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稱(명칭)에 대한 고민과 공상 놀이  _  2009.12.16
춥다, 겨울이다.

겨울이니까 추운 것인지, 추우니까 겨울인 것인지 언제나 아리송하다.

아무튼 춥다, 그래서 따뜻하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 그러나 그 무덥던 여름을 내가 마냥 좋아했던가를 자문해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으니 벌도 받을 겸 그냥 추워하기로 했다.

하기야 내 공간에는 난로가 저토록 따뜻하게 불꽃을 올리고 있건만 무슨 추위 타령.

매일 나오는 이 공간을 뭐라 불러야 할까, 얼마 전부터 이런 의문이 들었다.

사무실은 아니다, 사무를 보지 않으니.

작업실도 아니다, 내가 무슨 대단한 작업을 한다고. 영어로는 workroom 이 되는데 나는 워커가 아니지 않는가.

연구실? 제법 그럴 법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연구실이라 해놓고 장사하는 곳도 많다는 사실, 나는 운명 상담도 하지 않으니 연구실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영어로 연구실은 랩, lab. 이 되는데 그 또한 엉터리 학자들이 잘 쓰는 말 같기도 하고. 또 스터디 룸? 영어 보습학원 같은 느낌을 주니 그 또한 싫다.

그냥 오피스? 실은 별 어감이 없어 중립적인 말이라 좋긴 한데, 우리말이 아니지 않은가?

오피스를 우리말로 뭐라고 하는지 다시 사전을 보니 도로 ‘사무실’이다. 이건 아니라 했다.

그래서 머리를 굴린다.

뚜르륵-또르륵. (이건 이리저리 돌아가는 소리)
탈탈탈탈-(이건 돌아가다가 뭐에 걸리는 소리, 안 돌아가고 있다.)

놀이방?

그런데 ‘유아놀이방’이 떠올라 그 또한 그렇다. 사실 이 방은 놀이방이 맞기는 맞는데 말이다. 매일 나와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하니 놀이방이 맞는데, 실은 HTS 로 주식도 해서 돈도 번다. 약간 어폐가 있다.

놀이터? 아파트 단지 내의 그네가 있는 아이들 놀이터가 연상된다. 아니다.

놀이공간? 제법 맞는 얘기인데 다소 추상적이다. 그리고 나는 抽象(추상)을  싫어한다.

그러니 한문으로 가보자.

遊戱房(유희방)? 약간 변태스런 냄새, 원조 교제 비스무리한 비린내가 난다. 싫다.

그러면 줄여서 遊房(유방)? 유방은 여자 가슴이니 어림도 없다.

戱房(희방)? 놀이방의 의미지만 알아듣는 사람이 없고 어감도 영 아니다.

工房(공방)? 수묵화를 그리니 뭐 공방이 아닌 것도 아니지만 아무래도 공방이라 하면 칠보나 옥을 갈고 있어야 할 것 같으니 포기.

뭐 없나? 또 다시 탈탈탈탈-.

室(실)과 房(방)을 오가면서 앞에 이런저런 말을 붙여보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다. 그렇다고 軒(헌)을 붙이면 완전 개멋 부리는 결과만 되고. (사실 한 때 ‘영파헌’이라 이름을 붙인 적도 있었지만 민망해서 그만 두었다.)

그림 그리고 담배 마구 피우고 글도 쓰고 책도 보고 공상에 빠지거나 가끔 사람도 만나고 주식도 하는 이 房(방) 또는 室(실)에 대해 딱히 좋은 이름, 어울리는 명칭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라고 노래한 김춘수 시인의 詩語(시어)만 생각이 날 뿐, 답을 찾지 못하겠다.

모르겠다. 그냥 오피스텔이라 하자. 그렇다, 이 건물의 정식 명칭이 ‘서초 오피스텔’이 아니었던가!

그러고 보니 나는 이 오피스텔이 정말 좋고 정이 들었다.

강남 역 근처라 상당히 탁하고 소란스런 곳이지만, 강남역 일대에선 가장 후미진 곳에 등을 돌리고 앉은 낡은 오피스텔이다. 따라서 임대료도 저렴한 편이다.

무진장 오래된 건물이라 적당히 지저분하고 최근 오피스텔처럼 접근을 거부하는 분위기는 전혀 없다. 일한 지 오랜 늙수그레한 경비 아저씨들은 드나드는 사람에 대해 별 관심도 없으니 인간 친화적인 건물이다.

어떨 때는 마치 잠수함 속 같은 생각도 든다. 배관들이 실외로 벽을 타고 있기에 그렇다. 나는 전혀 관심도 없지만, 처음 찾아오는 이는 그 파이프들에 대해 인상을 가지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비틀즈의 ‘노란 잠수함’이 생각난다.

‘빰빠빰빠 빰빠반, 엘로 썹마린 딴따단-’ 하는 노래 꽤나 흥겨웠는데.

그러나 정작 잠수함을 타라고 하면 폐쇄 공포증이 확 하고 닥쳐와 무서울 것 같다. 세상에 제일 싫은 것이 溺死(익사)라고 생각한다. 꼬록 꼬록 꼬로록 하다가 숨이 막히는 것은 생각만 해도 싫다. 뭐 하긴 말로는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고 하긴 하더만, 그걸 누가 믿어.

이 글은 이렇게 불시에 끝을 내겠다. 서든 데스, sudden death 방식이다.

끄읕.


이전페이지로    목록보기            이 글 담아가기