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만으로 27 세 무렵이면 사회에 진출하게 되고 대략 30 년이 지난 57 세 무렵에는 은퇴를 한다.
30 년의 활동 기간이다. 내 글을 읽어본 분들은 아실 것이다, 30 년이 어떤 기간인 줄을. 그것은 60 년 한 週期(주기)의 절반이다.
여기 야심 있고 패기에 찬 젊은이가 열심히 노력해서 또 운이 좋아서 좋은 기업에 입사하는데 성공했다고 하자. 그리고 이 젊은이는 끝까지 노력해서 그 기업의 최고경영자, CEO 가 되겠다는 포부를 가졌다고 하자.
이 젊은이의 포부가 실현될 가능성은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
그런 확률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먼저 들겠지만, 실은 그 확률은 이미 정확하게 주어져 있다.
정답부터 말하면 1024 분의 1이다. 편하게 1000 분의 1 이라 할 때 0.1 퍼센트이다.
가령 입사동기가 200 명이라 한다면 그 기업의 사원은 6,000 명이라 볼 수 있다. 인력이 30 년에 한번 회전을 한다고 하면 200 곱하기 30 은 6,000 이 된다.
이 젊은이의 입사 동기는 200 명이고, CEO 가 될 확률은 1/1000 이니 이 젊은이가 포부를 실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5 년간 입사한 직원은 1000 명이 되므로 5 년 만에 한 명 정도가 최종 자리까지 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1/000 확률은 어떻게 해서 도출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조금 뒤로 미루기로 하고 먼저 호호당이 겪은 재미난 옛날 얘기 하나 하겠다.
호호당은 처음에 조흥은행이란 곳에 들어갔었다. 4 시 반이면 문을 닫기에 퇴근 후 자유시간이 많다는 것이 거의 유일한 이유였다. 들어가서 보니 문을 내린 이후에도 거의 매일 밤 지금은 사라진 통행금지 30 분전까지 일을 했다.
속았다 싶었지만 쉽게 그만 둘 수가 없었다. 월급 타먹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하여 무역금융 쪽에서 일을 하다 보니 가끔 거래업체 사장님이 명절이나 기타 특별한 때에 호호당 손에 쥐어주는 돈봉투야말로 別味(별미) 중에 별미였다.
돈봉투의 별미는 그것이 전액 ‘비자금화’된다는 점에 있다. 아내가 모르는 비자금은 일반 돈의 두 배에 달하는 위력을 가진다는 사실을 그 때 발견했다.
나는 그 비자금으로 사보고 싶던 책도 살 수 있었고 동료 선배들과 함께 歡樂街(환락가)로 나서기도 했다. 학생 시절에는 결코 맛볼 수 없었던 환락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 것은 삶의 진지한(?) 기쁨이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그다지 크지도 않은 액수인데도 이토록 삶을 윤택하게 하니 이 세상에 부정부패가 사라지기는 정말 힘들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사실 윤활유로서의 돈봉투와 거액의 부정부패를 구분하고도 싶었지만, 어차피 그건 스스로를 기만하는 일이라는 결론도 얻었다. 그저 사회적 墨契(묵계)로서 또는 사회의 묵시적 합의가 부정한 액수의 多寡(다과)를 결정짓게 되는 것이라는 좀 더 현실적인 판단을 얻었다.
당시 나는 전두환 정부가 기치로 내건 ‘정의사회구현’에 대해 시니컬하게 비웃기보다는 아! 액수를 좀 줄여보자는 얘기로구나 정도로 받아들였다. 기꺼이 동의했다.
영업점에서 1 년 일한 뒤 나는 전산부로 이동했고 거기서 기획팀에 배정되었다. 구매를 담당하게 되니 돈봉투의 액수가 좀 더 늘어났다. 하지만 내가 알게 된 사실은 돈봉투가 존재하는 세상이지만 그렇다고 마구 썩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돈봉투가 업무의 공정성을 저해할 정도는 아니고, 그렇다고 먹은 이상 전혀 입을 닦게 되지도 않는 묘한 균형선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고백하건데 그 묘한 균형이 나에게는 아슬아슬한 재미를 안겨 주었다.
얘기가 좀 빗나갔다.
하고자 하는 얘기는 이런 것이다.
연수를 갔더니 끝나기 전날 밤 파티에서 자유롭게 저마다의 생각을 발표할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은행의 인사적체가 심하니 우리 동기가 지점장이 되려면 현 지점장 어르신들이 연수차 버스로 강원도 산길을 가다가 몇 대가 굴러야만 되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당장은 모두 웃고 넘어갔지만, 사실 그 뒤로 엄청 혼줄이 났다. 중학교 시절 이후로 써본 적 없던 반성문도 썼다.
내 말인 즉 은행장은커녕 지점장이 될 확률도 당시로서는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이후 직장을 옮겼고 그러다가 다시 스스로 사표를 내고 용감하게 내 인생은 내가 개척하겠다는 ‘만용’을 부렸다.
그런데 1997 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어느새 그 많던 ‘똥차’들이 삽시간에 사라져갔고 처음의 입사동기들은 어느새 지점장까지는 승진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세상은 현 상황대로 흘러가고 굴러가는 법이 없다는 것을 내게 각인시켜 주었다. 그런 생각이야말로 순진한 착각이었다.
그러면 앞서의 궁금증으로 돌아가 보자.
어떻게 해서 이 세상은 없던 확률을 만들어내고 또 있던 확률을 걷어가 버리는지를 알아보자.
간단히 말하면 이 세상은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3 년마다 한 번 씩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채로 만물을 걸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입사 후 6년이 되었다면 이미 두 번 걸렀고 어떤 젊은 회사원이 CEO 가 될 확률은 벌써 1/4 로 줄어들었다는 말이다.
27 세에 입사하면 30 년에 걸친 ‘대장정’이 시작된다. 도중에 옮겨가든 잘려서 다른 일을 하게 되든 또는 그대로 붙어있던 아무 상관이 없다, 3 년에 한 번씩 걸러내는 것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다.
그러니 30 년이면 열 번을 거르게 된다.
2의 10 승이면 1024 가 되니 사회에 진출한 젊은이가 최고의 자리에 오를 확률은 1024 분의 1 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30 년 중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하나 있으니 18 년이 지난 시점이다. 45 세 무렵이다.
우리가 흔히 성취를 이루었다고 평가하는 사회적 기준은 45 세 무렵을 보고 결정하는 것이다.
18 년이면 여섯 번의 필터링이 있었다. 그러니 사회적으로 성취를 했다는 말을 들을 확률은 2의 6 승이면 64가 되니 64 분의 1인 것이다.
45 세 무렵에 학자라면 전임 교수, 사업가라면 안정적인 중소기업체 사장, 직장인이라면 임원 승진 등등 이런 식으로 성취를 인정하는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 도달했다면 그 사람에게 성취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려도 무방하다.
어디 64 분의 1 이 쉬운 확률인가 말이다.
그러면 이로부터 다시 12 년에 걸친 성공한 사람들 간의 리그가 시작된다. 57 세에 이르는 경주이다.
이 레이스에서 성공할 확률은 이렇다. 12 년이니 4 번의 걸러내기가 있다. 따라서 16 분의 1 이다.
이 레이스에 성공한 사람은 따라서 성공 중에 또 성공인 셈이다.
공직이라면 장차관 또는 국영기업체 사장, 기업가라면 안정적인 중형 기업체의 오너 등등 그런 것이다. 모두 1024 분의 1 확률을 실현한 사람들이다.
나는 이 세상이 인간이 만든 체제와 이념을 떠나 3 년마다 채로 걸러내는 이 법칙은 영원히 변함이 없을 거라 본다. 노골적으로 말해 평등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체제라 하더라도 당 고위간부가 될 확률은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왜나면 체제에 상관없이 모든 사회는 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권력을 필요로 하고 권력이 있는 곳에는 경쟁이 있기 마련인 까닭이다.
그리고 해주고 싶은 말이 하나 더 있다.
사람의 운명을 볼 때, 초반 게임에서 형편없이 낙제를 했다 하더라도 인생 전부가 실패로 끝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역전의 기회 또한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다만 그 역전이란 것이 처음부터 순탄하게 길을 가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 있을 뿐이다.
淮南子(회남자) 詮言訓(전언훈)에 이런 말이 있다.
“霜雪雨露(상설우로), 서리와 눈, 비와 이슬은 만물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하늘은 어떠한 일도 하지 않지만, 만물은 하늘을 떠받든다.”
부언하면 서리에 맞아 죽는 이도 있지만 서리로 해서 살아나는 자도 있다는 것이다. 눈과 비, 이슬 또한 마찬가지로 추리하시라.
지금 당신이 흰 눈을 쓰고 죽을 지경이라도 너무 비관하지 마시길, 견뎌낼 수만 있다면 나중에 우습게도 비에 맞아 쓰러지는 이도 있기에 逆戰(역전)은 언제나 가능한 법이니 말이다.
왜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松柏(송백)은 잎이 다 져버린 추운 겨울에 가서 더 푸르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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