌하고 있는가를 알아보자는 것이다.
마지막 한 발을 일부러 적중시키지 않는 정신의 세계와 끝까지 최선을 다하려는 정신세계 간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일까?
바로 이 두 가지 정신세계, 즉 문화의 차이점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의 세계적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도 있고 나아가서 그 해법을 찾아볼 수 있다고 보기에 이런 글을 쓰는 것이다.
정조로 하여금 다 적중시킨 후 마지막 한 발을 허공을 향해 쏘게 만들었던 행위의 바탕에 놓인 정신은 바로 中庸(중용)의 정신이고 그것이 행위로 나타난 것이 禮(예)이다.
다음의 말을 보기로 하자. 中庸(중용)-유교의 핵심 경전-에 실려 있다.
“좀 아쉬워도 굳이 다 채우지 아니하고, 좀 남아도 끝까지 다 하지 않는다.”
原文(원문)은 이렇다.
有所不足 不敢不勉 有餘不敢盡
(유소부족 불감불면 유여불감진)
수십 발을 모두 적중시켰고 이제 남은 한 발마저 다 적중시킬 수 있지만 일부러 맞히지 않는 것이고, 다 적중시킬 힘과 능력이 남았어도 끝내 적중시켜 完全(완전)을 기하지 않는 것이 정조의 활쏘기 속에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中庸(중용)의 정신이다.
오늘날 중용을 두고 그저 가운데 서는 것, 중간치기 하는 것, 물에 물을 타고 술에 술을 타는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는 속내를 숨기고 어영부영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처세술 정도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런 것이 살아감에 있어 나름의 처세술은 될 수 있어도 중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중용에게 귀가 있어 듣기라도 한다면 무척이나 불편해 할 것이다.
명궁이라면 사람들 앞에서 모든 화살을 다 적중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자신의 능력을 뽐내는 길이다. 그러나 중용의 정신은 그러지 말라고 충고한다. 이런 자세는 공연한 虛禮(허례)가 아니다.
이런 중용의 정신은 그렇다면 왜 생겨난 것이고 유교의 핵심 가르침으로 자리를 잡았던 것일까?
유래를 알기는 어렵지 않다. 중용이란 글은 원래 유교의 경전인 禮記(예기)속에 들어있던 글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禮記(예기)를 보자.
예기를 시작하는 문장으로 毋不敬(무불경)이란 말이 나온다.
毋不敬(무불경)! 이는 또 무슨 말인가?
‘공경함이 없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좀 풀이하면 이렇다.
당신이 살아가면서 대하고 만나고 겪게 되는 그 어떤 것이든 우선은 그 상대에 대해 삼가고 높이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길을 가다가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공경하는 마음을 가질 것, 후배 또는 내가 낳은 자식이라도 인격적으로 존중해 줄 것, 심지어는 나와 맞서 싸우는 敵(적)일지라도 최소한의 매너는 갖출 것, 그러니 내 윗사람이면 더욱 공경하는 마음과 자세를 보여주는 것은 당연지사.
사람이 모인 장소에 가서 큰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거기 있는 사람들을 공경하는 자세이니 그 또한 그러하다.
달리 얘기하면, 산길을 걷다가 샘을 만나면 그로서 목을 축일 수 있으니 마신 다음에 샘을 더럽히지 않고 고마움을 표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毋不敬(무불경)은 禮記(예기)에 실린 글 전편을 이해함에 있어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예의 정신이란 따라서 다름이 아니라, 어떤 상대이든 그 상대를 존중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중용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대강 알았으니 다시 한 번 더 들어가 보자.
공경하고 존중하라는 것으로 시작되는 예의 정신은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일까? 여기까지 제대로 알아야 결국 예란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인류는 고대로부터 살아오면서 많은 경험을 누적시켜 왔다. 특히 농경사회가 시작되면서 長足(장족)의 발전을 거듭했다.
몇 년간 비가 잘 내려 거듭 풍년을 맞이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몇 년간 비가 내리지 않아 굶어죽은 적도 많았다.
하는 일마다 손대는 일마다 연이어 승승장구할 수도 있었지만, 어떤 때는 아무리 애를 써도 번번이 실패에 그칠 수 있음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를 통해 인류는 어떤 일이든 어떤 상대이든 쉽게 보거나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새기게 되었다.
山戰水戰(산전수전) 다 겪은 高手(고수)가 겸손한 것은 공연한 겉멋이 아닌 것이다.
이처럼 상대를 공경하고 존중하라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예절을 지키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실은 나를 지키기 위한 대단히 실리적이고 실용적인 고려가 그 뒤에 놓여있는 것이다.
경험은 사람으로 하여금 겸손하게 만든다.
이 말이 그리 어려운 말은 아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니, 禮(예)란 것도 그런 경험에서 출발한 것이다.
인간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오면서 자연과 맞서 싸운다는 생각도 가졌을 것이고 자연을 정복한다는 생각도 해봤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때로는 아무리 해야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엄청난 힘 앞에서 기가 죽기도 했을 것이다.
이 생각들을 정리하면 첫 번째 생각은 ‘자연에 대한 투쟁’이라 하겠고, 그 다음은 ‘자연에 대한 정복’이 될 것이며 마지막은 ‘자연에 대한 승복’이라 하겠다.
鬪爭(투쟁)과 征服(정복)과 承服(승복), 우리 인간은 거친 자연 환경 속에서 살아오면서 이런 마음들을 가져왔던 것이고 더러는 그 마음들이 오가기도 했을 것이다.
이 생각, 또는 관념들 중에서 近代(근대) 西歐(서구)의 정신이란 다름이 아니라 征服(정복)의 정신이다.
반면 중용의 정신은 승복을 위주로 하는 것 같지만 실은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일단은 부드럽게 겸손한 자세로 상대를 인정하면서 시작하라는 것이지 그것이 반드시 승복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서양의 정신도 정복만을 위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별하게도 근대 서구의 정신 속에는 정복이란 관념이 유난히 진하게 배어 있다는 것이다.
근대 서구 정신이 정복을 위주로 하게 된 배경에는 인류가 이루어낸 커다란 물질적 成就(성취)가 바탕을 이룬다. 동시에 지나치게 承服(승복)만을 위주로 했던 중세 기독교적 敎權(교권)사회에 대한 강한 반발에서 그런 면도 있다.
이런 것들이 계몽사상이며 그 바탕에는 근대 서구적 理性主義(이성주의)가 작용하고 있다.
‘이성주의’란 말은 조금 조심해서 다룰 필요가 있는 말이다.
感性(감성)보다 理性(이성)에 입각해서 행동하자, 즉 감성에 바탕을 둔 신앙적 행동 원리보다는 인간이 지닌 판단력에 근거를 두자는 의미에서의 이성주의도 있겠지만 근대 서구적 이성주의는 또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앞서 中庸(중용)의 문구로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중용의 말은 이렇다.
“좀 아쉬워도 굳이 다 채우지 아니하고, 좀 남아도 끝까지 다 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근대 서구적 이성주의는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아쉽다면 마저 채워라, 남았다면 끝까지 최선을 다해 도모하라.”
아쉽다면 채우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힘이 남았다면 그 힘을 마저 다 소진하지 않을 이유가 도대체 어디 있는가? 그러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理性(이성)적 判斷(판단)이라는 것이 근대 서구적 이성주의의 근간 논리이다.
이처럼 대비되는 두 가지 정신세계, 中庸(중용)의 정신과 ‘근대 서구적 이성주의’는 글머리에서 정조의 활쏘기와 골프에서 마지막 홀까지 최선을 다하는 자세 사이에 존재하는 상이한 행동의 원인인 것이다.
한 호흡에 다 써내려가고 싶지만 참기로 하자. 다음 글에서 오늘날 세계가 갈등하는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중요하고도 심각한 주제인지라 한 호흡 쉬고 다시 말을 이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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